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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성과주의의 확산, 대안인가 공세인가?

금속노조연구원   |  

공공부문 성과주의의 확산, 대안인가 공세인가


이상훈(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불평등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어떤 이론도 경제적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다만, 자유주의적 경제이론은 불평등의 경제적 효용성에 유독 주목한다. 즉, 불평등은 그 자체로 부정의(injustice)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성장 혹은 효율성을 촉진시킨다는 의미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주류경제학의 기대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 높은 노동생산성을 보이는 국가는 (임금)불평등이 ‘높기로’ 유명한 멕시코, 한국, 일본이 아니라, ‘낮기로’ 유명한,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등이다. 또 다른 예로, 200년 전 북중미 ‘빈국’ 미국과 ‘부국들’ 아이티, 쿠바, 멕시코의 경제력 격차가 극적으로 뒤집히는 데는 채 100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러한 반전을 이끈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당시 그 ‘부국들’에 내재화된 극명한 ‘불평등’이었다. 즉 불평등이 발전으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완전한 기회의 평등, 완전한 시장 등 적지 않은 상황적 조건들의 결합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부재할 때, 불평등이 경제적 발전을 이끈다는 논리는 일부 경제학 분파의 일방적 믿음에 불과하다. 멀리 돌아왔으나, 2015년 한국의 공공부문은 불평등의 확산을 통해 발전을 꾀하고 있다. 정부는 서열화와 차등적 보상을 핵심으로 하는 성과주의적 인사관리체계를 공공부문에 전면 도입하고 있다. 불평등이 발전을 낳을 것이라는 빈약한 신화적 믿음이 반복되고 있다.


성과연봉제, 예고된 몰아치기


“공공기관의 생산성은 민간기업의 7~8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공기관은 내부경쟁이 부족하고, 조직/보수체계는 동기유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지난 1월 26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성과연봉제의 대상 확대와 성과에 따른 임금 차등 폭의 확대를 주요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확대방안(이른바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언급한 현 정부의 상황 인식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임금체계가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임금수준이 결정되는 사실상의 연공급체계이며,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내부경쟁의 부재와 이로 인해 퇴출의 위험이 없는 과도하게 안정적인 내부 노동시장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저위험-고보상’ 체계를 민간기업처럼 ‘고위험-고보상’ 체계로 전환해야 하며, 성과연봉제의 확산은 이를 위한 핵심적 수단이라는 것이다.


집권초기 ‘공공부문 정상화’라는 미명 하에 진행된 박근혜 정부의 1단계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당시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확대 해석되었던 공공부문 부채 해소를 위한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직접적 통제를 목표로 단행되었다면, 집권 3년차인 2015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2단계 구조조정은 주요 목표로서 공공기관의 기능조정이, 그 핵심적 수단으로서 성과연봉제와 임금피크제 도입이 설정되었다. 물론, 박근혜정부가 공공기관에서 성과연봉제의 도입을 모색하고 추진했던 최초의 정부는 아니다. 그 폭과 강도는 다르지만 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연이은 정부들에서 공공기관 통제와 성과주의 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성과연봉제의 도입이 추진된 바 있다. 하지만, 성과연봉제라는 명목상의 제도 도입이 실질적인 임금격차의 확대로 나아가지 않았던 DJ-노무현 정부 때와는 달리, MB정부 이후 공공부문에 대한 보다 노골적인 공세를 지속했던 연이은 보수정권은 ‘경영평가’라는 매우 강력한 제도적 수단을 동원하여 공공기관에서의 성과주의 인사관리체계를 강제하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성과주의의 확산과 관련하여 2015년 이후 현재까지의 국면은 매우 특수하고 중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앞서의 ‘권고안’을 통해 성과연봉제의 적용대상이 기관별로 전 직원 대비 70%까지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임금 차등폭이 확대되고 누적적인 성과평가방식의 강제적 도입은 단순한 임금유연화를 넘어, 향후 상시적이고 ‘근거 있는’ 고용조정, 저성과자 퇴출, 인력 감축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더욱이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의 확산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현 정부가 악착같이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개악 시도의 공공부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 개정 등 강압적 행정지침의 발표와 함께 패키지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유지된다면, 공공기관에서 성과연봉의 전 직원 확대 및 직급별 차등 확대, 기본연봉의 차등화 및 누적식 변경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에서의 성과주의, 가능한 만남인가?


성과연봉제의 확산은 노동자 개인에게 있어 초미의 관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권고안’은 성과연봉이 차지하는 비중을 기관 유형별, 직급별로 15~30%선으로 명기하고 있으나, 이것이 실제의 임금 격차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크다. 먼저, (여전히 법적인 논쟁의 대상이기는 하나) 성과연봉은 고정성이 부정되기 때문에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을 공산이 커, 각종 수당의 감소에 따른 추가적인 임금 불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 또한, 퇴직시점에서 성과연봉의 하락은 퇴직급여의 산정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의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에, 노후의 경제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주제인 임금피크제와 연동해서 생각할 때, 고령 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은퇴 후 불안을 동시적으로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러한 성과연봉제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대상이 공공부문이라는 데 있다. 공공부문은 민간부문과 달리 효율성의 극대화를 통한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런 기본적인 차이는 성과연봉제와 공공기관 사이의 ‘부정교합’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먼저, 성과연봉제가 초래하는 단기적 성과주의의 확산은 공공부문의 공익성의 약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보면 성과연봉제는 ‘주기적인’ ‘성과평가’를 기초로 하는 만큼, 성과주의의 확산은 공공기관을 ‘장기적 공익창출’이 아닌 ‘단기적 수익창출’의 대리자로 전락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 공공부문에서 성과평가의 원론적 불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즉, 공공부문에서는 성과주의적 인사관리제도의 전제인 ‘성과’를 어떻게 정의하고, 수치화할 수 있는지가 매우 불투명하다. 국민의 공적인 쾌락, 삶의 질, 안전의 유지 등 공공부문의 다양한 결과물(outcome)의 성과를 어떻게 계량화할 것이며, 더욱이 개인 수준의 업적평가로까지 분할할 것인가? 단순한 예로, 매일 똑같이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지하철을 반복적으로 운전하는 기관사 10명의 ‘성과’를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까? 중대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라면, 이는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공동업무가 많아 개인별로 표준화된 업무분장이 적으며, 하나의 기관에서 많은 직종이 공존하는 공공기관의 사업장 특성상, 미시적 단위의 성과평가가, 그것도 일괄적이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평가기준이 마련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일방적 추진 방침에 밀려, 기관별, 부서별, 개인별 평가체계 자체는 만들어졌다. 현재의 성과연봉제가 비율을 할당하고, 그에 맞춰 개인별로 배분하는 강제적 상대평가 방식이라는 점에서 제도의 외형은 어쨌든 갖춰진 꼴이다. 문제는 실제로 신뢰할 수 있는 마땅한 객관적 지표가 부재하기 때문에 평가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성과 평가 기준의 마련, 평가의 단행, 임금의 차등 지급은 사용자의 독점적 권리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자의적 판단에 대한 부담, 그리고 이에 대한 피평가자의 불신을 종종 사용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명칭은 ‘권고안’에 불과한) 정부의 방침을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별 공공기관에 대한 기관 평가와 기관장 평가에, 사전적 예산 통제와 사후적 감사원 통제가 중첩적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경영평가 시스템에서, 어떤 ‘권고안’이든 이에 대한 거부 혹은 불성실한 이행은 즉각적인 불이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의 분명한 결과로서 ‘노동’의 약화


이런 의미에서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현재의 국면은 노사관계적 측면에서 볼 때 보다 정치적인 색채를 가진다는 평가가 더 적절해 보인다. 쉽게 말해, 성과연봉제는 ‘합리적 대안’이라기보다는 ‘파워게임’의 성격이 더 크다는 점이다.


먼저 지적할 것은, 정부의 기획된 의도였는지와 관계없이 현재의 상황이 노동조합의 약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 지점에서 그러하다. 한편으로 성과연봉제의 강화·확대는 임금 결정 과정에서 단체교섭을 통한 노조의 개입력을 약화시킬 공산이 크다. 사실상 직능급 체계의 도입과 이에 따른 복잡한 성과평가 체계의 확산은 앞서 언급했듯이 사용자의 자의적 판단 가능성을 높일지언정, 임금결정에서 노사교섭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제약하게 될 것이다. 결국, 노사관계의 중심축이 집합적 규율에서 개별적 규율로 이동하면서, 자본의 노동통제가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성과연봉제의 확산은 노조운동의 조직 구심력의 이념적 기초라 할 수 있는 집합성(collectivity)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개인 실적을 평가의 기초로 하는 성과연봉제는 그 자체로 조합원 개인의 조직 충성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조직 내부의 갈등의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기존의 성과연봉제가 성과급을 추가로 지급하는 플러스 섬(plus-sum)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보다 노골적인 비용절감을 목표로 저성과자의 임금 삭감이 고성과자의 임금인상으로 연결되는 제로섬(zero-sum)의 성과연봉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은 노동의 개인주의화를, 그리고 노동조합에 대한 지지의 위기를 가속화할 위험이 존재한다.


연대의 회복과 공론화 투쟁을 통해 대안 구축


요컨대, 성과연봉제의 확산은 임금안정성의 파괴, 고용불안정의 심화, 노사관계의 불균형 심화, 공공성의 약화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시도를 무력화시키거나 혹은 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심도 있는 고민과 대안의 모색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어떻게’이다.


돌이켜 보면, 보수적 우익정권은 정규직-비정규직, 공공부문-민간부문 등 노동시장의 분할과 격차의 증가를 매우 극우적이고 선동적인 방식으로 돌파해 왔다. 이는 이른바 “분노를 조직화”하는 방식이었으며, 그 분노의 대상은 ‘철밥통’으로 묘사된 공공부문과 ‘정규직’ 등 조직화된 노동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선동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의 대안으로 노동과 고용의 ‘상향평준화’가 아닌 ‘하향평준화’를 밀어붙이는 토대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정규직과 공공부문 노동에 대한 공세가 역설적으로 ‘경제를 살리는 노동정책’으로 변모하는 웃픈(?) 현실을 낳고야 말았다. 적전 분열과 정치의 실패가 낳은 결과라 볼 수 있다.


강도 높은 성과주의적 인사관리체계의 확산이 조직 발전과 더 나은 결과를 양산할 것이라는 믿음은 이미 민간부문에서부터 깨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정부의 시도는 의도된 공세이거나 무지의 산물이다. 거칠게 보면, 공공부문에서 성과주의 인사관리체계의 확산에 대한 노동의 대안은 그간의 정부와 자본의 전략을 정확히 뒤집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연대를 조직화”하는 것이다. 공공부문에 대한 성과주의 공세가 공공-민간을 구분하지 않고 조직화된 노동 전체를 겨루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인식의 폭을 집단적으로 넓혀갈 필요가 있다. 더불어, 국민의 서비스이용권을 제약하는 것이 노동권의 강화가 아니라 단기적 성과주의의 확산과 이에 따른 공공성의 훼손에 있음을 공론화하는 것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