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위기와 시사점
독일 수출 산업의 상징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이 위기에 빠졌다. 지난 9월 초 회사는 판매 부진으로 인한 경영위기로 긴축 프로그램이 불가피하고 심지어 공장 폐쇄와 인원 구조조정의 가능성까지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공장을 닫고, 몇 명이 구조조정 될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언론에서는 공장은 2~3개, 인원 구조조정은 장기적으로 최대 3만 명까지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이리되면 부품사의 문제도 심각해진다. 그러잖아도 부품사들은 이미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유럽 자동차시장은 팬데믹 이전 상태를 회복하지 못한 채 현재 판매량이 그때에 비해 20% 감소한 상태로 콘티넨탈, 셰플러, ZF, 보쉬 등 대형 부품사들의 고용은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최대 25,000여 명이 감소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이런 터에 폭스바겐의 긴축경영은 설상가상으로 2차 벤더 이하의 중소 부품사들까지 합치면 그 영향은 가늠하기 어렵다.
독일은 전통적 자동차 강국이다. 폭스바겐이 정말 독일 내 공장을 폐쇄한다면 87년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될 것이며, 경영상 이유로 해고를 한다면 30년간 지켜온 고용보장의 원칙도 깨지게 된다. 그동안 폭스바겐은 경제성(경쟁력)과 고용안정을 회사가 지켜야 할 동등한 가치로 여겨왔고, 이는 독일의 산업평화를 유지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금속노조와 폭스바겐의 사업장평의회는 경영실패를 노동자의 희생으로 만회하려는 사측의 태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면서 공장폐쇄와 경영상 해고를 강행할 경우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왜 폭스바겐은 위기에 빠졌을까?
폭스바겐의 위기는 한마디로 산업전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의 산업전환을 흔히 ‘이중전환’이라 부르는데, 하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탈탄소화로의 산업전환이며 다른 하나는 디지털 전환이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이 이중전환은 전기차로 모아진다. 화석연료와 하드웨어(기계) 중심의 내연기관차에서 소프트웨어로 제어하고(SDV) 탄소배출이 없는 전기차로의 이행이 자동차 산업전환의 핵심이다. 물론 수소차나 e-퓨얼(합성연료) 또는 바이오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도 언급되기는 하나 현재의 기술 수준이나 경제성에 비추어 대안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래차의 대안으로는 전기차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유럽의 자동차시장이 전반적으로 둔화하고는 있지만 전기차 부문은 증가한다. 이는 독일의 전통적인 강세시장인 내연기관차 부문은 줄어들고 약세인 전기차 시장이 늘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이 미래차 시장은 테슬라와 중국업체에 내주고 있다. 테슬라에는 디지털화의 기술력에서, 중국에는 가격 경쟁에서 밀린다. 폭스바겐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2024년 상반기 유럽의 순수전기차 판매는 1% 늘었으나, 독일을 제외하면 9%의 성장률을 보였다. 독일은 전기차 판매가 16.4%로 급감했다. 그 이유로는 먼저 2023년 말 정부의 예산 부족으로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중단했기 때문이라는 데서 찾는다. 이는 분명히 큰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구매보조금에 대한 요구가 많고, 곧 부활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조금은 위기의 급한 불을 끄는 일시적 수단은 될 수 있으나 언제까지나 이에 의존할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는 경쟁력이다.
경쟁력 차원에서 폭스바겐의 가장 큰 문제는 전기차의 핵심 기술 부족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사업장평의회에서 지적했던 문제다. 배터리와 디지털 기술을 내재화해 경쟁력을 키우고 고용도 창출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회사는 ‘파워코’(PowerCo)와 ‘카리아드’(CARIAD)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대응하고 있지만 너무 늦었고 성과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금속노조와 사업장평의회가 경영의 실패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파워코는 전기차용 배터리 전문회사로 원자재 가공에서 배터리 셀 개발 및 시스템 생산, 재활용까지 배터리 생태계의 전 과정을 수직 통합한다는 목표로 2022년 설립되었다. 2030년까지 독일과 유럽에 6개의 공장을 건설하여 2만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폭스바겐 그룹의 전기차 모델에 80%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나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아직 배터리 부문은 대부분 한국이나 중국업체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한다. 폭스바겐의 전기차 모델인 ID.3와 그에 상응하는 내연기관차 골프 8세대에 들어가는 부품의 생산네크워크 비중을 보면 후자는 60%가 독일 내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전자의 국내 비중은 36%에 불과하다. 그만큼 전기차 배터리 부문의 수입 비중이 높다는 얘기다. 이렇게 전기차를 생산할수록 부가가치는 해외로 넘어가는 구조로 인해 경쟁력과 경영성과를 내는 데 한계를 갖는다.
운영체제(OS)와 클라우드 연결 등 그룹 전체의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개발하는 자회사로 2020년 설립된 카리아드는 아예 ‘실패’라는 비판이 많다. 설립 당시 10%였던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 비중을 2025년까지 60%로 올린다는 목표였으나, 개발이 지연되거나 개발된 소프트웨어의 질도 좋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룹 산하 미래차 출시 계획이 전면 수정되면서 막대한 손해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결국 회사는 최근 미국의 스타트업 ‘리비안’에 전략적 협력을 위해 50억 달러를 투자했다. 자체 개발을 포기한 셈이다. 하드웨어 중심(내연기관차)의 경직된 관료주의적 조직문화가 소프트웨어 중심의 미래차 개발에 방해요소라는 비판도 나온다.
높은 중국 의존도의 문제도 제기된다. 그동안 폭스바겐은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대 40% 정도까지 이를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높았다. 중국공장의 경쟁력은 높았으며, 이는 독일 공장의 손실을 상쇄하는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내연기관차 수요가 줄어들면서 폭스바겐의 입지는 중국업체에 크게 밀리고 있다. 2020년 이후 판매량이 계속 줄어들어 공장가동은 현재 전체적으로 58%밖에 되지 않아 일부 공장의 폐쇄를 거론하고 있다. 내년에 난징 공장의 생산을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른 공장의 추가적인 폐쇄도 고려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와 함께 제품전략도 비판을 받는다. 아직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비싸 저소득층에서는 구매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소득이 높을수록 전기차 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독일은 저가의 보급형보다는 중형 또는 프리미엄 모델개발을 지향했고, 이것이 독일의 강점이라 생각했다. 전통적으로 대중차에 중점을 뒀던 폭스바겐도 이 전략을 따랐다. 이는 실수였다. 규모가 큰 보급형 시장을 다른 업체(특히 중국)에 내주게 된 것이다. 뒤늦게 25,000유로 또는 그 이하의 가격인 소형 ID.2 모델을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나 이마저도 소프트웨어의 문제로 연기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 문제는 회사의 판매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전기차가 비싸면 저소득층은 내연기관차를 선호하게 되고,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게 된다. 따라서 저가의 소형 전기차를 개발하여 저소득층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환경단체들은 환경적으로 유해한 SUV나 중형차 대신 소형 전기차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보조금은 차량 가격이 아니라 구매자의 경제적 여력에 따라 차등화할 것을 요구한다. 저소득층이 더 많은 지원을 받아 기후위기 대응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드러났다. 이제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독일은 보통 ‘투 트랙’으로 움직인다. 회사의 문제는 단체교섭과 공동결정을 통해 노사가 해법을 찾고, 정책적 문제는 노사정이 만나는 사회적 대화로 푼다.
노사는 올해 말까지 해법을 찾자는데는 의견을 같이하나 책임 소재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지금의 위기는 경영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절대 노동자의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며, 회사는 독일의 높은 노동비용과 지나친 고용 보호로 인한 과잉인력이 생산성과 경쟁력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의 양보를 요구한다. 어디에서 타협지점이 찾아질지 두고 볼 일이나, 회사의 일방적인 공장폐쇄나 해고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평의회의 강력한 투쟁 의지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니더작센) 정부가 20%의 지분을 갖는 대주주로 폭스바겐의 감사회에 2명의 대표가 참여하는 독특한 공동결정제도 때문이다. 이들과 노동 측 대표가 합치면 감사회의 다수를 차지해 노동과 공공성에 반하는 회사의 경영전략은 관철되기 어렵다. 1994년 경영위기 때도 3만여 명의 감축이 얘기됐으나 임금보전 없는 노동시간 단축(주4일제)으로 고용안정과 비용절감을 결합하는 타협지점을 찾아냈고, 회사의 재도약에도 크게 공헌했다. 산별교섭과 공동결정 제도가 살아있는 한 이번에도 노사 어느 한 편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치열한 공방을 통해 공동으로 결정한 해법은 구성원으로부터 존중되고 위기 극복에 모두가 참여하는 장점을 갖는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사회적 대화 기구인 ‘자동차정상회의’(Autogipfel)도 가동됐다, 9월 23일 경제부 장관은 자동차 완성차업체 및 부품사, 금속노조, 자동차 협회 등 자동차산업 관련 주요 인사들을 초대해 독일 자동차산업이 처한 위기 극복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여기서 전기차 구매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정책적 지원 방안들(소비자에 구매보조금, 업체에 차량 가격 인하 지원금, 세제 혜택, 인프라 확대, 전기료 인하 등)이 나왔으며, 계속 논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원정책이 설계될 것이다. 또한, 폭스바겐의 위기를 계기로 업체와 보수 정치권에서 EU의 탄소 감축 목표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독일의 업체들은 앞으로 수업 억 달러의 벌금을 물고,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상회의’에서는 이 문제도 다룰 것이다. 기후문제가 진보와 보수의 극한 정치적 양극화로 치닫지 않도록 정책적 조정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폭스바겐은 이러한 투 트랙전략으로 산업평화와 고용을 지키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저가격-고품질’로 산업전환 시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중국과의 경쟁에서 독일의 전통적인 ‘하이로드’(High Road) 모델을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니면 모두가 가격 경쟁의 늪에 빠져 비용 절감이 우선시 되고 노동의 인간화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게 될까? 이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폭스바겐이 지금의 위기에서 어떤 대응 모델을 발전시킬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이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