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조직혁신의 첫 걸음
금속노조는 현재 조직의 지도부들을 선출하는 선거가 진행 중이다. 후보자들은 조직의 발전과 혁신이 필요하고, 그 과제를 실현할 적임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선전하면서 조합원들을 만나고 있다. 아마 조합원들도 오랜만에 자신이 금속노조의 주인임을 확인할 것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투표의 권리를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직접선거 제도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는 노동조합에서 하는 선거뿐만 아니라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나 지자체 선거의 유권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존중하고 있는지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1987년 7-9월 대투쟁과 1990년 전노협의 결성을 돌아보면, ‘권리’의 소중함이 나를 엄습한다.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성’은 어느덧 민주노조운동의 나이가 30살을 넘어서 그런지 그저 고유명사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상념의 울타리와 가시덤불로 나를 이끈다. 권리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푸념으로 여겨도 좋다.
나는 가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니다. 하지만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질문도 아니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번 기회에 이 질문을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다. ‘당신은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 혹은 ‘아니요’를 답하라는 질문이 아니다. 그냥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실체의 상을 곱씹어 보자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자기를 사랑하는 실체가 무엇인지 느낌은 있다.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배려하고 존중하는 방법의 구체적 실체가 쉽게 떠오르지 않지만, 그 느낌만큼은 알아 챌 수 있지 않겠는가. 질문 받은 당사자도 아니면서 그 느낌을 추론해본다. ‘피해 받지 말자. 내 의지와 무관하게 손해 보지 말자. 나를 보호하면서 살아가자.’ 우리가 평상시에 ‘권리’라고 하는 것들이 풀어 헤쳐진 상태로 당신과 나의 느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느낌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의 실체라고 여기면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의 실체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 기원까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헌법이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랑의 실체가 확인된다. 너와 나는 이미 온갖 권리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아니 그물망처럼 엮여있는 사랑의 화신이다. 한마디만 하자.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의 단초는 ‘권리’를 타자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인정욕망의 분화구에 있다. 자기 권리에 대한 자신의 ‘인정투쟁’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에 대한 존중이고 타자의 권리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자신의 존재는 타자를 통해서만 확인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를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아주 상스럽게 대하는 경우들이 많다. 권리를 헐값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투표의 권리이다. 요즈음 금속노조 지부나 중앙의 임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진행 중이다. 나는 조합원이 아니라서 그런지 참으로 궁금한 부분이 있다. 조합원들에게 던지는 물음표이다. 조합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진짜 소중하게 대하고 있을까? 권리를 행사하는데 필요한 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있을까?
어떤 선거에서든 줄곧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기 스스로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고 선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없이, 누군가가 요청하고 강권하는 ‘동원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천대하는 현상이 즐비하다. 후보자들이 누구이고 어떤 활동을 해 왔으며, 조직을 이끌어갈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고 고민하는 조합원들이 그리 많지 않다. 번호들만 오고간다. 1번이다 2번이다. 2467이다, 51810이다. 물론 조합원들은 요청이 있더라도 자기가 자발적으로 선택한다고 강변하곤 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강요한다고 해서 밑도 끝도 없이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정말 목소리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을 이렇게 대하면서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조직에 대한 사랑도 자신에 대한 사랑과 별개가 아니다. 조직의 권리를 지키고 확장하려거든, 조직을 혁신하는 조직의 주인이 되려거든, 자기 권리를 스스로 존중하는 ‘권리 인정’에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정투쟁’의 동력을 타자에게서 찾지 말자. 그 힘은 바로 내 안에 있다. 우리는 ‘조합원인 당신이 바로 금속노조이다.’는 말을 자주 하고 듣곤 하였다. 특히 임원선거 기간에 자주 듣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야 한다. ‘조합원인 당신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금속노조를 사랑하고 혁신하는 것이다. 당신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면서 조직을 사랑한다는 감정놀음은 이제 그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