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동연대는 간접고용 해결에서 시작한다
2014-8 칼럼
노동연대는 간접고용 해결에서 시작한다.
노광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박근혜정부 2기 내각이 시작되었다. 사표 낸 국무총리도 바뀌지 않았고, 장관 청문회에서 드러난 숱한 논란을 보면서 ‘그 나물에 그 밥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하나 주목되는 점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등장이다. 최장관은 취임과 함께 규제 완화, 기업 현금유보 끌어내기, 임금인상 등 가계소득 늘리기를 주장하였다. 규제 완화와 부동산 시장 띄우기야 박근혜정부의 대표 브랜드이지만, 기업 현금유보 줄이기와 임금인상을 통한 가계소득 늘리기 정책은 새롭다. 노동배제 정책으로 일관했던 이 정부가 임금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야기한다. 1기 경제정책의 사실상 실패를 인정하고, 부분적이나마 경제정책 방향을 수정한 것이다. 경제부총리가 ‘소득주도 성장’을 이야기할 정도로 이 정부의 경제정책은 온탕과 냉탕의 갈지자 행보 중이다.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할지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분명한 것은 대기업 수출 중심의 ‘선(先)성장 후(後)분배’론은 더 이상 한국 경제의 대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평등 구조와 사회 양극화의 타파야말로 내수 경제를 살리는 길이며,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다. 그 출발은 최저임금의 인상, 원하청 구조의 공정성 확보,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의 해소와 비정규직 규제에서 출발한다. 이때 핵심은 간접고용의 문제이다. 그 동안 직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어느 정도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졌으나, 간접고용 문제는 감추어져 있었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노조결성 투쟁과 케이블방송 씨앤엠과 티브로드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서 드러난 간접고용의 참담한 실태는 노동 양극화의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남용과 확산으로 기업경제는 살았지만 국민경제는 죽었다. 간접고용은 “기업의 필요에 따라 타인의 노동력을 이용하지만 노동력을 보유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제3자에게 고용된 노동자를 이용하는 고용형태”를 말한다. 고용과 사용이 분리된 노동력 사용형태로 산업 현장에서는 용역, 파견, 민간위탁, 사내하청, 하도급, 아웃소싱, 소사장제 등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동현장에 만연된 간접고용은 고용 불안정, 임금 및 근로조건의 열위 및 차별, 노동기본권의 부재, 노사관계에 있어 누구 진짜 사용자인가하는 ‘사용자성’ 논란을 야기한다.
간접고용 문제 해결의 출발은 상시 지속적 업무에 대한 직접고용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노동기구(ILO)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기준 및 권고를 가이드라인으로 한 입법화가 필요하다. 국제노동기구는 2006년 6월 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총회에서 ‘고용관계에 관한 새로운 권고’를 채택했는데, 동 권고는 각 회원국에 대하여 ‘위장된 고용관계’(disguised employment relationship)를 근절하기 위한 국가정책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위장된 고용관계’란 사용자가 노동자를 피고용인이 아닌 것처럼 대우함으로써 노동자의 진정한 법적 지위를 은폐하는 경우를 가리키는데, 그 대표 사례는 민법·상법적 계약형식을 통해 위장 자영인, 위장 하도급계약 등을 활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간접고용에 대한 법률 규제와 함께 노동조합의 힘으로 간접고용을 축소하고 남용을 저지하는 사업장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고용노동부(’14.07.01)의 “고용형태 공시제 결과 발표”에 의하면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162만 명(37.3%)이고,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75만 명(17.2%),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87만 명(20.0%)이다. 여기에 파견근로와 용역근로가 대부분인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서비스업 노동자 64만 명을 합하면 실제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191만 명(43.8%),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148만 명(33.9%)으로 늘고,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43만 명(9.9%)으로 줄어든다. 간접고용은 열악한 중소영세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300인 이상 대기업 특히 재벌들의 책임이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우리는 간접고용을 남발함으로써 국민경제를 어지럽힌 기업의 책임과 함께 대기업노동조합의 무관심과 무대응에 대한 비판에도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급연대의 깃발을 높이 든 금속노조야 말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해소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노동 연대는 남을 돕는 시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운동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