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을 할 수 없는 노동자들
노동조합은 이 맘 때면 바쁘다. 노동조합에서 가장 큰 사업인 임단투사업이 본격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중앙교섭이 이미 차수를 늘려가고 있고, 금속노조의 요구안에 대해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1차 제시안을 제출했다. 예상대로 그들의 제시안은 ‘산업전환협약은 얼렁뚱땅 떠넘기고, 임금은 금속산업 최저임금 동결안을 내놓는 등 부실하기 그지 없어’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래서 교섭 차수를 늘린 후, 금속노조는 쟁의행위찬반투표를 통해 쟁의권을 확보하고 투쟁에 돌입할 것이다. 그리고 임금과 단협을 조금은 향상된 조건에서 타결할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노동조합은 이 행위를 통해 임금인상, 단협체결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조합원들은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노동조합이 있어 이나마 다행이라고 하며 노조효과를 만끽한다.
그러나 이런 노조효과를 만끽하는 노동자들은 금속산업 내에서 20만명도 안된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20만명의 10배가 넘는 금속산업 노동자들 대부분은 임금교섭, 단체협상이란 용어를 모르거나 그것을 해본 경험이 없다. 당연하게도 노동조합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는 시흥시에는 시화공단이라는 국가산업단지가 있다. 입주업체수가 10,000여개이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 수가 12만명에 이르는 매우 큰 공단이다. 하지만 큰 공단에 비해 사업체규모는 작아서 사업체당 평균노동자수가 12명도 안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10개에 불과한 반면, 50인 이하 사업장이 98% 수준이다. 그 98%에 이르는 사업체내에 노조가 있는 곳은 거의 없어서 조직률은 제로 수준이다. 그래서 이들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있다. 주변에 노조가 없으니 노동조합을 구경하며 간접적인 노조효과조차 느껴보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노조가 없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임금도 작게 받지만 그들의 노동조건도 매우 열악하다. 시화공단이 있는 시흥시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경기도 31개 시군구 중 26위에 해당한다. 시흥시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곳은 도시가 아닌 이천, 양평 등 농촌지역 노동자들 뿐이다. 작업조건이 열악하여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코로나로 죽는 노동자는 없어도 산업재해로 죽는 노동자들은 많지만 누더기화된 채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조차 이들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건만 이들 노동자들에게 관심 갖는 집단 또는 사람들은 적다. 국가산업단지인지라 중앙정부의 관할하에 있지만 중앙정부가 노동조합을 만들어주거나 임금을 올려주지는 않는다. 고용노동부 소속 근로감독관은 그 수가 턱없이 적어 시화공단을 감독하는 것은 어렵다. 지방정부는 자신들 관할이 아니라고 하면서 각종 개발에만 관심을 갖는다. 정부영역이 아닌 시민단체들 역시 노동에 대한 관심과 관점이 서있지 않아서 노동자들에게 무심하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은 어떤가?
금속노조로 되돌아본다. 기업별노조를 산업별노조로 전환한 것은 기업단위가 아닌 산업단위로 노동자들을 조직하자는 것이었지만 금속산업내 많은 노동자들은 이 금속노조의 범위 밖에 존재하며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처지에 처해있다.
금속노조는 매년 임단투를 진행하지만 임단투의 결과물은 금속산업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만 적용된다.
그 결과 현재 금속노조 조합원 수의 10배가 넘는 금속산업노동자들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임단협을 모르고, 임단협효과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금속노조는 여기에 개의치 않는다. 금속노조라는 하나의 테두리와 그 테두리 내에 있는 노동자들만 중요시한다.
산별노조 정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현재의 금속노조 밖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사업, 이를테면 그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기 위한 사업을 임단투 못지 않게 진행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비실을 두고는 있지만 예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 일하는 체계 등을 고려해볼 때 미비실은 현재 금속노조 밖에 존재하는 거대한 미조직노동자들을 위한 실이 아니다. 적어도 그 기능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곳이다. 어찌보면 알리바이용 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슬픈 이야기이지만 금속산업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금속노조로부터도 외면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으로 범위를 넓혀보자. 사정은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노총도 산별노조와 지역본부에 소속된 노동자들만 챙긴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민주노총 경기본부 최정명 본부장에게 시화공단노동자들 조직을 위해 민주노총 시흥지부 건설을 여러차례 건의했지만 묵묵부답이다. 12만명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건만 돈이 없어서 시흥지부를 설치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곳에서 일하며 노조효과를 모르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비단 자본과 정권, 시민단체들만이 아니다. 그 일을 전념해야 하는 노동조합의 상급단체, 산별노조도 이들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있다. 산별정신, 1500만 노동자들의 단결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만 챙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에서 임단협은 매우 중요하다. 노동조합이 임단협을 안하고, 요구안 쟁취를 위한 파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 노조는 이미 노조가 아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자신들만의 권익증진을 위해 임단협을 한다면 그 노동조합도 정상적인 노동조합은 아니다. 이제 우리 노동조합을 되돌아볼 때이다. 우리 금속노조는 과연 정상적인 노동조합인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