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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관점을 넘어: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

이문호/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금속노조연구원   |  

그동안 많은 논쟁을 벌였던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물론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하는 단계적 시행이라 아직 전체 노동자에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장시간 노동에 찌들은 한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6개월 ‘계도기간’을 두는 등 뭔가 불안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최저임금의 산입범위를 확대했을 때 들었던 바로 그 심정, ‘아, 이게 계속 가기가 어렵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 공약사항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은 물 건너갔다. 노동시간 단축도 앞으로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것 같다.

 

한국은 OECD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국가그룹에 속한다. 갈 길이 멀다. 노동시간 단축의 여정은 지금 시작일 뿐이다. 최근 시행된 주 52시간제는 정규시간의 단축이 아니다. 단지 연장근로시간의 상한을 줄인 것이다. 이제 곧 연장근로는 당연히 없애고 정규시간의 단축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연장근로를 줄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정규시간까지 줄여나가려면 얼마나 힘든 싸움이 될까? ‘6개월 계도기간’은 그 여정이 얼마나 어려울지 예고해준다.

 

노동시간단축이 앞으로 지속되려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를 다르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경제적 관점에 갇혀 있었다.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행위자들 간 이해관계가 부딪쳐 합의지점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 노동시간 단축이 경제적 관점에 갇혀 있었다는 건 다음과 같은 노사정의 논의 구조를 말한다.

 

노동시단 단축과 함께 정부의 가장 큰 관심사는 노동시장의 개선이다. 즉, 일자리 창출이다. 노동자는 임금보전이며, 사용자는 생산성 향상이다. 그런데 이들의 관심사 내지 요구는 상호 충돌한다. 먼저 정부가 요구하는 일자리 창출은 사용자가 추구하는 생산성이 향상되면 기대하기 어렵다. 예컨대 현대차의 주간연속2교대 도입 시 생산성향상(UPH 증가)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어도 인원충원은 없었다. 물론 생산성이 향상되면 임금은 보전된다. 현대차도 그랬다. 그러나 이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설비투자가 가능한 대기업에게는 통하지만 영세 중소기업은 어렵다. 생산성을 높이지 못해 노동시간 단축이 고스란히 임금감소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면 노동자가 반대한다. 임금이 감소되면, 그것도 중소기업의 저소득 계층의 임금이 줄어들면 소득주도 성장정책도 설자리를 잃지 않겠나.

 

사용자는 본래 노동시간 단축을 싫어한다. 노동시단 단축은 노동비용을 높이고 경쟁력을 떨어트려 오히려 일자리를 잃게 만든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여기서 ‘이상한 연대’가 생길 수 있다. 임금감소를 우려하는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같이 노동시간 단축을 바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금-생산성-일자리>의 모순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비극이다.

 

어떻게 하면 이 모순적 관계를 극복 수 있을까? 노동시간 단축이 지속되려면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경제적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좀 더 큰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먼저 복지적 관점이 들어와야 한다.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 노인 돌봄, 노후보장 등의 문제가 가족에게 책임지우지 않고 사회복지로 해결된다면 노동자들이 구태여 장시간 노동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왜 일을 많이 하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아이들 잘 키우고, 노후보장을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나라에서는 노동시간이 길고, 유럽 복지국가들의 경우 노동시간이 짧다. 사회복지가 없으면 가장이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해야 된다. 가족의 미래와 노후 보장을 위해 어쩔 수 없다.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사회복지가 반드시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복지가 발전하면 굳이 노동강도를 높이면서까지 임금보전을 받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좀 더 여유로운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즐기려 한다. 이렇게 되면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창출로 이어지기 쉽다. 회사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감소되는 생산량을 노동강도를 높여 만회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인원충원을 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노동시간 단축은 고령화사회에 대처하는 가장 적절한 방안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점점 더 고령화사회가 심화되면서 앞으로는 젊은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따라서 나이든 사람들도 노동력으로 활용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건이 고령자에게 적합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은 안 된다. 또한 고령자로 오랫동안 일하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장시간 노동을 피하고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 노동력이 일찍 마모되면 나이가 들면 일을 못하게 된다. 이는 고령화 사회에 노동력 부족 현상을 가져와 치명적이다.

 

또한 고령화사회의 노동력 부족현상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하지 않는 여성인력을 활용하는 것도 유력한 대안이다. 현재 한국의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학력수준을 갖고 있으나 노동시장의 참여율은 낮다. 장시간 노동체제로 일과 가정을 병립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고령화사회의 대응방안으로 여성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 노동시간을 줄여 일과 가정의 병립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

 

셋째로 시민사회의 발전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직장의 경제적 영역에서 벗어나 사회적 영역에서의 활동을 확대시킨다. 극장, 연극, 음악회 등 문화적 생활을 즐긴다. 교회, 정치 및 봉사활동 등 사회생활의 폭이 넓어진다. 가족생활, 취미와 동호회 활동 등 사적인 생활도 풍부해진다. 전체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은 시민사회의 발전을 가져온다.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는 사회적 자본이 발전한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닌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서로 즐기고 배려하면서 신뢰와 민주의식이 발전한다. 노동시간 단축이 가져오는 ‘나비효과’다.

 

이러한 나비효과는 다시 경제적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신뢰와 민주의식이 충만한 사회에서는 경제활동도 경쟁보다는 협력적 관계가 발전하며, 이를 통해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나고, 역설적으로 경쟁적인 사회보다 더 경쟁력이 높은 경제가 발전한다. 1990년대 서구의 위기사회를 진단했던 ‘시민사회론’, ‘신뢰론’ 등은 바로 이 점을 설파한다.

 

마지막으로 후손에게 지속가능한 세계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날 우리는 성장이라는 광기로 살아왔다. 잘살기 위해 더 많이 일했고, 더 많이 생산했고, 성장은 거부할 수 없는 신앙이었다. 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투자했고 자원을 마구잡이로 갖다 쓰고 훼손시켰다. 결과는 참담하다.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지구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냥두면 안 된다. 이제 ‘탈성장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시간 단축은 필수적이다. 탈성장사회를 위해서, 지속가능한 세계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보다 덜 일하고, 덜 생산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