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과 노동조합의 과제
ESG 경영(투자)이 화젯거리다. ESG는 기후(Enviornment), 사회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영어 단어의 앞 세 알파벳을 뜻하는데 말 그대로 기후변화와 사회책임, 그리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중시하는 기업에게 투자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ESG 가치는 투자 전략을 넘어서 기업 경영의 가치가 되기도 한다. 현대자동차가 기존의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위원회’로 확대하는 정관개편을 20201년 주주총회에서 다루는 것이 그 사례이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기후변화, 인권, 환경, 사회책임처럼 이윤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역사가 깊다. 보통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으로 통칭되는 이러한 흐름을 나는 ‘성찰적 자본주의자의 좌클릭’ 정도로 이해한다. 환경, 인권처럼 비재무적 요소가 기업의 재무적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성찰적 자본주의자의 자본주의 재활성화 전략으로 규정하면 그 진정성을 무시하는 처사이려나.
스웨덴의 제7공적연금기금(AP7)은 유엔글로벌임팩트의 인권, 노동, 환경에 관한 10대 원칙에 따라 투자하는 공적연금이다. AP7은 2015년 파리협정 결과를 수용하고 투자 원칙에 ‘기후변화’까지 포함하면서 투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연금은 사회적 책임 경영을 다하지 않는 기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현재 AP7의 블랙리스트 기업은 총 74개인데 이중에서 한국기업은 포스코와 포스코인터내셔널 그리고 SK그룹의 지주사인 SK(주) 등 총 3개 기업이다. 포스코는 터키 해외공장에서 인권탄압 문제로, SK는 페루 가스 프로젝트에서 인권침해 혐의로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한국전력은 석탄발전 투자로 오랜동안 글로벌투자자들과 환경단체 등으로부터 바판을 받아왔다. 지난해에는 월스트리트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으로부터 ‘투자중단 경고’를 받았으며,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매출액의 30% 이상이 석탄일 경우 투자를 철회한다”는 원칙에 따라 한국전력을 투자금지 기업으로 정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네덜란드 연기금은 ‘탄소 배출 감축 노력을 하지 않는 한국 전력으로부터 투자금 6천만유로를 회수(매각)해 버렸다. 한전은 해외 투자자들의 압력에 못이겨 해외 석탄투자 사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고,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집중하고,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를 두기로 하였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2019년 한 해 수익률 11.3%, 수익금 73.4조원을 기록하고 기금적립금이 736.7조원에 달하는 세계 3위의 연기금 규모를 자랑하는 연금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연금법 제102조(기금의 관리 및 운용) 제4항에 따라 기금을 관리 운용하는 경우에 투자 대상과 관련한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고려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2015년 신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에 대하여 ESG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환경(기후변화, 청정생산, 친환경 제품개발), 사회(인적자원관리 및 인권, 산업안전, 하도급거래, 제품안전, 공정경쟁 및 사회발전), 지배구조(주주권리, 이사회, 감사제도, 관계사위험, 배당) 등 13개 이슈의 52개 평가지표를 통해서 기업의 등급을 매기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도 스웨덴의 공적연금만큼이나 ESG 활동을 잘 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2019년 기준 국민연금의 톱 텐 투자 종목을 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네이버-현대모비스-현대차-포스코-LG화학-SK텔레콤-KB금융 순이다. AP7의 투자 제외 대상이 된 포스코와 그룹의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이 버젓이 순위에 올라있다. 물론 ESG가 투자 평가의 모든 것은 아닐 것이다. 국민연금이 발행하는 『수탁자 책임활동 보고서』를 찾아보았지만 기업의 ESG 등급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채권에도 ESG 등급을 매기기로 했다고 발표는 했지만 평가기준은 비공개로 하기로 했다고 한다. 활동은 하고 있는데 관련한 정보는 ‘비공개’라서 투명하다고 얘기하기 머쓱하다.
ESG 투자와 경영 전략에 대해서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ISO26000 등 유사한 기업(조직)의 경영 패러다임이 논의될 때마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사회책임이나 지배구조에 보내는 관심에 비해 기후변화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CSR, ISO26000이 그냥 그렇게 지나갔듯이 ESG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리라 생각한다면 잘못된 판단이라 생각한다.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한 친환경 에너지, 산업 정책은 먼 미래의 얘기도 아닌 게 현실이다.
‘탈핵’ 관련 산업과 노동조합의 거센 저항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기후변화, 친환경, 탈핵에 대한 입장은 앞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나는 과감히 얘기할 수 있다. ‘그린뉴딜’이 금속노조와 금속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ESG 가치는 노동조합과 환경단체 그리고 시민단체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미래의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성찰하는 자본주의자와도 머리를 맞대고 얘기할 수 있는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ESG를 정책과 제도로 공공기관에 적용하고 있고, 기업은 경영 전략으로 녹여 내고 있다. 노동조합이 너무 뒤처지지는 말자. 국민연금처럼 ‘불완전한 성찰’의 행태를 보이는 기관이나 기업에게 제대로 된 ‘좌클릭’의 압력을 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노동조합이 ESG에 개입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