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월호’, 생명을 앗아간 반인권적 국가행위! 그 해답은 진실!
‘세월호’. 생명을 앗아간 반인권적 국가행위! 그 해답은 진실!
김영수 (경상대학교)
다시 1년 만에 칼럼을 쓰는 마음이 아프다. 쓰고 싶지 않지만, 써야만 하는 상황이 그저 안쓰럽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또 했던 이야기이지만, 2014년 4월에도 썼던 세월호, 오늘 또 이야기하련다. 모든 국민이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2014년 4월 16일. 진짜 죽어 없어져야만 할 기억들은 국가권력과 함께 살아 있고,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살아 있어야만 할 기억들은 국가행위로 짓밟힌 주검의 곁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생명이, 아직도 세월호와 함께 수장되어 있는 생명이, 서서히 과거의 사고이자 사건으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세월호 진실’에 대한 너와 나의 목소리와 몸짓, ‘세월호’의 국가적 책임까지 과거의 일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반인륜적 국가행위를 끝까지 물을 것인가는, ‘생명과 인권 그리고 진실’에 대한 사회적 가치와 연관될 것이다.
국가는 항상 공동선의 주체인양 사회구성원 간의 갈등을 해결하거나 조정하려 하였다. 국가는 이 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을 법과 제도의 틀로 구속하고,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를 최고의 선으로 내세웠다. 국가행위는 늘 정당하고, 국가의 의지에 반하는 사회구성원들의 행위는 정당하지 않다는 국가 중심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온 누리를 지배하는 듯하다. 하지만 ‘세월호’ 안에서 구출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해경의 말을 잘 들어 구출되고 난 이후, 집에서 보자는 부모나 친인척의 전화 말에 구명조끼를 입고 서로 손잡고 기다리다가, 떨리는 두려움과 원망을 끌어안고 죽음을 강요당한 그들. 왜 구출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국가는 귀하고도 귀한 생명을 앗았구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아직까지 세월호 안에 갇혀 있는 9명의 죽은 생명, 이 생명을 건지려 하지 않는다? 대체 왜 그러는지 잘 모르지만,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국가범죄이다. 조국 교수는 ‘반인권적 국가범죄’와 공소시효의 정지·배제라는 글에서, ‘반인권적 국가범죄’를 “국가기관이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시민을 살해 또는 고문하는 등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시민의 인권을 중대하고 명백하게 침해하거나 이 침해행위를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한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국가기관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서 행한 중대범죄, 즉 ①인권침해 중대범죄 ②권력남용 중대범죄 ③직무유기 중대범죄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반인권적 국가범죄는 정치·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권력의 원천인 사회구성원의 권리를 부정하는 행위,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국가 스스로 상실하는 행위, 국가권력의 무능력을 폭력적 국가기구로 엄·은폐하는 행위, 소수의 엘리트를 중심으로 법과 제도의 평등한 적용을 부정하는 행위, 국가이해를 앞세워 사회구성원의 이해를 침탈하는 행위 등이 반인권적 국가범죄인 것이다. 이러한 범죄행위에 공소시효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다. 시작과 끝의 진실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거울삼아 인권사회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사고와 사건의 가해자가 공공적 국가권력일 경우, 국가가 나서서 진실을 규명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답답한 것은 없다. 국가의 중대범죄에 대한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국가를 상대로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느끼는 사회! 참으로 생명과 인권을 천하게 여기는 시대인가보다. 생명을 말하고, 인권을 요구하는 것이, 고리타분한 사람의 어리광인 것처럼.
혹시 진실을 규명하려 한다 하더라도, 규명하는 주체가 누구이고,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따라, ‘진실’의 합리성 논란은 수면 아래로 쉽게 가라앉지 않는 법이다. 진상규명을 위한 국가기구가 가해자인 공공적 국가권력을 상대로 사고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힘에 눌려 일시적으로 가라앉는 경우가 있지만, 때가 되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진실규명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제기되곤 했다. 진실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끊이지 않는 한 그러한 논란은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진실규명은 민주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만약 진상규명기구가 수많은 사고와 사건의 진상을 ‘합리적 진실’에 가깝게 규명하고 사회구성원들의 권리, 특히 ‘참여권리’와 ‘알 권리’를 실현해 나가고, 그러한 권리를 위해 진상규명기구의 체계와 권한, 그리고 진상규명 활동의 내용을 국민과 소통할 수 있도록 다른 국가기구가 보조한다면, 그러한 사회는 다양한 사고와 사건을 계기로 민주주의 이행의 실질적인 토대를 강화시킬 수 있다. 진실규명이 어떻게 국민들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참여 속에서 이루어지고, 또한 ‘합리적 진실’에 가까운 진상을 어떻게 규명하였기에 국민들의 동의와 참여가 쉽게 이루어졌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추구해 왔던 과거사 진상규명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고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나가는 사회적 가치를 재정립하고 민주주의 이행의 디딤돌을 다시금 새기고자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세월호 진실’은 침몰하지 않고 계속해서 바다 위로 떠오르고 있는데, 세월호 특별법이 ‘해난사고’로 치부해버리는 진상만을 규명할지, ‘국정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진상까지 규명할지 아직 미지수이다. 야만적 행위자들은 과거의 모든 기억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거나 조작한다. 하지만 죽어 가는 기억을 살리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인권사회를 위해, 그리고 사람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과거와 미래의 징검다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