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사회의 역설
촛불혁명이 가져다 준 선물일까. ‘노동존중사회’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핵심공약 중의 하나가 노동존중사회였고, 노동관련 대회나 집회에서는 어김없이 노동존중사회라는 표어가 등장한다. 지난 연말 사회원로들은 지체 없는 노동존중사회의 건설을 재차 촉구했고, 얼마 전 대통령은 양대 노총 대표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지난 정부가 하도 노동배제적이었기 때문일까. 이 정도만 해도 뭔가 큰일을 한 것 같고 노동이 존중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뿌듯한 마음이 있긴 한데, 그러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인 것 같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란 노동이 배제되지 않는 사회, 다시 말해 노동의 참여가 보장되는 사회라 할 수 있을 터인데, 과연 노동의 참여가 보장되었을 때 노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노동배제적인 정부와의 싸움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해고, 구속 등 물리적 탄압에 의한 어려움은 더할 나위 없이 크다. 어렵지 않다는 것은 전술‧전략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노동배제적인 정부 하에서는 노조가 ‘투쟁’이라는 싸움의 무기를 크게 고민하지 않고 들 수 있다. 실제로 그 무기 외에는 별다른 대안도 없을 뿐더러, 그러한 상황에서 그 무기는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를 따지지 않고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과격한 투쟁일변도라 할지라도 선악이 분명히 구별되는 싸움에서는 투쟁이 지지를 받는다. 그래서 노동배제적인 정부와의 싸움은 오히려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노동탄압이 아닌 노동존중의 사회, 노동배제가 아닌 노동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노동이 존중되고 참여가 보장되었음에도 투쟁이라는 무기를 들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투쟁의 정당성은커녕 민주적 제도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사회적 비난 아래 노조의 입지는 ‘진짜로’ 흔들리기 쉽다. 때문에 노동존중사회는 자칫하다간 오히려 노조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노조는 노동배제적인 시절보다 더욱 힘들고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존중사회의 역설이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다고 결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말해준다. 적폐세력이 물러난 후 마련된 민주적 참여의 장을 차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국민의 호응을 얻는데 성공했다.
사회적 대화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기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사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 10퍼센트 정도의 노조조직률, 그것도 기업별노조체제가 지배적임을 감안할 때 지금 한국에서 단체교섭으로 노동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단체교섭이 ‘1부 리그화’되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전체 노동세계를 보지 못하고 소수의 기득권 보호에만 신경을 쓸 가능성이 많으며, 실제로 그런 비난을 받아 온 것도 사실 아닌가. 좀 더 포괄적으로 노동자를 대변해야 하는 것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해 당연한 일이며, 사회적 대화의 장은 이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산별교섭체제로 가면 상황은 나아질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기업별교섭체제가 조속히 산별교섭체제로 전환되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대화의 기능이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의 노동세계는 세계화, 급격한 기술혁신(디지털화), 고령화, 수요의 개인화, 가치관의 변화 등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하면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어서 노사관계로만 풀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얘기다. 좀 더 많은 사회적 행위자들과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산별교섭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금속노조가 주도해 만든 ‘산업의 미래 연합’(Bündnis “Zukunft der Industrie”)은 이에 좋은 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연합은 독일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의 디지털화(‘산업4.0’)에 대응하기 위해 금속노조가 독일산업연맹과 정부의 경제부와 같이 2015년 결성한 것으로 현재 노사정에서 17개의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독일의 금속노조는 사업장의 기술변화와 산업(제조업)의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교섭과 사회적 대화라는 투 트랙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금속노조는 기술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교섭으로 풀 것은 풀되(임금, 고용, 노동시간, 노동조건 등),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혁신에 대비하고 산업4.0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논의하는 노사정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발생해야 달려가는 사후처리 방식이 아닌 미래의 산업과 노동의 문제를 사전에 논의, 예방적 조치를 강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연합에는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매력적인 제조업 만들기, 투자 강화, 제조업 노동 및 제조업관련 서비스노동의 미래, 미래의 가치사슬 구조, 국제경쟁력 등을 논의하는 5개의 분과를 설치하고 각 분과는 노사가 공동의장을 맡아 운영한다.
사회적 대화는 교섭의 의제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도 한다. 다시 독일의 예를 들면, 독일에는 노동부가 주관하는 ‘노동4.0’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산업4.0 시대(디지털 시대)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사민정학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의 플랫홈이다. 이 사회적 대화의 결과로 2016년 말 백서를 출간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선택노동시간법’(Wahlarbeitszeitgesetz)을 2년 간 시험적으로 운영해 본다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근무시간이나 근무장소가 유연화되고 있는 것을 노동의 관점에서 활용해 보려는 시도다. 즉, 노동자에게 시간주권을 되돌려 주자는 것인데, 근무시간과 장소를 노동자가 선택하면 회사는 경영 상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이를 수용한다는 제도다. 물론 아직 시험적 단계에 있지만, 그 아이디어는 교섭의 의제로 등장, 구체화되고 있다. 예컨대 독일의 금속노조는 2018년 단협에서 노동자가 원할 경우 2년 간 주 28시간까지(현재 35시간) 줄일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교대제노동자나 가족‧친지 중에 양육 또는 돌봄이 필요해서 노동시간 단축을 원하는 노동자에게 부분적으로 임금을 보전하는 것 외에는 임금보전이 없는 조건이다. 향후 이 협상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나 독일의 노동시간모델의 발전을 위해 획기적인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사회적 대화는 앞으로 노조 활동에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그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고 민주노총은 그에 참여하기로 했다. 잘 한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적 지탄을 면치 어려웠을 것이다. 노동을 존중하여 대화를 하자는데 그것을 거부할 명분은 일단 없다. 그러나 앞서 말한바와 같이 문제는 이제부터다. 참여를 통해 노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투쟁이라는 무기를 버릴 순 없다. 그러한 위협적 카드가 없다면 노조의 협상력은 없어질 것이고, 사회적 대화는 ‘사회적 구걸’로, 단체협상은 ‘단체적 구걸’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나 참여의 장에 들어선다면 투쟁 외에 또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 참여란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대화를 통해 상호 최적의 타협점을 모색해 나가는 과정이다. 여기서의 무기는 다름 아닌 정책적 역량이다. 그래서 조심스레 묻게 된다. 노조는 과연 그람시(Gramsci)적 의미의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을까? 즉, 노조는 사회적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세워나갈 수 있을까? 그래서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까?
참여는 헤게모니 싸움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조는 진짜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노동존중사회의 역설이다. 정책적 역량에서 밀린다면 노조는 갈 곳이 없다. 투쟁이 사회적 정당성을 가질 때는 노동배제적이고 노동탄압적인 시기였다. 이제는 노조의 새로운 무기, 정책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힘을 합해야 할 때다. 노동존중사회의 역설이 입증되지 않도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