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술의 대외의존성
1.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
한국의 기술력이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가운데, 중국에는 추월당하고 있다.
지난 3월 1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의하면,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최고 기술보유국인 미국에 비해 80% 수준으로 나타났다.
주요 국가 별 기술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잡았을 때 EU(96%), 일본(87%), 중국(80%) 등으로, 한국(80%)은 EU, 일본보다 많이 뒤떨어지며, 중국과는 같은 80%로 추격을 허용하였다.
<국가별 기술수준(%) 및 기술격차(년)>
자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2021.3.12.)
조사한 11대 분야 중 10대 분야에서 미국이 1위이며 기계·제조 분야는 EU가 1위를 차지하였다.
한국의 11대 분야별 기술수준은 건설·교통 분야가 미국 대비 기술수준(84%)이 가장 높고 ICT·SW 분야가 기술격차(1.9년)가 가장 적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우주·항공·해양 분야는 미국 대비 기술수준(68.4%)이 가장 낮고, 기술격차(8.6년)도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되었다.
중국이 추격한 기술분야는 우주·항공·해양(한국 68.4%, 중국 81.6%), 국방(한국 75, 중국 81.7), 소재·나노(한국 80.8, 중국 79.9), 생명·보건의료(한국 77.9, 중국 78), 에너지·자원(한국 80.2, 중국 81.6), ICT·SW(한국 83, 중국 85.7) 등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이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개 분야별 산업기술수준조사에서도, 한국의 산업기술 수준이 선진국과 비교할 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기술국 대비 한국의 기술수준이 가장 높은 분야는 일본 대비 97.6% 수준인 미래형 디스플레이였고, 이어 전기수소자동차(일본 대비 87.7%), 스마트홈(미국 대비 86.7%), 첨단 소재(미국 대비 85.9%), 첨단제조공정·장비(유럽 대비 84.6%) 순이었다.
<20개 분야별 산업기술수준조사(2019년)>
자료 : 신정훈 의원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기술수준 격차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분야는 차세대항공(미국 대비 70.9%)으로 기술격차 기간이 3.1년에 달했다. 그밖에도 디지털 헬스케어(미국 대비 75.4%), 3D 프린팅(미국 대비 75.8%), 맞춤형 바이오진단·치료제품(미국 대비 76.1%), AI 빅데이터(미국 대비 76.2%)가 있었다.
2. 기술무역과 소재·부품·장비의 대외의존성
기술무역이란 특허 및 사용료, 발명, 노하우의 전수, 기술자문, 컨설팅, 연구개발 서비스 등을 국가 간 거래하는 지적재산권을 말한다.
한국은 선진국을 모방한 추격형 전략으로 중위기술에 도달하였지만, 기술무역수지는 만년적자로 매년 40억 달러(약 5조 원)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에 대한 적자 폭이 가장 큰데, 매년 약 5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해 왔다. 미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등 선진국에 대해서는 구조적으로 적자이며 중국, 베트남, 인도 등 개도국에 대해서는 흑자를 보고 있다.
한국은 기술수출이 늘어나 기술무역 적자 폭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으나, 여전히 기술무역수지비(기술수출/기술도입으로 1이상이면 흑자)가 2019년 0.77로 선진국 기준인 1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한국의 기술무역수지 추이이다.
기술도입은, 매뉴얼을 보고 시공하는 실행단계가 아닌, 최초로 밑그림을 설계하는 개념설계 영역으로 지적재산권으로 거래한다.
한국 기업들은 정답이 있는 객관식 문제에는 강하지만, 문제의 근원과 기본 개념을 묻는 주관식 문제에는 약하다. 이는 단기성과에 급급해서 실패를 통해 장기간 축적된, 맨바닥에서 최초 설계를 하는 것과 같은 문제해결 능력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기술을 해외에 맡기면, 설계를 담당한 나라의 기업에서만 공급하는 자재와 장비를 쓰도록 개념설계가 작성되어 있다. 따라서 소재·부품·장비까지 수입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기술무역 추이> (단위 : 백만달러)
자료 : 한국은행,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2020.12.22)
실제 상품무역을 보면 소재·부품·장비에서 일본,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 대한 기술의존도가 크다.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산업은 2001년 240조원에서 2017년 786조원으로 생산이 3배 늘었고, 동기간 수출은 5배가 되어 무역수지도 동기간 9억 달러 적자에서 1375억 달러 흑자로 전환하는 등 외형은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여전히 낮은 기술자립도, 만성적 대일 무역적자 등 구조적 취약성이 상존한다. 소재·부품·장비의 대일 의존도를 보면 2018년 대일 전체 무역적자 241억 달러 중 소부장 적자가 224억 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주요 산업의 일본 대비 경쟁력 평가를 보면, 중화학공업은 대부분 대일본 경쟁력 열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주요 산업의 생산을 위한 중간투입에서 국산화율이 제조업 전체는 54%에 불과하며, 특히 수출주도형 산업인 반도체에서 국산 소재·부품·장비의 투입 비율이 27%, 디스플레이는 45%로 매우 낮다.
성장산업에서조차 국산투입 비율이 낮고,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것은 대량생산기반 제품구조와 낮은 생산성, 주요 소재·부품·장비를 해외에 의존하는 산업생태계의 취약성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그간 해외공급망에 치중했고 기술자립 측면에서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제조 등 생산기술을 위한 공학적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초과학이 중요한 분야인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한국 제조업은 매우 취약하며 향후 발전 단계에 따라 새로운 소재·부품·장비 이슈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3. 시사점
글로벌 공급사슬을 보면, 크게 미국이 설계와 기획, 독일·일본이 부품·소재와 공작기계, 한국·대만이 중간재 생산, 중국이 최종 조립을 맡는 기술 분업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한국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기술을 도입하여 생산한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는 제조업에서 부품·소재·장비를 일본, 독일 등에서 수입하여 조립 후 최종재를 수출하는 가공무역 방식과 유사하다.
한국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모방에 의한 추격에서 벗어나 시장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 실속 없이 4차 산업혁명 구호만 요란하게 떠들지 말고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와 핵심기술의 자립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과학 중시’, ‘중소기업 육성’, ‘개념설계 역량 확충’, ‘작업자의 숙련과 제안’ 등을 근본적으로 제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초연구 투자와 개념설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이 시장을 선점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분야는 기초연구이다. 기초연구의 결과로 획득한 지식을 활용해 응용·개발 연구를 거쳐 새로운 제품 또는 서비스가 시장에 출시된다. 그러나 단기성과에 급급한 기업일수록 기초연구를 등한시하여 원천기술이 취약하다. 빨리빨리만 강조하여 5~10년 소요되는 기초연구는 건너뛰거나 빌려 쓰고, 응용기술에 집중한다.
또한 한국 기업들이 개념설계를 수입해서, 설계도를 보고 그대로 실행(시공)하는 영역만 담당해서는 기술료, 소재·부품·장비 도입비 등이 매출액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마진이 별로 남지 않는다.
둘째, 중소기업을 육성하여 부품·소재 자립화를 이룩해야 한다.
재벌의 수직계열화 속에서 중소기업은 하청기업이 되어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기술과 인력 빼가기’, ‘온갖 갑질’ 등으로 발전이 차단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최종재에 주력하고 부품·소재는 중소기업이 전문화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한국의 중소기업은 기술, 자본, 시장에서 자립력이 취약하여 이를 담당할 수 없다.
최근 전기차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10년 후 내연기관차의 생산 중단이 예상된다. 현대차 납품업체 4,700개 중 전장품을 납품하는 회사는 190여개로 자율주행이나 전동화에 전혀 대응할 수 없는 부품사가 대부분이다. 정부가 연구개발을 지원하지만, 부품사는 완성차가 아이템을 주면 이에 의존해서 살아온 관행으로 줄도산이 예상된다. 전기차 부품·소재는 주로 전기전자회사가 맡고, 자율주행 기술은 앱티브 등 외국이 담당하는 등 현 납품체계 밖에서 핵심부품이 조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셋째, 작업자의 숙련과 제안에 의한 혁신이 필요하다.
한국은 숙련배제 자동화로 산업용 로봇도입이 세계 1위이며, 효율성과 기술혁신만 강조하여 고용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전기·수소차 관련 신기술을 개발하면, 회사는 노조가 있는 정규직 공장을 회피하고, 무노조 별도법인(비정규직 다수)을 설립하여 신규 아이템을 배치한다. 노동을 배제하고 숙련된 작업자를 몰아내는 자동화는, 노동자의 제안과 참여에서 발휘되는 창의성을 고갈시키고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초래한다. 사람에게 축적되어 있는 암묵지(개념설계)와 같은 고도의 숙련 역량도 해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