<칼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새로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새로움
김영수(경상대)
새로운 출발이라고 할 때, 누구든지 첫사랑의 설렘처럼 아무도 밟지 않은 첫눈과 마주치는 것처럼 새로움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가득할 것이다. 뭔가 새롭게 해보겠다는 희망과 기대, 남들이 하지 않는 뭔가를 이루어내겠다는 희망과 기대, 그리고 나만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 등등. 그런데 그 새로움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과거와 함께 할 때 희망과 기대라는 공간에 뭔가를 가득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금속노조 제8기 집행부가 새롭게 선출되어 업무를 새롭게 시작했다. 제8기 집행부들도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출범했고, 조합원들의 희망과 기대도 새로운 지도부와 함께 새롭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지도부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모두가 축하하고 축하받을 일이다. 후보진영을 내세우는 과정에서 정파적 경쟁의 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금속노조는 후보 간 경쟁을 통한 조직적 발전이 아니라 단일후보진영을 중심으로 새로운 통합적 발전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선택하였다. 조합원들은 재적 조합원 중 74.76%가 투표에 참여하고, 투표자의 85.07%가 찬성한 것도 과거의 시간과는 다르게 조직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드러냈다.
그런데 새로움이란 혹은 새로운 희망과 기대라는 것이 무엇일까? 정말로 새로운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기나긴 역사의 시간을 들추어보면, 혁명적 단절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한, 지금은 어제의 연속일 뿐이다. 2013년 10월 1일이 2013년 9월 30일의 연속이듯, 제8기 금속노조는 제7기 금속노조의 연속인 것이다. 혁명적 단절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단절해야만 할 과거의 시간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볼 때, 금속노조의 새로운 지도부도 과거의 시간과 공간에 발을 딛고서 새로움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새로움이란 과거에 대한 조직적 평가전략에서 시작된다. 장기투쟁 사업장의 투쟁, 산별노조 차원의 임․단투,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투쟁, 그리고 정치사회적 의제에 대한 투쟁 등이 조직의 형식적 체계를 넘어서는 평가, 즉 조직의 실질적인 발과 심장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제8기 지도부의 새로움이 모색되어야 한다. 평가가 없는 조직 활동이란 ‘붕어가 들어있지 않은 붕어빵’과 진배없을 것이다. 조직의 생명수를 거부하는 조직이 활력을 찾기란 여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움이란 노동현장의 소그룹 조직활동을 복원하는 전략, 즉 잘 나갔던 옛날의 노동현장을 추억과 영웅담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노동현장에 조응하는 새로운 조직활동의 전략에서 시작된다. 어느 순간에 사라져버린 각종의 소모임을 복원하는 조직활동, 개인주의적 개인성향으로 오염되어 있다고 한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개인성향으로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한 조직활동, 그리고 기업별․업종별 조직체계에서 비롯되는 집단적 이기주의 성향을 계급적 이기주의 성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조직활동 등의 전략이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
새로움이란 종파적 경쟁의 장을 정파적 경쟁의 장으로 옮기는 전략에서 시작된다. 정파적 경쟁이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고 노동현장의 활동가들을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책과 투쟁으로 이루어지고 전략적 선택의 장에서 통합과 통일이 이루어지는 전략, 즉 종파적 활동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모색되어야 한다. 종파를 넘어서는 노동자 계급의 정파적 전략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새로움인 것이다. 이는 종파적 분열을 정파적 경쟁으로 오해하거나 혹은 정파적 경쟁을 종파적 분열로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파적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계급적 통일이라는 희망과 기대에서 계급적 연대를 이루어내는 새로움이다.
새로움이란 모두가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방치하는 문제를 투쟁으로 배치하는 전략에서 시작된다. 누구든지 일상생활의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고 투쟁하지 않으면 그 고통이 가중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동현장을 벗어나는 일상생활의 문제를 투쟁으로 배치하려 하지 않을뿐더러 투쟁으로 배치해도 조합원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몇 백 원의 세금문제를 노동자 계급의 투쟁꺼리로 인식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여겨버렸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가장 큰 새로움이 될 수 있다.
새로움은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치는 천둥번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투영되어 있었고 우리의 시간 속에 늘 앉아 있었다. 단지 우리가 지척의 거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닥다리 취급을 했을 뿐이다. 새로움이 너와 내가 부대껴 왔던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새로움은 내 곁에 아니 네 곁에 항상 있어 왔다. 너와 내가 서로에게 거는 희망과 기대가 바로 새로움인 것이다. 말과 글로만 다짐하는 앞으로의 새로움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부대끼면서 몸과 마음으로 주고받는 새로움인 것이다. 거창하고 요란한 미래의 과제에 구속되는 지도부가 아니라, 그 동안 지내왔던 시간 속을 찬찬히 거닐면서 조직의 타임캡슐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지도부, 이러한 지도부만이 ‘일상적인 새로움’을 식상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으면서 조합원들의 희망과 기대를 ‘새로움’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채울 수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