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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열사정신 계승하여 노동해방 쟁취하자

금속노조연구원   |  

열사정신 계승하여 노동해방 쟁취하자

 

이남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노동의 희망이 스러져가고 있는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

 

1997~8IMF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한국 사회는 자본의 자유가 극대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급속하게 재편됐다. 역대 자본주의 모델 중에서도 가장 물신 자본의다운 체제가 한반도 남단을 지배하게 됐다. 이제 모든 것은 돈과 자본과 이윤의 논리로 귀착된다. 무한경쟁이 금과옥조가 되고 정글의 법칙은 사회생활의 상식이 됐다. 극단적인 양극화가 역진불가로 점증돼왔다. 옆에서 누구 하나 죽어나가는 것쯤이야 멀거니 바라보는 비인간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게 사는 것인가 싶다가도 하루의 생존 앞에서 섣부른 자존심쯤이야 내려놓는게 일상의 관성으로 굳어졌다. 신자유주의 강제 이식 20여년도 채 되기 전에 후발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은 OECD 가입국으로 경제규모와 무역규모면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면서 유례가 없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쥤지만, 국민 전체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는 하향평준화로 치닫고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 한국 자본주의 먹이사슬 구조의 최정점에서 천문학적 수익을 빨아들인 재벌일가를 밑받침하며 우리 사회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가장 큰 피해자이자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이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선 한국 사회의 정상화는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났지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신규채용이란 꼼수로 최종심 판결은 무력화됐다. 파견법의 징벌 조항이 재벌자본의 위세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동안 대법원 판결을 등에 업고 정당한 투쟁을 결행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구속 해고되고 손배가압류에 시달렸다. 정규직 선별 채용에서 배제된 사내하청 조합원은 정규직 아버지의 바램을 저버리고 생을 접었다. 비정한 자본의 논리가 가장 부정의하고 가혹한 방식으로 제조업 최대 사업장을 관통했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매번 휴지조각이 됐다. 민주노조의 정신으로 사내하청 정규직화와 노조 조직화에 힘을 쏟아야 할 정규직 노조는 때리는 시어미보다 더 미운 시누이가 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은 공염불이 됐다.

 

최대 규모의 민주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각개전투하며 피흘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희망을 얘기하는건 비현실적이다. 법을 어긴다기보단 아예 무시하고 마이 웨이를 외치는 자본의 질주에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수단은 여전히 노동조합밖에 없다. 정몽구로 표상되는 저 강대한 재벌 자본에 맞서기 위해선 노동자들이 뭉쳐야 마땅하지만 아직도 원하청 노조는 갈등과 분열의 악순환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뭉쳐야 살고 쪽수가 힘이다는 자명하고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이런 와중에 투쟁하는 노동자의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동지들이 안타깝게 무너지고 있다.

 

산화해가고 있는 동지들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양우권 이지테크분회장은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로 복직하고도 자본의 비열한 탄압에 못 견뎌 자결했다. 노조를 말살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 이지테크 자본을 이길 수가 없었다. 회유와 협박, 대기발령과 표적 해고와 감시와 집단따돌림으로 괴롭힘당했다. 자신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현장에서 쫓겨나 엉뚱한 곳에서 일감도 없이 유배당했다. 가야산 근린공원에서 광양제철소 전경을 바라다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양우권 동지는 유서에서 화장해서 이지테크가 소재한 제철소 1문 앞에 뿌려주면 새들의 먹이가 되어서라도 내가 일했던 곳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에 들어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양우권 동지는 죽임을 당했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무노조경영을 앞세운 포스코 원청의 압박과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이 회장으로 있는 이지테크 그룹의 탄압에 무너져내렸다. 모든 조합원들이 떠나버리고 혼자 남아 버티기엔 현실이 너무 가혹했다. 희망의 끈이 됐어야 할 부당해고 판결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고 더 많은 번민과 고뇌를 안겨다주었다. 노동조합 활동이 죄 아닌 죄가 되고 말았다.

 

배재형 하이디스지회 전 지회장도 자본의 압박에 내몰려 자결했다. 쌍용차와 마찬가지로 먹튀 자본의 무책임이 낳은 사회적 타살이었다. 대만자본 이잉크의 먹튀가, 그런 먹튀 자본을 비호해온 정부가 순정한 노동자를 짓밟아 죽였다.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직장폐쇄와 정리해고, 그리고 개별 노동자에 대한 무차별 겁박이 안타까운 희생을 강제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노동자만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 노동-자본간 대립 전선에서 압도적 우위를 확인한 자본의 폭압 아래 노동의 가장 강력한 진지인 노조를 지켜온 동지들이 비통하게 산화해가고 있다.

 

노동해방 세상 쟁취가 열사 정신 계승이다

 

양우권 동지는 똘똘 뭉쳐 끝까지 싸워서 정규직화 소송, 해고자 문제 꼭 승리하십시오. 멀리 하늘에서 연대하겠습니다.”라고 유서를 통해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배재형 동지는 "동지들 끝까지 잘 싸워서 꼭 이겨주세요.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꼭 이겨주세요. 거듭 동지들 죄송합니다. 악질 자본 없는 세상으로 갑니다. 천사불여일행 노동해방."이라고 마지막 절절한 염원을 남겼다. 천번 생각만 하는 것보단 한번 몸 움직여 행하는 것이 낫다. 가슴을 치며 천사불여일행을 다시 가슴에 새긴다.

 

단위 사업장 수준에서 자본의 전방위적 공격에 견디다 못한 동지들이 스러져가고 있다. 너무도 소중한 동지들이 자신의 목숨마저 내려놓고 있다. 건강한 노동자 현장권력의 정수인 민주노조의 주역들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민주노조마저 껍데기가 되지 말라는 법 없다는 얘기가 심상찮게 들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전노협을 거쳐 결성된 민주노총, 그 민주노총의 핵심인 금속노조의 근간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양우권 동지와 배재형 동지는 우리 대신 희생됐다. 자본과 정권에 의해 타살된 두 동지의 염원, ‘정규직화와 악질자본 없는 노동해방 세상은 우리 모두의 하나된 바램이다.

 

비통한 심정을 뒤로 하고 속울음 참으며 싸워야 할 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나 되어 투쟁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