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본주의와 노동의 미래
“우리가 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그런데 ‘플랫폼 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얼마 전 플랫폼 노동에 대한 국회 토론회에서 어느 퀵서비스 노동자가 한 말이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옛날에 비해 아무것도 변한 게 없고, 지금은 그냥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것뿐인데, 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깊이 성찰해봐야 할 일이다.
플랫폼을 통해 일을 찾는 노동자를 플랫폼 노동자라 부르는데, 이들은 대부분 근로계약 없이 용역 위탁 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고 있다. 때문에 사회보장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고 휴일, 산재보상 등과 같은 근기법 상 보호 밖에 놓여 있으며,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집합적 통로도 결여되어 있다. 최근 서비스연맹에서 발표한 이동서비스 플랫폼 노동자들(퀵, 대리운전, 배달 서비스)의 실태를 보면 ‘플랫폼 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주 6일(월 25일)을 일하면서 월 평균 165만원(순수입)을 번다. 과거에 비해 노동조건이 나아진 것이 없으며, 노동강도는 높아져 대부분 사고 위험성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대리운전과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평균 50세 이상으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일의 선택과 방법에 대한 ‘자율성’이 많다는 것이 플랫폼 노동의 장점이라고 선전하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로 와 닿는 얘기는 아니다.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일거리를 선택할 여지가 없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가능한 한 많은 일을 받아야 한다. 또한 일하는 방식도 알고리즘의 은폐된 지휘 감독 하에 놓여 있어 업무의 자율성도 한계가 있다. 고용형태도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과거 직접고용에서 ‘디지털 특고’의 형태를 넘어 이제는 전속성, 전업성이 모두 약화되는 ‘휴먼 클라우드’(Human Cloud) 또는 ‘사람구름떼’의 노동형태로 가고 있다. 모든 면에서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플랫폼이 내놓는 사업모델은 희한하기는 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고객에게 제공할 재화나 서비스를 소유하지 않은 채 사업을 개척한다. 택시 없는 택시회사(우버), 숙박시설이 없는 숙박업체(에어비엔비), 매장 없는 유통기업(알리바바) 등,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특징인 ‘연결’을 통해 단숨에 세계 굴지의 회사로 올라선다. 그러나 이 새로운 사업모델이 노동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서 언급한 이동노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이른바 ‘타다 금지법’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 회사 대표가 불구속 기소되자 ‘한국은 4차 산업혁명의 무덤’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새로운 사업모델이 개발되고 번창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이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4차 산업혁명이 노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즉,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노동통제는 강화되고, 노동강도는 세지고, 한마디로 노동착취가 높아진다면 그런 ‘혁명’은 당연히 거부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업’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노동’과 결부시켜 논의해야만 기술혁신의 사회적 정당성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전통적 제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현대차 2025 전략’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글로벌 전동차(전기차/수소전기차) 시장에서 선두그룹으로의 도약, 플랫폼 기반 서비스 신산업 및 맞춤형 ‘모빌리티 라이프’ 제공, 영업이익률의 획기적 제고 등 새로운 경영전략을 제시했다. 그런데 여기서 빠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노동의 미래’다. 사업상의 비전은 보이는데 노동의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업모델로 생기는 일자리는 어떤 일자리인가? 신기술 도입으로 고용과 노동과정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지겹고 힘든 일은 줄어들고 좀 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일자리가 늘어나는가? 노동의 가치와 삶의 질이 향상되는가? 이러한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지 않는다면 노사의 상생은 허울뿐이다.
전반적으로 신기술과 새로운 사업모델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지만 노동의 비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어느 자동차회사의 노조 간부가 한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들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내연기관이 사라지고 전기차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기술개발에 따른 의장 자동화가 발전된다면 현재 공장 내 근무하는 조합원들은 고용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도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노동자의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회사 볼륨을 키우고, 기술을 습득하여 전문인력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과연 현재 조합원들이 이를 인정할지는 미지수이다.”
기술혁신을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고용과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불확실한데 무조건 찬성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지금 노동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디지털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새로운 시장이나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기존의 일자리를 플랫폼을 통해 외주화하는데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불안정 노동이 늘어나고 양극화는 심화된다. 디지털 기술혁신으로 실제로 고용과 노동조건이 좋아졌다는 얘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기술이 노동의 인간화보다 이윤추구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체제 속에서는 기술이 발전될수록 노동은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기술의 활용방식이 신자유주의적 속성에서 벗어날 때 노동의 비전은 살아나게 될 것이다.
새해가 왔다. 이제 신기술을 담을 ‘새 부대’를 준비해야겠다. 새 부대는 효율과 이윤의 경제적 관점을 넘어 연대와 포용의 사회적 관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의 미래가 있고 사회는 지속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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