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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화 중단 이후의 B플랜

노광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금속노조연구원   |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 후퇴를 비난하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거세다. 집권 초 촛불정부를 자임하며 경제 개혁과 노동존중사회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시나브로 개혁 의지는 약화되고 역주행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논란이 되는 노동 사안들은 개혁보다는 현상유지 또는 후퇴이기 때문이다. 취임 후 1년 동안 추진되었던 이명박근혜정부의 노동적폐 청산, 최저임금 대폭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쌍용차 등 장투사업장 문제 해결,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개혁 조치들은 최저임금 산입 범위 조정, 탄력근로시간제 기간 확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파행 운영 등으로 빛이 바랬다.

 

노정관계가 협력에서 갈등 및 대립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부여당의 노동정책 후퇴를 이유로 사회적 대화의 참여 중단을 선언하고 총력투쟁을 통해 반(反)노동정책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딜레마적 상황에 빠졌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여부에 대한 대의원대회의 어정쩡한 결정으로 분명한 조직 방침을 수립하지 못하였다. 사업방침 결정이 늦어지면서 민주노총 산하 노조 현장도 혼란에 빠지고 총노선 없이 각개약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6일 총파업투쟁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말이 총파업이지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간부파업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현장과 교감하지 못하고 조합원을 움직이지 못하는 관성적인 투쟁이 남발된 결과이다. 민주노총은 새로운 전략과 방침을 마련해야할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 사회적 대화 중단 이후의 B플랜이다. 사회적 대화 참여 문제는 민주노총의 아킬레스건이 되어 왔다. 김명환집행부는 사회적 대화의 참여를 공약으로 제시하였으나 대의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였다. 현재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더 이상의 논의는 가능하지 않다. 참여를 통한 성과보다 조직 내 분란만 야기할 뿐이다. 문제는 현재의 정치상황과 여소야대 국면에서 노동개혁을 위한 민주노총의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향후 ILO 비준 등 굵직한 노동 의제 등은 경사노위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고 민주노총은 제도권 바깥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대안은 민주노총이 앞장서 국민 여론의 지형을 바꾸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주장이 저임금노동자를 살리는 길이며, 비정규직의 삶을 개선하고 한국경제를 회생하는 정책임을 다수의 여론으로 만들어 내고 입증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을 바로 잡을 수 없으며, 국회의 노동법 개악을 막아 낼 수 없다. 관성적인 총파업 투쟁 전술을 뛰어넘는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사회적 울림이 없는 투쟁은 현 상황에서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온전히 민주노총으로 넘어왔다. 

 

둘째, 반대와 저항에서 형성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노동계의 대응은 과거 정부와는 다른 이슈와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박근혜정부 당시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역할이었다면, 이제 민주노총의 과제는 제조업을 살리고 일자리의 양과 질을 높이고 전체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대안을 정책으로 구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노동 의제가 갈수록 축소되고 경영계의 요구와 의제만 부풀려진다.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권리가 국제노동기구 비준의 핵심이지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과 작업장 점거 금지가 사안이 아니다. 상대방이 던져 놓는 덫은 때론 무시하고 나아가야 한다. 경영계의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노동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주 40시간 근무의 정착, 경영참여를 위한 노동이사제의 도입,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 산업혁명 4.0에 대응하는 범정부 기구의 구성 등이다. 한발 더 나아가 사회개혁을 위한 조세개혁, 주거정책, 경제민주화 의제를 던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의 혁신이다. 사회에 던지는 요구만큼이나 노동조합 내부의 혁신을 위한 성찰과 노력이 절박하다. 지난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목표였던 산별노조 건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아직 요원하다. 아니 그 목표마저 희미한 채 껍데기만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본질적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속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한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속노동자 전체의 연대와 계급적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매우 역설적인 현실은 그 예이다.

 

이제 노동의 원하는 세상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한발 한발 전진해 나아가자. 올 1월 백혈병으로 사망한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는 『리얼 유토피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신뢰하게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중략… 왜냐하면 해방적 변화의 전망에 대한 운명론과 냉소주의는 변화의 전망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운명론과 냉소주의를 뛰어넘어야 새로운 세계의 전망을 열어 보일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