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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노광표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금속노조연구원   |  

며칠 후 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다.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추석 연휴는 최장 10일로 늘었다. 하지만 추석 연휴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실업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고, 임금 체불로 일한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현재 전국 체불임금액은 8910억 원이고, 피해 노동자 수는 21만 9000여 명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4개월이 지났으나 양심수는 한 명도 풀려나지 못하고, 과거의 적폐 세력들은 거리를 활보한다. 노동 현장의 상황도 대동소이하다. 전국교직원노조와 전국공무원노조가 법외노조 상태이고, 100여명의 해직자들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국회 앞 농성 중이다. KBS, MBC 등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내팽개치고 오직 권력의 의중만 살핀 KBS, MBC 사장은 아직도 주인 행사를 하고 있고, 왜곡보도에 반발하다 쫓겨난 노동자들은 추석 연휴를 방송국 로비에서 맞이한다.

 

여러 노동 사안 중 핵심은 일자리 확충과 노동 격차 해소이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으뜸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며, 더 악화되는 양상이다.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8월 취업자 수는 2674만 명으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고작 21만2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13년 12월(20만1000명) 이후 4년 반 만에 취업자 수 증가폭이 가장 작았다. 지난 3월(46만6000명)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된다. 물론 구조화된 일자리 위기가 몇 달 안에 해결 될 사안은 아니다. 더욱이 북한 핵 개발, 사드 배치 등 한반도 긴장 격화에 따른 경제적 불안정성 심화는 일자리 위기를 더 악화시킨다.

 

노동 내부 격차도 더 확대되었다. 고용노동부의 ‘2016 회계연도 기업체 노동비용조사’에 따르면 상용근로자 10명 이상인 기업체 2850곳의 1인당 월평균 노동비용은 전년보다 3.2% 늘어난 493만4000원으로 나타났다. 300인 이상 기업은 4.3%(25만8000원)가 오른 625만1000원이었고 300인 미만은 1.8%(6만9000원) 늘어난 394만원으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법정 외 복지비용의 차이도 컸다. 노동자 1인당 월평균 법정외 복지비용은 전년보다 5.6% 감소한 19만8000원이었다. 건강·보건 지원은 전년 대비 6.6% 늘었지만 식사비(-13.0%), 휴양문화체육(-8.8%), 주거비(-7.4%) 등은 줄었다. 300인 이상의 법정외 복지비용은 30만1000원으로, 300인 미만(12만원)의 2.5배였다. 식사비 지원은 대기업(6만9000원)과 중소기업(6만6000원)이 엇비슷했지만 자녀학비와 건강·보건 지원비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각각 11.9%, 17.6%에 그쳤다.

 

실업 확대와 노동격차 심화는 노동조합에 불리한 환경이다. 지난 10년간 대기업과 공공부문노조에 가해졌던 고립화 전략은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약화시켰다. 노동운동은 이제 일자리 창출과 노동양극화 해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정부와 자본만을 탓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현재의 노동 상황에는 노동의 책임도 비껴나기 힘들다. 30년 전 노동자대투쟁으로 작업장을 민주화했지만, 노동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이다. 정규직·대기업·남성 중심의 노동운동이 기업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업별 임금 인상과 복지에 매달릴수록 노동시장 내 이중구조는 고착화되었다.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산업구조 개편, 대기업 편향 정책의 중단, 교육제도 및 직업훈련 시스템의 전면 개조 등 장기 전략과 기반 구축도 중요하지만 당장 문제를 풀 수 있는 단기 처방도 마련되어야 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조합의 첫 실천 과제는 주당 52시간 준수이다. 국회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법 개정에 나서야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 없다. ‘과로(過勞)’는 한국인들의 일상이 돼버리는 듯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5년 한국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이었다. OECD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2246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수치이다. 가장 노동시간이 적은 독일(1317시간)과 비교하면 연간 796시간, 99일을 더 일한 셈이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장시간 노동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파괴한다. ‘장시간 노동-저부가가치-저임금’의 고리를 ‘노동시간 단축-고부가가치-고임금’의 선순환구조로 바꿔야 한다. 구조조정의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기 위한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 방안을 마련하고 실업대책을 확충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를 나누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연대임금정책의 추진 과제이다. 한국 노동조합들의 임금정책은 임금극대화(노동소득분배 개선), 임금평준화(임금연대), 완전고용(고용확충) 등의 3개 정책 중 임금극대화-임금평준화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임금극대화가 초점이었고,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임금평준화로 관심이 이동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임금극대화(wage maximization)’ 논리가 지배적이다. 한국의 노동조합들이 여전히 임금극대화 정책을 추구하는 이유는 노동조합과 산별 노사관계의 파편성과 비포괄성에 기인한다. 1987년 이후 구조화된 기업별조직과 교섭 체계 속에서 노동조합의 임금정책은 임금수준을 높이는 ‘임금 극대화’에 매몰된 것이다. 이 결과 사회적으로 전체 노동자, 고용 형태별,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에 대한 공정성 시비는 확대되고 있으며, 노조의 사회적 신뢰와 정당성을 약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제 노동조합의 임금정책은 기업 규모별, 고용 형태별 격차 해소를 위한 연대임금정책으로 나가야 한다. 임금격차 해소는 공장의 울타리를 뛰어 넘는 노조의 임금 평준화(wage leveling) 정책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글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 좋은 소식을 들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사내하청 비정규직노동자와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연대의 정신이 사라져 버린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노동운동의 무덤일 뿐이다. 새로운 세상 건설을 향한 노동 혁신은 하방 연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책 제목처럼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