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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 어떻게 가야 하나?

이문호/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금속노조연구원   |  

자동차산업은 130년이 넘는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 카, 공유경제 또는 모빌리티 서비스 등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 구글, 아마존, 애플, 우버, 테슬라 등 그동안 자동차산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IT 기업 또는 스타트 업들이 시장에 새롭게 진입해 지금까지의 사업영역과 경쟁구도를 흔들어 놓고 있다. 미래형 자동차와 모빌리티 서비스 영역은 모두 이들이 앞서 나간다. 그야말로 기존업체를 밀어내는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동차산업의 급격한 변화가 오게 된 데는 기후위기와 4차 산업혁명이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탈산소화 정책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불가피한 정책이다. 그리고 점점 더 국제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줄이고,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이른바 ‘핏포55’(Fit for 55)를 공표했다. 이로 인해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개발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 카 및 모빌리티 서비스 등 새로운 제품과 사업모델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미래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부터 자동차산업은 금속산업에서 전기·전자 또는 IT산업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이는 기존의 업체들로서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때문에 불안하다. 중소기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부품사의 60% 이상이 자본과 기술 및 전문인력의 부족으로 전환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부품사의 60% 이상이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산업전환의 쓰나미에 밀려 나가면 한국 자동차산업의 생태계는 그대로 무너진다. 부품사가 없는 곳에 완성차도 잘 될 리 없다. 산업전환이라는 가보지 않은 길, 어떻게 가야 하나?


유럽연합의 ‘핏포55’가 공표되자 독일의 금속노조 위원장이 곧바로 노조 홈페이지에 의견을 내놨다. 유럽연합이 공표한 일련의 조치는 매우 야심 찬 것이라면서, 그러나 목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정치는 이러한 목표가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하고 고용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달성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재생 에너지의 대규모 확대와 저탄소 제품 시장의 창출, 전기차를 위한 충전 인프라 구축 등이 그 조치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무엇보다 자본이 ‘환경덤핑’ 지역으로 떠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독일 내 상당수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는 적극적인 고용정책과 노동자의 숙련정책, 지역의 산업적 구조전환을 위한 정책적 지원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노동자들이 미래를 위한 고용능력을 키우고, 특히 탈탄소화에 영향을 받는 지역에 미래산업이 들어서지 않으면 녹색전환 계획은 전체적으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경 문제와 더불어 사회적 문제(특히 고용)도 같이 고려해야만 산업의 전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이는 우리에겐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부품사들이 전환을 반길 리 없다. 일자리가 중요한 노동자들은 지금의 내연기관차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고 산업전환에 저항할 수 있다. 여기서 노조는 정책적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노동자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다.


금속노조는 금년 통일요구안으로 ‘산업전환협약’을 요구했다. 그리고 중앙교섭 요구안으로 ‘기후위기 대응 금속산업 노사 공동선언’, 대정부 요구안으로 ‘기술변화 및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공동결정법’ 및 산별노조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을 요구했다. 이는 바로 노동자와 노조의 딜레마를 해소하고 미래를 위한 기후 대응과 순조로운 녹색전환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는 길이 불확실하면 누구나 주저하게 된다. 지금의 현실이 그렇다. 산업전환의 결과가 어떠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미래는 더 나아져야 할 텐데 그러한 확신이 없으면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산업전환협약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불확실성이 큰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면 같이 가는 사람들의 신뢰와 협력이 중요하다. 전환협약을 통해 미래의 목표를 같이 세우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희생되지 않도록 민주적 공동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노동자의 적극적 호응과 참여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개별 사업장을 넘어 전 산업적 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산별노조가 강화되어야 할 이유다.

 

산별전환협약과 산별노조의 강화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산업전환이라는 불안한 길을 새로운 기회의 길로 만들어 나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요소다. 따라서 성공적인 산업전환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자본과 정부는 이에 성실하게 응해야 한다. 민주적 노사관계가 사회적으로 확대될 때 비로소 가보지 않은 길을 모두가 같이 가게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