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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모든 이를 위한 노동법이 필요하다

이명규/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금속노조연구원   |  

현행 근로기준법 제11조 제2항은 ‘4인 이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라 하고 있고, 시행령에는 적용 조항을 열거하고 있다. 4인 이하 사업장은 ‘합법’적으로 근로기준법의 핵심인 해고 제한과 근로시간 제한, 휴업수당, 여성보호 등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4인 이하 사업장이 적용 제외된 이유는 법 개정 당시 영세사업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고 한다. 20여년이 훌쩍 넘었지만 4인 이하 사업체 노동자 320만명(2020년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실태현황)이 근로기준법의 주요 조항을 적용받고 있지 못하다.

법 적용 제외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한켠에 있다면, 법이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전통적 표준화된 고용계약’이나 ‘표준화된 고용관계’를 벗어난 고용의 확산으로 늘어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이다. 고용노동부가 공식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 규모를 추계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166만명에서 221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한국노동연구원이 2018년에 내놓은 보고서 ‘특수고용형태 종사자 규모 추계’를 참조).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규모도 공식적인 통계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나 2020년 한국노동연구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플랫폼으로 일감을 구하는 사람은 전체 취업자 중에 7.6%인 182만명이고, 이 중에서 전자상거래종사자와 단순구인구직앱 이용자를 제외한 22만명을 플랫폼 노동자로 정의하고 있다.

규모를 다루는 것이니 엄밀해야겠지만, 임금 노동자를 대략 2천만명이라고 할 때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대략 20~30%를 넘는 것이다. 이 정도면 노동법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반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한국의 노동법 제정과 개정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법의 포용성을 확대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지가 보인다. 우리의 노동법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만큼이나 파란만장한 굴곡을 그리면서 변천해 왔다. 우리의 노동법은 1953년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 등 이른바 노동4법이 제정되어 노동법의 체계를 갖추었다. 당시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상시 15명 이하 사업장을 근기법 적용범위에서 배제했고, 1975년 개정된 시행령에서는 상시 5명 이상 15명 이하 사업장에 대해 여전히 근로시간 조항 적용을 배제했다. 현재와 같이 4명 이하 사업장에 일부 적용되는 구조는 1998년에 정립되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법 제정과 개정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역사의 앞 페이지에는 노동자 투쟁이 있었고, 법 개정은 투쟁의 결과에 따라 바뀌었다는 점이다. 즉, ‘법 개정’은 제도화된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는지 모르나, ‘법을 법답게’ 만든 것은 언제나 ‘운동의 영역’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조선방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비롯하여 광산노동자 파업, 부산부두 노동자 파업이 있었고,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그 해 11월 노동법 개정을 이루어냈고, 1996~7년에는 노동법개악저지투쟁이 있었다.

 

기실, 노동법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생산의 주요 한 축인 노동자의 저항을 약화시키고 노동력 재생산을 확보하기 위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노동법 적용을 확대하자던가,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시민법을 제정하자”는 주장에 대해서 누군가는 자본주의 작동과 자본주의 정신에 위해를 가하는 체제 변혁 세력으로 간주하거나 ‘꿈이나 망상’에 불과한 주장 정도로 이해하기도 한다. 나는 자본주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사용자)를 ‘적대적이지만 상호의존’하는 관계로 이해해 왔다. 노동자를 눈엣가시로만 보고 ‘수탈’만을 일삼거나, ‘착취’를 은폐하기 위해서 노동자를 사용자로 둔갑시키는 전략만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

 

전통적 의미에서 임금노동자와 고용계약이 ‘전환’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법률에 근거한 노동자가 어디까지이고, 누가 사용자인지를 따지는 것을 넘어서는 ‘운동’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4인 이하 사업장에도 노동법을 확대 적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계약 형식과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법의 보호를 받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이라면 누려야 할 권리로서의 법을 제정하는 ‘운동’이 확대되길 기대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