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위기의 쌍용자동차
금속노조연구원 |
2009.07.23 00:00
일촉즉발 위기의 쌍용자동차...
구자송 정책연구원 운영위원(현 기아자동차 정책자문위원장)
쌍용자동차에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진압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심지어는 수면가스 살포 뒤 진압이라는 천인공노할 계획도 세웠음이 폭로되었다.
“아빠, 내 생일 다가오는데 선물 사줄 거지?” 일곱 살 먹은 큰 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래, 아빠가 내려가서 꼭 선물 사줄게.” 하고 말했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들 녀석이 전화로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쌍용차비정규지회 부지회장 서맹섭 동지가 보낸 “쌍용차 굴뚝편지5”의 내용 중 일부이다.
“정리해고 분쇄없인 살아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각오로 지상 70m 고공에서 벌써 두 달여가 넘게 굴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동지의 절규에 가슴이 미어진다.
2004년 쌍용차가 상하이차에 매각될 당시, 노조와 시민사회에서는 “연구개발 위축 및 기술 유출의 위험”, “투자 약속 불이행”, “생산하청기지화” 등 해외매각으로 인한 폐해를 들어 반대했었다. 그리고 2009년 현재 이런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쌍용차의 경영난이 강성노조의 무차별 파업 때문이 아니라 정부와 산업은행, 그리고 먹튀자본 상하이차에 의해서 발생한 것임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러나 쌍용차의 최대주주인 상하이차는 쌍용차 경영난의 해법으로 자본투자보다는 정리해고 방안을 발표하고,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이를 지원하는 망나니짓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처절한 투쟁에 돌입한 지 수십 일이 지났다. 노동조합은 임금손실을 감수한 순환휴직과 5시간 근무제를 제출했다. 생산축소만큼 노동시간을 줄여(임금도 줄어든다) 감원을 최소화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조합원들의 퇴직금을 담보로 회생자금 마련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키를 쥐고 있는 정부와 산업은행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계속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진압의 방침만을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일 법정관리인은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1%의 회생가능성도 없다”며 2,600여명의 ‘구조조정’이 쌍용차 회생의 유일한 해법이라는 기존의 주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로써 이제는 더 이상 어떠한 논의나 합리적 해법도 정부의 방침을 바꿀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자신들의 실책을 철저히 강성노조의 책임으로 전가하여 국민들의 여론을 호도하려는 저의를 노골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이제 우리에겐 오로지 조합원들의 투쟁만이 유일한 해법임을 다시한번 절감하며 강고한 투쟁의 결의를 모아낼 시간이 된 것이다.
현재 쌍용차의 모습 속에 미래의 내 모습이...
현장 곳곳에서 “들러리 파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들린다.
“파업을 하면 끝장이다”, “쌍용차 같이 되고 싶냐?” 등등 연대투쟁에 대한 부정적 의견들이 횡횡한다.
쌍용차 노조가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파업을 일삼은 적이 있는가?
“강성노조(?)”가 쌍용차 위기에 어떠한 구체적 영향을 주었는가?
쌍용차 노조가 온건한 노조로 경영에 적극 협조했다면 위기는 없었을 것인가?
“그들이 유태인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므로.
그들이 동성애자들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어느 독일인 신부가 남긴 참회의 글이다.
한국의 천박한 자본주의 운영시스템으로 볼 때 언제든지 노동조합의 강성여부와 아무런 관계없이 경영상의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저들은 노동자들의 목숨 줄을 끊는 짓을 되풀이 할 것이다.
설사 위기가 오지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정리해고라는 칼날로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조장하여 노동자 길들이기를 끊임없이 획책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불행한 일은 발생하고 난 뒤에 되짚어진다.
그때 그러지 않았어야 했는데....
15만이 하나 된 단결투쟁만이 내일의 내 모습에 책임을 질 수 있음을 명심하자.
쌍용차 투쟁은 나의 투쟁이다!
구자송 정책연구원 운영위원(현 기아자동차 정책자문위원장)
쌍용자동차에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진압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심지어는 수면가스 살포 뒤 진압이라는 천인공노할 계획도 세웠음이 폭로되었다.
“아빠, 내 생일 다가오는데 선물 사줄 거지?” 일곱 살 먹은 큰 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래, 아빠가 내려가서 꼭 선물 사줄게.” 하고 말했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들 녀석이 전화로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쌍용차비정규지회 부지회장 서맹섭 동지가 보낸 “쌍용차 굴뚝편지5”의 내용 중 일부이다.
“정리해고 분쇄없인 살아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각오로 지상 70m 고공에서 벌써 두 달여가 넘게 굴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동지의 절규에 가슴이 미어진다.
2004년 쌍용차가 상하이차에 매각될 당시, 노조와 시민사회에서는 “연구개발 위축 및 기술 유출의 위험”, “투자 약속 불이행”, “생산하청기지화” 등 해외매각으로 인한 폐해를 들어 반대했었다. 그리고 2009년 현재 이런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쌍용차의 경영난이 강성노조의 무차별 파업 때문이 아니라 정부와 산업은행, 그리고 먹튀자본 상하이차에 의해서 발생한 것임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러나 쌍용차의 최대주주인 상하이차는 쌍용차 경영난의 해법으로 자본투자보다는 정리해고 방안을 발표하고,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이를 지원하는 망나니짓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처절한 투쟁에 돌입한 지 수십 일이 지났다. 노동조합은 임금손실을 감수한 순환휴직과 5시간 근무제를 제출했다. 생산축소만큼 노동시간을 줄여(임금도 줄어든다) 감원을 최소화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조합원들의 퇴직금을 담보로 회생자금 마련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키를 쥐고 있는 정부와 산업은행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계속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진압의 방침만을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일 법정관리인은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1%의 회생가능성도 없다”며 2,600여명의 ‘구조조정’이 쌍용차 회생의 유일한 해법이라는 기존의 주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로써 이제는 더 이상 어떠한 논의나 합리적 해법도 정부의 방침을 바꿀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자신들의 실책을 철저히 강성노조의 책임으로 전가하여 국민들의 여론을 호도하려는 저의를 노골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이제 우리에겐 오로지 조합원들의 투쟁만이 유일한 해법임을 다시한번 절감하며 강고한 투쟁의 결의를 모아낼 시간이 된 것이다.
현재 쌍용차의 모습 속에 미래의 내 모습이...
현장 곳곳에서 “들러리 파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들린다.
“파업을 하면 끝장이다”, “쌍용차 같이 되고 싶냐?” 등등 연대투쟁에 대한 부정적 의견들이 횡횡한다.
쌍용차 노조가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파업을 일삼은 적이 있는가?
“강성노조(?)”가 쌍용차 위기에 어떠한 구체적 영향을 주었는가?
쌍용차 노조가 온건한 노조로 경영에 적극 협조했다면 위기는 없었을 것인가?
“그들이 유태인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므로.
그들이 동성애자들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어느 독일인 신부가 남긴 참회의 글이다.
한국의 천박한 자본주의 운영시스템으로 볼 때 언제든지 노동조합의 강성여부와 아무런 관계없이 경영상의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저들은 노동자들의 목숨 줄을 끊는 짓을 되풀이 할 것이다.
설사 위기가 오지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정리해고라는 칼날로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조장하여 노동자 길들이기를 끊임없이 획책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불행한 일은 발생하고 난 뒤에 되짚어진다.
그때 그러지 않았어야 했는데....
15만이 하나 된 단결투쟁만이 내일의 내 모습에 책임을 질 수 있음을 명심하자.
쌍용차 투쟁은 나의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