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는 지금까지와 다른 금속노조를 꿈꿀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까지와 다른 금속노조를 꿈꿀 수 있을까?
한지원(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8기 금속노조의 노조, 지부, 지회 선거가 대부분 끝났다. 노조와 대부분의 지역지부는 단일후보로, 완성차 기업지부는 예전처럼 대부분의 현장조직에서 후보를 내 선거를 치렀다. 노조와 지역지부가 후보 만드는 것조차 힘에 버거워했던 것에 반해, 기업 지부는 많게는 7개가 넘는 후보조가 나서 선거 과열을 우려할 정도였다. 이런 선거 상황은 금속노조의 상태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 대기업 노조의 자원이 지역지부와 융합되지 못한 채, 지역지부는 힘에 부치는 싸움 속에 약화되고 있고, 대기업 노조는 더욱 자신만의 실리적 요구에 파묻히고 있는 상황 말이다.
15만 금속노조가 출범한지 6년이 된 현재, 대부분의 노조 활동가들은 금속노조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속노조가 산별노조 전망으로 내놓은 대부분의 것들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포함한 산별교섭, 지역지부 중심 조직편제, 비정규직 조직화 등이 대표적이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현재의 금속노조가 이 과제들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대와 희망이 크지 않다는 것이 금속노조에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다.
금속노조가 다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산별노조를 확대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이미 수많은 보고서들이 금속노조 조직발전 전망을 다뤘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지금까지 금속노조 조직전망을 논의한 대부분의 논의들은 중요한 두 가지를 놓쳤다.
하나는 한국 경제 구조를 추상적 수준에서만 분석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수출 재벌을 지원하는 것에 모든 제도와 자원이 집중되어 있다. 불공정 원·하청거래, 재벌에게 배제된 다수 노동자의 저임금화, 노동운동에 적대적인 정부 노사 정책 등이 모두 이와 연관되어 있다. 특히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이런 상황은 더욱 심화되었다. 한국 경제에서 산별교섭구조는 재벌의 수익률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재벌 부분에 관한한 산별교섭에 노사 윈-윈은 없다.
산별교섭구조에 대한 낙관론은 재벌이 산별교섭에 나서 산업적 노사평화와 생산성 향상을 이루면 국제적 경쟁력도 나아진다는 논리다. 이 논리에 따르면 산별교섭이 안 되는 것은 노사신뢰 부족과 주체의 의지 부족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현대차의 국제 경쟁력이 기술 우위가 아니라 비용 경쟁력에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파업비용을 줄이는 것보다 현대차 배후지에 있는 30만 노동자를 싸게 이용하는 것이 현대차에게 훨씬 이득이다. 즉 산별교섭은 협상이 아니라 현대차가 무릎을 꿇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교섭 구조를 기능적으로 변화시키면 혹은 금속노조가 몇 가지를 양보하면 산별교섭이 이뤄질 것처럼 전망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재벌 중심 구조를 과소평가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금속노조 구성의 구조적 한계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하지 못한 것이다. 금속노조는 역사적으로 서로 다르게 발전한 두 운동이 결합해 건설되었다. 지노협 전통 하에 지역연대를 기반으로 노동운동을 일궈온 중견 중소기업 노조들과 공장 내 교섭력과 경제적 파급력을 기반으로 노동운동을 발전시켜 온 대공장 노조가 그것이다. 현대차,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노조 등 대공장운동이 90~91년 전노협으로 합류하지 못한 이후 두 운동은 가깝고도 먼 사이로 지내왔고, 금속노조를 만들고도 지금까지도 좀처럼 섞이지 못했다. 또한 산업적으로 보면 금속노조는 자동차 산업 대기업, 중견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중심이 된 노조로 자동차산업의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90% 가까운 조직률을 보이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조직률이 두 자릿수 미만으로 매우 낮다.
금속노조 구성과 관련한 이 두 가지 조건은 산별노조가 시급하게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한다. 조직 주체 조건을 냉정하게 분석했다면 산별노조 건설은 교섭체계나 조직편제보다도 조직 내부 조직 구성과 전통을 바꾸는 운동이 우선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산별노조에 대한 이데올로기부터 교섭과 조직 구조 설계까지 산별노조의 내용 상당부분을 금속노조는 전혀 상황이 다른 유럽 모델을 기반으로 구상했다. 또한 지역연대 전통을 가진 노조들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도록 전략적 방향을 수립하지 못하고 현실적 힘에 근거해 기업노조 전통이 가장 강한 완성차노조가 산별노조를 주도하도록 했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면 금속노조는 산별노조로서 전망을 시작부터 가질 수 없게 되는 셈이다. 금속노조는 주체조건과 괴리되어 현실 불가능한 조직전망을 가장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추진했다.
8기 집행부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지금, 금속노조는 내외 조건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조직전망을 진중하게 토론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원칙은 기업별 노조를 넘어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해온 산별노조는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는 형식 중 하나일 뿐이다. 재벌대기업 포함한 중앙교섭이나 기업노조의 지역지부편제가 계급적 단결의 절대 원칙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금속노조의 계급적 확장을 이룰 가장 효과적인 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지금 생각으로는 금속노조가 전략 조직화에 ‘올인’해 보는 것이 그 길 중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30만 금속노조를 빠른 시일 내에 만들기 위한 조직의 결의와 자원의 집중, 이것이 우리가 그나마 지금까지와는 다른 금속노조를 꿈꾸기 위한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