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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변화와 원청의 사용자성

김성혁/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
금속노조연구원   |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의제는 비정규직 문제이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친기업 반노동 정책의 산물로, 대부분 원청의 비용절감 차원에서 만들어졌는데,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제조업의 하청업체,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입점업체, 택배업의 대리점(특수고용), 건설업의 다단계 하청, 정보통신업의 협력업체(하청, 도급, 특수고용) 등 전 산업에 걸쳐서 원청은 늘 그늘 뒤에 숨고 실권 없는 바지사장만 존재한다. 더구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자성까지 다투어야 하므로 바지사장과 교섭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기술변화와 산업전환은 원하청 문제를 더욱 왜곡시키고 있다.

대부분 산업에서 기술기업들이 플랫폼을 구축하여 시장을 장악하고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위계적 관리조직 없이도 GPS, 앱,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수요자-공급자 매칭과 작업자에 대한 지시·통제가 가능하므로 고용계약이 아닌 위수탁 계약으로 사용자 책임이 없는 초단기 호출노동을 활용하고 있다. 이에 기존 원하청 구조가 특수고용과 플랫폼노동으로 전환되면서 착취구조가 온존·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노동은 온라인에서 작업하는 클라우드소싱과 오프라인에서 작업하는 지역기반노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배달, 운수, 가사도우미, 심부름, 인력파견업 등 지역기반노동이 훨씬 많은데 여기서 불안정노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쿠팡, 카카오, 배달의민족 등을 들 수 있다.

 

정보기업 카카오는 모빌리티산업에 진출하여 택시호출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이어 가맹택시와 대형택시 시장 그리고 대리운전시장까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기존 중소업체들은 카카오에 흡수되거나 종속되어 앱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다. 이에 중소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앱으로 실제 작업지시를 받게 되어 카카오와 교섭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정보기업이자 유통·물류기업인 쿠팡과 배달의민족도 쿠팡플렉스, 쿠팡이츠, 배민커넥터 등 일반인 알바노동(플랫폼노동)을 많이 사용하여 배송과 포장 등의 작업을 앱으로 지시하고 있다.

온라인주문에 따라 운수, 물류 영역의 모빌리티 산업이 빠르게 팽창하자 SK, LG, 현대자동차, GS 등 대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직접 참여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원청의 사용자성 여부는 모든 산업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데 있어서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촛불혁명 이후 노동자성과 사용자성을 요구하는 투쟁이 급증하고 비정규직들이 대거 조직화 되었다. 지속적인 투쟁의 성과로 제조업에서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공공부분 계약직들의 공무직 전환, 정보통신(SK, LG 등)과 렌탈·가전업체(삼성전자서비스, 코웨이, 청호나이스 등) 특고·협력업체들의 직고용 또는 자회사 전환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노총도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사업으로 배치하여 작년 전태일 3법 10만 국민청원으로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노조법 적용 등을 국회에 요청하였다.

생활가전 렌탈산업에서는 방문점검원들(특수고용)이 중노위에서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어 단체교섭 자격이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업계 최초로 코웨이와 서비스연맹 가전통신서비스노조 코디코닥지부의 단체교섭이 시작되었다.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분회 청소노동자들은 노조결성 후 원청 LG의 용역계약해지·집단해고에 맞서 장기농성으로 LG마포빌딩 복직을 쟁취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택배산업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계약한 대리점이 있고 교섭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원청 사용자에게도 교섭의무가 있다는 획기적인 중노위 판정이 내려졌다.

지난 6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 사업주인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와의 단체교섭에서 사용자 지위에 있다며 단체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라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는 금속노동자들이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성과와 버금갈 만한 내용이다.

중노위는 근로자와 직접 근로계약 내지 노무제공계약을 체결한 대리점(사업주)이 아닌 원청(사업주)이 부분적이라도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을 지배·결정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대리점 택배기사가 수행하는 업무는 CJ대한통운의 택배사업 수행에서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로서 필수적인 노무에 해당하고, 대리점 택배기사는 원청의 택배서비스 물류 운송사업 체계에 편입되어야만 택배운송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노조가 요구한 단체교섭 요구사항(터미널에서 택배기사의 상품 인수·인도 시간 단축, 터미널 작업환경 개선, 주5일제 및 휴일·휴가 실시, 수수료 인상, 안전사고 개선 등)에 대해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대리점이 아니고 원청이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미 2010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사건에서, 대법원이 노조법상 사용자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원청사업주도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고, 이것이 노동위원회 판결로 공식화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전진을 막아보려는 자본과 보수언론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보수언론들은 사용자성 확대가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아우성을 치고, CJ대한통운은 중노위 판결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내고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금속노조에서도 현대위아와 현대제철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내려지자 이를 회피하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 현대제철은 자회사 전환 꼼수 및 협력사 14곳 폐업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비정규직 비중이 매우 크고 차별이 극심하다. 최근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사용자성과 노동자성이 확대되고 있으나 자본은 끝까지 역사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법 판결과 중노위 결정을 준수하도록 강제하지 않고 보수세력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본의 편법과 꼼수를 묵인하고 있다.

또한 기술변화에 따라 플랫폼기업들은 고용하지 않는 일반인 알바노동을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다. 플랫폼기업들의 불안정노동 사용은 한국에서 원청 사용자성을 회피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택배의 원하청 공동사용자성 판결, 금속노조 불법파견 판결,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등의 성과를 지켜내면서 원청의 책임을 확대하는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세계적 추세는 산업화시대에 만들어진 노동법이 디지털시대에 맞는 노동법으로 전환되고 있다. 제조업시대에는 노동자를 고용하여 사업장에 모아놓고 풀타임 근무를 시키고, 이를 관리자가 지휘 감독하였다. 이에 고용계약과 명시적 지휘감독을 기준으로 사용자와 노동자를 구분하고 그 책임을 명시하여 근기법과 노동법 등을 적용하였다. 이에 고용관계를 기준으로 4대보험, 안전사고, 초과노동, 퇴직금 등이 적용된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에는 공장이 필요 없고, 앱으로 실시간 일감을 제공하고 노동과정까지 통제할 수 있다. 기업들은 이를 이용하여 고용관계 없는 일반인 알바노동을 사용하여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인력파견업체들도 플랫폼노동으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 많은 연구들은, 사업을 주도하는 원청이 계열사·자회사·협력사 등 피라미드 구조에서 일하는 노동자 전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형식적인 관계보다 실질적으로 지휘관계에 있는 실체가 사용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부 나라에서 이것이 제도화되고 있다.

친기업, 시장주의가 만연한 한국에서는 이러한 제도화가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데, 현재 안전 부분에서 원청 책임이 적용되고 있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일부 특고까지 확대되고 있다.

민주노총의 투쟁이 축적되어 다음 정권에서는 전태일 3법이 통과되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나아가 실질적인 사업의 주체가 그 사업구조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져야한다.

세계적으로 불과 150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하루 14~16시간, 주 80~90시간 이상을 일했고 부녀자와 아동이 탄광에서 일했으며 산업재해는 모두 개인의 책임(부주의)으로 돌려졌다. 주 40시간, 노동법, 근로기준법 제정 등은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의 성과이다.

최근 한국은 근기법의 사각지대에서, 새벽배송으로 야간노동이 다시 늘어나고, 작업대기와 분류 등 공짜노동으로 물류노동자들의 장시간노동이 진행되고 있다. 사업주는 법망을 회피하여 특수고용 제도를 활용하고 노동부는 이들의 직업병과 과로사 등을 방치하고 있다. 또한 온라인판매, 외주화, 자동화, 호출노동 등의 확대는 제조업의 판매와 정비(전기차)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으며, 노조가 약한 사업장의 생산직까지 타격을 주고 있다.

 

  

역사는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바뀌어 왔다. 이제 산업재편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확보하고, 나아가 산업화시대 노동법을 넘어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디지털시대 노동법을 우리의 투쟁으로 앞당겨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