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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규제 완화와 민주주의

김성혁/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
금속노조연구원   |  

 1. 자본주의와 기업

 

프랑스혁명, 미국 독립전쟁 등 시민혁명은 왕에 의한 통치를 무너뜨리고 헌법에 천부인권론을 명시하였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천부인권을 가진 국민의 생명·자유·행복추구를 보장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협할 수 있는 기업의 활동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19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를 보면 아래와 같다.

 

1) 기업 설립에는 목표가 있어야 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인가를 취소하였다.

2) 부당한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3) 현대중공업의 본사가 울산에 있었듯이, 주요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에 본사를 두어야 했다.

4) 기업의 어떠한 정치자금 기부도 금지하였다.

5) 독점기업의 상품 가격은 주 의회에서 정할 수 있었다.

6) 기업의 모든 기록과 문건은 의회나 주 법무장관에게 공개해야 했다.

 

그러나 성장한 기업들은 끊임없이 소송과 로비를 벌이고, 법관과 정치인을 매수하여 자신의 권리를 강화시켰다. 결국 기업은 사회적 규제를 하나 둘씩 벗어버리고 19세기 말부터 아래와 같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1) 기업을 쪼개거나 합병할 수 있고, 본사를 활동근거가 없는 지역으로 옮길 수도 있다(실제 사업이 있는 곳이 아니라 법적인 등록지가 본사가 된다).

2)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 기업집단(재벌)이 탄생하였다.

3) 자본주의 최대의 발명품인 주식회사는, 기업의 채무에 대해 주주가 보유한 주식만 포기하면 되는 유한책임을 진다.

4) 다국적기업은 세계에 산재한 자회사별로 분리 납세할 수 있어, 조세피난처에 위치한 자회사를 통해 조세를 회피할 수 있다.

5) 기업은 법인격을 가지고 인간과 같이 재산 취득, 양도, 소송, 계약, 세금의 주체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생은 유한하나, 기업은 청산하지 않는 한 영원히 존속할 수 있다.

 

2. 고장 난 기관차, 기업

 

자본주의에서 경제주체는 가계, 정부, 기업인데, 무엇보다도 기업가의 개척정신, 혁신능력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본다. 따라서 규제완화를 통해서 기업가의 투자에 활력을 주어야 하며,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미국에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여 경제위기를 맞았다. 친기업 정책을 펼친 한국은 가계부채가 1,500조원, 국가부채가 1,700조원인데, 3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950조원이다.

역사적으로 기업의 이익이 과도하게 높아지면 가계와 정부는 부채가 늘어난다. 특히 중소기업을 수탈하고, 노동자에게 제대로 분배하지 않고, 정부에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는 소수 대기업에 이익이 집중되면 1:99의 사회가 된다.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인데, 삼성그룹의 이재용은 수조 원의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혔고, 현대자동차 정몽구는 수십년 간 불법파견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면서도 처벌 받지 않았다. 이렇게 대기업이 국민의 세금(연금)을 훔치고 상속세를 내지 않고,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아도, 기업에 대한 통제가 없는 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발생한다.

 

3. 플랫폼 기업의 세계화

 

무한한 자유를 가진 고장 난 기관차(기업)의 질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였고 10년째 대침체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국가들은 장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정책을 추진하여, 독일은 '산업 4.0', 중국은 '제조 2025', 일본은 '소사이어티 5.0', 미국은 '첨단 제조 및 ICT 기업들의 산업인터넷' 등으로 기술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세계금융위기 이후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투기에서 빠져나간 거대한 자본들도 성장산업인 디지털산업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플랫폼 기업들의 빠른 성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에 기반 한 플랫폼 기업들은 온라인과 클라우드를 통해 수백만, 수천만 명을 실시간 연결시키고, 사물인터넷과 산업인터넷, 원격서비스 등으로 모든 공정을 실시간 감독하고 정비할 수 있어 세계적인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독과점 금지)은 국가 단위로 적용되는데 예외가 많고 인터넷이나 디지털 산업에서는 해당영역의 선정기준이 자의적일 수 있어서 잘 작동하지 않는다. 더구나 세계국가가 없는 조건에서 세계시장을 독과점하는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다. 이에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은 세계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

아마존은 물류와 클라우드뿐만 아니라 AI 스피커(알렉사), 물류로봇(키파) 등의 생산업체도 거느리고 있고, 구글과 애플도 생산, 정보통신, 유통업 등을 동시에 하는 융합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플랫폼 기업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며, 거대한 독과점을 형성하고 1국의 독과점을 세계적 독과점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4. 규제 완화와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규제완화로 대기업들의 독과점이 강화되었고,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플랫폼 기업들의 세계적 독과점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은 대기업의 독과점을 강화시키는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매각', '인터넷은행에 통신 대기업 참여 허용', '예비타당성 면제로 대규모 토목산업으로 경기부양'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네이버와 카카오뿐만 아니라 SK, 삼성, LG, 현대차 그룹들도 디지털 기술에 박차를 가하고 플랫폼 선점에 주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부의 친재벌 정책과 디지털 기술혁신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독과점이 확장되고 있다.

 

금융위기에 대한 반성으로, 한편에서 '포용적 성장', '소득주도성장', '임금주도성장'등이 시도되었지만, 정부의 개혁 의지가 낮아 기업집단의 과도한 이익 추구, 독과점 권력을 차단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한편에서 신자유주의가 혁신성장 또는 플랫폼 독과점 등의 형태로 부활하였다.

 

기업의 규모가 거대해지고 기업의 권한이 커질수록, 가계와 정부는 권력을 상실하게 된다. 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사라지게 되면 다시 독과점과 극단적 양극화가 형성되기 쉽다. 역사의 교훈은, 기업이 국민의 종복이며 사회적 통제를 받을 때 사회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안정된 성장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완화로 기업에 활력을 주고, 기업 투자로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성장을 도모한다”는 혁신성장은 신자유주의의 부활이다.

 

어떤 경우에도 안전, 노동, 환경, 인권 등을 위한 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는 기업 이윤을 위해 불안정노동, 산업재해, 저임금, 환경파괴, 중소기업 수탈 등을 자행하는 자본의 독재를 통제하여 고용안정, 공정거래, 공공의 이익, 사회안전망 등을 보장해 준다. 기업의 권력이 인간의 권한을 넘어선 사회는, 민주주의의 기준선이 무너진 사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