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공적자금의 주인이고 국민이다!
공적자금으로 포장된 세금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적자금의 지원으로 경영의 위기와 부도와 같은 파국을 면하게 하고 기업의 회생을 유도해 왔던 공공기관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 자체가 어리석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누구든 세금과 공공기관의 실제 주인이 국민이라고 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헷갈린다. ‘국민’이라는 실체가 참으로 불분명해서 하는 말이다.
물론 너도 국민이고 나도 국민이다. 자주 듣는 말이 생각난다. 정치권력의 공간에서 나팔수들이 불어대는 ‘국민의 의사’라는 말이다. 국민 개개인의 생각을 모두에게 물어보았다는 것인지, 온라인의 댓글을 좌우하는 드루킹 사건처럼 댓글조작 프로그램의 작동결과를 말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여론조사기관이 긁어모은 조작적 결과를 의미하는 것인지. 너와 내가 국민의 자격으로 공적자금과 공공기관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공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공적자금으로 만들어져 운영되는 기관은 말 그대로 공공부문(public sector)이다. 각종의 권력 기관, 중앙·주·지방정부를 포함하는 모든 수준의 공공행정, 공공교육, 그리고 국영기업, 지방공기업, 공기업, 정부출연기관, 정부출자기관, 정부재투자기관, 정부재정지원기관(특수기관 및 각종의 법인) 등이 공공부문이다. 만약 사기업이 공적자금으로 회생하여 운영된다면, 그 기업도 역시 공공부문 혹은 공공기업으로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우조선해양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전쟁 같은 대결’이 대우조선해양에서 벌어지고 있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합병의 방식으로 현대중공업에게 매각하는 수순을 밟고 있고,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해양지회에 소속된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은 매각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인수후보자로 현대중공업을 확정했고, 3월 중에 현대중공업과 본 계약을 체결할 상황임을 고려할 때, 그 대결은 2000년에 있었던 대우자동차 아니 그 이전부터 수많은 공기업이나 공적자금이 투여된 공공기업을 새로운 자본에게 매각할 때마다 발생했던 작은 전쟁으로 치달을 것이다. 노동자들과 주민들은 삶의 권리를 내세울 것이고,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공공권력은 조선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앞세울 것이다. 여하튼 삶을 위한 ‘작은 전쟁’이 재현될 것이 뻔하다.
‘국민의 의사’에 따른다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국민과 전쟁을 치르겠다니. 말 그대로 어이상실이다. 이제는 권력이 공공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허상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실체가 없는 국민을 더 이상 들먹이지 말자.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바로 국민이고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또한 국민이다. 따라서 공적자금의 주인인 국민이 매각을 반대한다면 정부와 공공기관은 그 명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이 주인되는 민주주의인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를 말하고 주장하는 순간 되돌아오는 화살이 있다. 그 동안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과 그 지역의 주민들은 그저 공적자금이라는 곶감만 하나씩 빼 먹었지 주인노릇을 실제로 하고 있지 않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주인행세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국민이 아직도 자신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방관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곡을 찌르니 정말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공적자금의 주인이 된 순간부터 주인 노릇을 잘 했다면 권력의 매각놀이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국민 모두가 공기업뿐만 아니라 공적자금에 대한 관리와 운영의 원리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다. 공적자금을 쏟아 부은 기업은 그 순간부터 국민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운영구조로 바뀐다. 형식이야 공공기관(법원 혹은 은행)을 앞세우지만, 그 실체는 공공적인 참여와 관리를 전제로 민주적 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해야만 하는 공적 기업이다. 공공기관과 공적자금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가치 속에 그러한 원리들이 잉태되어 있다.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소유하고 관리·운영하는 협동조합이나 노동자자주관리 형태의 기업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원리의 근거이다. 이것은 매우 단순하고 구체적인 체제를 의미한다. 대우조선해양과 지역의 국민들이 공적 자금에 대한 관리와 통제의 권한을 보유하고, 그 권한으로 ‘스스로 주인이 되는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국민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당신이 바로 공적자금을 운영하고 관리할 국민이고 주인이기에 언제든 스스로 누려야만 할 소확행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