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래로 흐르는 저수지를 만들자
아래로 흐르는 저수지를 만들자
이종탁(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주말 특근에 등장한 시간제 노동자
2014년 1월 노동조합으로서는 화들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민주노조운동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기아자동차에서 주말 시간제 노동자를 투입한다는 소식 때문이다. 이곳저곳에서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지만 결국 주말 시간제 노동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예견되었던 바이다. 자동차 업종에 주간연속2교대제가 도입되면서 완성차 및 1차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더 짧은 노동을 하면서 현재의 임금을 보전받게 되었다. 그리고 여유시간이라는 것을 가졌고, 이에 따른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처럼 주말 특근보다 주말에 여가를 즐기는 노동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수출’의 대명사인 자동차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내걸었다. 그러니 자동차 자본과 경영진으로서는 이를 활용하여 주말 가동률을 높이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문제는 노동조합이다. 조합원이 잔업과 특근을 원할 때는 그것을 확보해주는 일을 하다가 특근에 참여하는 인력이 줄어드니 대책이 묘연하다. 인력을 충원해야 하지만 정규직 충원이 쉽지 않다.(지원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아자동차 공개 채용 경쟁률은 수백대 일이 넘는다.) 자본은 주말 가동률을 위해 정규직을 투입하고 싶지 않다. 노동조합이 자본의 논리와 요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주말 시간제 노동자가 투입되었다.
물량 상황에 따라 처지가 급변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한국GM 상황이 만만치 않다. 정확히 말하면 GM자본의 세계 글로벌 경영전략에 따라 생산비용이 낮거나 생산 수익이 높은 곳으로 세계에 흩어진 생산기지들을 재편하면서 한국의 세 군데 공장도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일부 공장에서는 조업단축과 휴무를 하기도 하는데, 군산공장에서는 차종 단종에 따른 교대제 변경과 더불어 사내하청 노동자 순환휴무 및 감축안이 발표되었다. 혹자의 말을 빌리면 사내하청 노동자 순환휴무 및 감축안은 노동조합에서 요구했다고 한다. 이같은 내용이 알려지고 한국GM 노동조합 집행부는 호되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세간에 알려진 사내하청 노동자 순환휴무 및 감축안은 철회되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물량 축소와 조업단축에 대응하기 위해서 사내하청 노동자 고용조정 방안을 제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비단 한국GM 현 집행부만이 아니라 어느 집행부라도 정규직 조합원을 우선 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 고용조정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는 자본과 경영진에 맞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노동조합 집행부로서는 사내하청을 우선 고용조정하는 방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물량과 조업시간, 그것이 고용량을 결정한다는 자본의 논리를 노동이 넘어서지 못하는 한 이같은 상황은 언제라도 현실이 될 수 있다.
죽음으로 드러나는 현장 실습 노동자
한 노동자가 또 다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너무 어리다. 18세. 고3이다. 현장실습을 나왔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회사는 서둘러 문제를 덮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고3 현장실습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을 드러난다. 강압과 강요에 의한 장시간 노동. 불법적인 야간노동 투입. 불법·탈법적 노동 착취. 평생 일터를 꿈꾸면서 자기 청춘을 던진 10대의 아이들에게 자본과 세상은 냉혹했다. 저항할 줄 몰랐던, 자기 권리도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던 젊은 노동자는 폭설에 내려앉은 지붕 밑에서 세상을 마감했다. 지금도 수많은 18살 청춘들이 잉여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80살도 더 살아야 하는 인생에서 잉여로 산다는 것이 더 참혹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청춘들에게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였을까. 단 한 번이라도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고 자기의 노동력을 팔고 있을까. 노동조합은 과연 그런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지금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들은 그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아래로 향하는 저수지를 만들자
지금까지 살펴본 현실에 대한 가장 무책임한 대응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을 향해 손가락질 하는 일이다. 그것은 참 쉽다. 그런데 현재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한국 사회 노동‘운동’과 진보·계급‘운동’이 빚어낸 현실이다.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들이 25년 전에는 민주노조운동의 투사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 온 몸을 던진 투쟁을 거치면서 이제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래서 심지어 ‘귀족’이라는 호사스러운 수식어까지 붙게 되었다. 열심히 투쟁해서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은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노동시간 나누기, 일자리 나누기가 임금의 축소, 고용의 불안, 복지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자리 연대, 고용연대를 말하는 것은 탁상공론에 가깝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도 미래가 불안하다. 그래서 현실의 임금과 고용은 매우 중요하고 그것을 타인과 나눌 수 있을 만큼 풍족하지 않다. 도덕적·윤리적으로 나눔의 삶을 살라고 훈계할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인정해야 할 것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도 혼심의 힘을 다해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노동자들에 기반하는 단위 노동조합과 집행부가 초월적 행동을 할 수 없다. 조합원을 향해 운동을 설파하고 가치를 피력하는 현장조직들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세속의 일을 하는 노동조합과 집행부에게 도덕을 설파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긴 해도 처방은 될 수 없다. 경제적 실리를 위한 전투적 담합형태. 이제 전투적이라는 보조어를 떼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노동자 연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노동조합이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런데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쏟아내거나 일방적인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어떤 유의미한 진전도 이룰 수 없다.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제안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각종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고 조직사업을 할 수 있는 거대한 저수지를 만드는 방향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아주 거대한 저수지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