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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 쓴 대선, 그럴수록 더 씹어야 한다!

윤재석 / 금속노조 포항지부 조직부장
금속노조연구원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탄핵, 그리고 구속.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지나갔다. 촛불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승리로 부른다. 알고 보면 우리 금속노조도 매년 어떠한 승리를 염원하며 팔뚝질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매년 우리는 (부분적 일수도 있지만) 승리하고 있다.

2017년 투쟁 승리의 염원을 담아 투쟁을 준비하는 요즘, 조합원들은 이 시기엔 낯선 구경을 하고 있다. 이름하야 ‘장미대선’. 매일매일 대선 주자들의 행보와 공약들이 주옥같은 장면으로 편집되어 국민들의 머릿속으로 유입되고 있다. 현장조합원들은 그 장면들을 각자 기억했다가 쉬는 시간 대화거리, 술자리 안주거리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머릿속에서 오래가지 않는다. 이유는 기억해놓은들 내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시답잖은 얘기들이라 여기는 게 경북지역의 그간 쌓인 ‘대통령 뽑기’에 대한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뤄진 거짓투성이 대선은, 5년 주기로 치러지지만 이번엔 엄청나게 쌓인 폐단에 분노를 느낀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덕에 ‘5월’에 여유 없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과정을 두고 세상이 뒤집힐만한 큰 변화이자, 꺼지지 않은 촛불의 승리로 많이 평가된다. 하지만 멀게 본다면 이 변화는 빙산의 일각이자, 새로운 세상을 향한 도약의 발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문제는 전자든 후자든 이러한 변화가 현장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특히 지방의 현장노동자들에겐 그간 대통령이라는 주인공을 갈아치울 때마다 ‘대체 한 게 뭐가 있느냐, 오히려 바뀌고 나서 더 힘들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은 기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TK지역은 수도권보다 느리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배신감’ 덕에 그간 쌓여있던 보수의 감수성이 이제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고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이는 곧 감수성에 따른 의견차가 현장 내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시기라는 것을 방증하며, 더욱이, 현장 내에서는 세대 간의 의식 격차가 어느 때 보다 극명히 드러나 있어, 앞선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의 노동자들과 미래의 시대를 살아갈 젊은 노동자들 간의 갈등이 공존하고 있다. 현장을 조직하면서 젊은 또래의 조합원들은 미래의 관심과 책임보단 각자 하고 싶은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기성세대의 노동자들은 할 만큼 했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열심히 잔업, 특근에 매진하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세대의 중간층이 비어있는 현장에서 과연 미래에 대한 고민과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 그런 현장의 분위기 속에 대선정국은 사계절 중 금방 지나가버리는 봄 날씨 같이 느껴진다.

요즘 현장은 워낙 대선에 모든 초점이 쏠려있어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기보단, 관심을 강제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날 출근길에 올라오는 뉴스와 기사들을 보며 어떤 주제의 큰 그림보단 일부 조각에 관심을 가지고, 따라서 전체가 아닌 조각 입장을 갖는 것이 우리 조합원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즘 들어 점점 더 울타리 안으로 위축되는 현장을 만나면서, 투쟁을 조직하기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어쩌면 대선에 대한 관심과 마찬가지로 현장은 지침으로 내려오는 투쟁들을 각각의 일정, 각각의 사안으로 조각조각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촛불이 만들어낸 ‘장미대선’덕분에 '최저임금1만원', '재벌규제', '적폐청산' 등 노동 관련 주제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노동조합이 그동안 투쟁하며 제기해온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임단협 투쟁과 사업장 중심의 현장이 느끼기엔 여전히도 상징적이고 장기적인 느낌이 강하다. 어느 때보다 노조의 역할과 내용에 대해 고민하기 좋은 이때, 이 간극을 줄이고 현장의 요구를 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책상 구석에는 제19대 대통령선거 선거공보물이 놓여 있다. 현장 조합원들도 빠짐없이 나와 같은 선거공보를 받았을 것이다. 얼마나 뜯어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속의 내용들을 현장 조합원들과 나누고, 무엇보다 그 내용들이 어떠한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토론해봤으면 어땠을까, 그것이 지금시대의 노동조합이 대선공간을 활용하며 현장을 성장시키기 위한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비정규직철폐! 노동3권 보장!을 외치며 곡기를 끊고 광고탑에, 고공에 올라가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동자의 목숨마저 앗아가는 악랄한 갑을오토텍의 직장폐쇄, 폭력적인 공권력 투입으로 강제 투입한 사드를 바라보며 허망하게 주저앉은 성주 군민들과 국가안보, 동성애와 성소수자의 인권을 찬성과 반대, 그리고 법의 잣대로 제단당하는 현실까지 이 모든 사안은 현 시대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대선후보들은 문제점의 근본해법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그에 더해 각각에 대한 해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연일 토론회에 나와 얘기하고 있고 공보물에 담아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선공약을 놓고 토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홍준표는 기업들이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문제의 원인은 해고의 유연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준표는 현시대 문제점의 근본해법은 기업들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해법으로 기업들에게 해고의 자유를 주고 이를 막는 귀족강성노조를 탄압하는 것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귀족강성노조'로 매도되고 있는 우리 현장 조합원들은 시민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야할까, 우리는 생각만큼 귀족이 아니라고 얘기해야하는가? 우리는 그만큼 강성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 대선공간에서 조합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펼쳐낼 수 있을지 현장에서 토론해야한다. 공약을 보고 부족한 것은 스스로 채우고, 문제점은 비판을 제기하는 과정으로 현장의 감수성을 하나로 모아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계속 생략하고, 이대로 현장의 토론문화가 사라진다면 진짜 ‘승리’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들 노동조합은 임단협에, 대선은 대통령후보에게 매몰되어선 안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것들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상을 넘어서기 위한 실천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대선을 넘어 재벌체제 해체’를 외칠 준비가 되어있는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거창한 목표를 잡는다고 한들 그것에 이르는 과정을 가벼이 여긴다면 우리는 항상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이슈는 대선파도를 타고 수면위로 떠오르지만, 5월 9일이 지나면 또다시 심해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고 조합원들의 관심은 다시 각자의 삶으로, 사업장의 임단협으로 쏠릴 것이다. 지난 촛불정국부터 대선정국까지 이어져 오면서 얻은 현장조합원들의 고민이 지워지기 전에 우리의 고민과 역할, 참여에 대해 평가하고, 그것을 통해 대선 이후의 정세 속에서는 노동자들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냥 훌쩍 넘어가는 노동조합이 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노력하자.

대선시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는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렇기에 그 대사들을 노동자의 눈으로 판단하고, 노동자의 삶에 맞게 반영하는 노력을 시작해야한다. 또 다시 번복의 역사, 새로운 적폐의 시대가 반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시기를 그냥 넘어간다면 재벌개혁은 없다. 이 쓴 것을 목구멍에 그냥 넘기지 않고 잘근잘근  넘기는 대선시기의 치열한 현장토론만이 이후 진짜 현장의 요구를 담은 집회가 되고, TK지역의 보수적인 현장 조합원들의 성향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과정과 성과 자체가 재벌에게 날리는 결정적인 한방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