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진정 경제위기의 해결책인가.
금속노조연구원 |
2009.05.28 00:00
구조조정, 진정 경제위기의 해결책인가.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bkkim21kr@naver.com)
2009년 2월, 미국 상업은행 부실 확대와 동유럽 국가의 대외채무 누적에 대한 부실로 2차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자, 미국 연방정부가 서둘러 19개 주요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미국 정부는 2개월 이상 끌어서 금융시장을 진정시킬 수준으로 적절하게(?) 수위 조절된 스트레스 테스트를 5월 7일 발표했고, 그 결과 글로벌 금융시장은 부실의 실체를 잠복시키면서 현재 소강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이른바 자유낙하를 거듭해오던 금융위기가 잠복국면으로 전환된 2라운드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 국가의 대규모 재정투입과 금융안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미 금융영역을 넘어 전개된 세계경제는 금융위기의 소강상태 진입과 무관한 실물경제 위기를 계속 심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2009년 4월 기준으로 8.9퍼센트에 달해 미국 정부의 예상치를 훌쩍 넘었고 연말까지 9퍼센트 중반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업자 수가 늘어나는 것과 연동되어, 실물경제 위기의 가장 큰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글로벌 소비위축 역시 각국 정부의 공격적인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소매판매지수는 계속 하락세를 타고 있으며 국민들은 소비지출보다는 여전히 저축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 와중에 경제위기마다 나타났던 시급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이 주축이 된 채권은행들은 5월안에 9개 대기업 그룹들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관계자들은 3월말 현재 기업과 가계의 부실로 금융권의 부실채권 규모가 2008년 9월 이후 무려 10조 이상이 늘어나 31조원에 달한다고 집계하면서 시급한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다.
실상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와 경영주가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단골 해법으로 꺼내든 것이었다. 경제 불안의 원인과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었든 해결방안의 1순위는 한결같이 ‘신속한 구조조정’이었던 것이다.
외환위기의 강한 충격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에게도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포는 구조조정과 그 필연적 결과인 것처럼 간주된 정리해고와 감원이었다. 노동자에게 구조조정은 곧 일자리 박탈과 생존의 위협을 의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측면도 있었다. 현재 쌍용차 구조조정계획과 2600명에 이르는 대량 감원 계획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위기의 만능 해법처럼 간주된 ‘구조조정’에 대해 몇 가지 짚어볼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첫째로, 현재 위기가 과연 기업들의 부실 방만 경영, 과잉 중복 투자, 경쟁력도 없는 출혈 매출경쟁의 결과로 나타났는가 하는 점이다. 적어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한국 기업들의 부실경영 문제는 일부 건설사들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제기된 바가 없다.
오히려 현재 기업들이 경영난에 빠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식시장, 채권시장, 대출시장에서 자금순환이 심각하게 경색된 결과 기업들의 자금조달 구조가 막히면서 발생한 측면이 크다. 금융시장의 충격이 기업 자금순환을 교란시켰고 그 결과 기업의 경영난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이렇다면 대책은 당연히 금융시장의 구조개혁을 통해 자금순환을 정상화 시키는 것이지 급작스럽게 기업구조조정을 주장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두 번째 문제는, 이번 기업 경영난과 기업 생존위기가 금융권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이 ‘채권 은행단’이라는 이름을 쓰고 기업의 구조조정을 책임지며 주도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기업이 ‘문제’여서 금융권이 ‘해결사’가 된 모양새다. 이는 정확히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현재 은행을 필두로 한 금융권은 기업과 기업의 노동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현재의 구조조정이 과거에 늘 그랬던 것처럼, 과연 ‘인력 구조조정’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은행으로의 부실 확산을 막기 위해서’, ‘기업의 수익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감원, 임금삭감 등의 형태를 띤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것처럼 말하는 것 역시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위기가 진정 ‘과잉 고용유지’와 ‘과도한 임금으로 인한 기업 이윤 하락’으로부터 발생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은행의 대출관리 책임과 일정한 위험을 감수한 대출지속, 그리고 기업회생을 위한 경영진의 책임 있는 행동이 먼저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특히 현재의 기업 경영난이 한편으로는 금융시장 붕괴로 인한 자금 조달 통로 봉쇄 때문이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극심한 수요위축으로 인한 판매 격감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량 감원과 정리해고로 추가적인 실업자를 양산시키고 임금삭감으로 노동자의 소득을 감소시킨다면, 국민들의 소비위축은 더 심해질 것이고 기업들의 판매부진은 갈수록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들과 국민들로 하여금 고용유지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여 미래의 안정적 소득에 대한 신뢰를 주고, 이를 기반으로 국민들이 정상적인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종국적으로 기업의 회생을 터주는 길이고 우리 국민경제가 하루라도 빨리 회복되는 첩경이 될 것이다.
구조조정, 특히 인력 구조조정은 경제위기만 터지면 위기 원인과 양상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위기 타개책으로 써먹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더욱이 금융위기로 시작된 지금의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는 해법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bkkim21kr@naver.com)
2009년 2월, 미국 상업은행 부실 확대와 동유럽 국가의 대외채무 누적에 대한 부실로 2차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자, 미국 연방정부가 서둘러 19개 주요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미국 정부는 2개월 이상 끌어서 금융시장을 진정시킬 수준으로 적절하게(?) 수위 조절된 스트레스 테스트를 5월 7일 발표했고, 그 결과 글로벌 금융시장은 부실의 실체를 잠복시키면서 현재 소강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이른바 자유낙하를 거듭해오던 금융위기가 잠복국면으로 전환된 2라운드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 국가의 대규모 재정투입과 금융안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미 금융영역을 넘어 전개된 세계경제는 금융위기의 소강상태 진입과 무관한 실물경제 위기를 계속 심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2009년 4월 기준으로 8.9퍼센트에 달해 미국 정부의 예상치를 훌쩍 넘었고 연말까지 9퍼센트 중반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업자 수가 늘어나는 것과 연동되어, 실물경제 위기의 가장 큰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글로벌 소비위축 역시 각국 정부의 공격적인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소매판매지수는 계속 하락세를 타고 있으며 국민들은 소비지출보다는 여전히 저축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 와중에 경제위기마다 나타났던 시급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이 주축이 된 채권은행들은 5월안에 9개 대기업 그룹들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관계자들은 3월말 현재 기업과 가계의 부실로 금융권의 부실채권 규모가 2008년 9월 이후 무려 10조 이상이 늘어나 31조원에 달한다고 집계하면서 시급한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다.
실상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와 경영주가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단골 해법으로 꺼내든 것이었다. 경제 불안의 원인과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었든 해결방안의 1순위는 한결같이 ‘신속한 구조조정’이었던 것이다.
외환위기의 강한 충격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에게도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포는 구조조정과 그 필연적 결과인 것처럼 간주된 정리해고와 감원이었다. 노동자에게 구조조정은 곧 일자리 박탈과 생존의 위협을 의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측면도 있었다. 현재 쌍용차 구조조정계획과 2600명에 이르는 대량 감원 계획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위기의 만능 해법처럼 간주된 ‘구조조정’에 대해 몇 가지 짚어볼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첫째로, 현재 위기가 과연 기업들의 부실 방만 경영, 과잉 중복 투자, 경쟁력도 없는 출혈 매출경쟁의 결과로 나타났는가 하는 점이다. 적어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한국 기업들의 부실경영 문제는 일부 건설사들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제기된 바가 없다.
오히려 현재 기업들이 경영난에 빠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식시장, 채권시장, 대출시장에서 자금순환이 심각하게 경색된 결과 기업들의 자금조달 구조가 막히면서 발생한 측면이 크다. 금융시장의 충격이 기업 자금순환을 교란시켰고 그 결과 기업의 경영난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이렇다면 대책은 당연히 금융시장의 구조개혁을 통해 자금순환을 정상화 시키는 것이지 급작스럽게 기업구조조정을 주장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두 번째 문제는, 이번 기업 경영난과 기업 생존위기가 금융권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이 ‘채권 은행단’이라는 이름을 쓰고 기업의 구조조정을 책임지며 주도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기업이 ‘문제’여서 금융권이 ‘해결사’가 된 모양새다. 이는 정확히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현재 은행을 필두로 한 금융권은 기업과 기업의 노동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현재의 구조조정이 과거에 늘 그랬던 것처럼, 과연 ‘인력 구조조정’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은행으로의 부실 확산을 막기 위해서’, ‘기업의 수익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감원, 임금삭감 등의 형태를 띤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것처럼 말하는 것 역시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위기가 진정 ‘과잉 고용유지’와 ‘과도한 임금으로 인한 기업 이윤 하락’으로부터 발생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은행의 대출관리 책임과 일정한 위험을 감수한 대출지속, 그리고 기업회생을 위한 경영진의 책임 있는 행동이 먼저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특히 현재의 기업 경영난이 한편으로는 금융시장 붕괴로 인한 자금 조달 통로 봉쇄 때문이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극심한 수요위축으로 인한 판매 격감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량 감원과 정리해고로 추가적인 실업자를 양산시키고 임금삭감으로 노동자의 소득을 감소시킨다면, 국민들의 소비위축은 더 심해질 것이고 기업들의 판매부진은 갈수록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들과 국민들로 하여금 고용유지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여 미래의 안정적 소득에 대한 신뢰를 주고, 이를 기반으로 국민들이 정상적인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종국적으로 기업의 회생을 터주는 길이고 우리 국민경제가 하루라도 빨리 회복되는 첩경이 될 것이다.
구조조정, 특히 인력 구조조정은 경제위기만 터지면 위기 원인과 양상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위기 타개책으로 써먹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더욱이 금융위기로 시작된 지금의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는 해법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