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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가 말해주는 것

이문호/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금속노조연구원   |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 정책이 국제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오래전부터 경고해왔던 것으로 새삼스러운 문제는 아니겠으나,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극단적인 기상재해와 생태계 파괴를 목격하면서 더 이상 방치했다간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두면 2050년에는 수억 명이 넘는 기후 난민이 생기고 질병과 식수 및 식량 등 필수 자원의 부족과 그로 인한 분쟁 등으로 인류의 생존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이에 2015년 제21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에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C 이하로 억제하자는 파리협정을 체결했다. 이를 위해서는 각 나라가 늦어도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로 줄여야 하는(탄소중립), 이른바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

 

2017년 스웨덴이 세계 최초로 2045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많은 나라들이 뒤를 이었다. 2019년 영국이 G7 국가로는 처음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공표하고, 같은 해 유럽연합도 넷제로를 선언했다. 2020년에는 일본과 중국(중국의 목표연도는 2060년), 2021년에는 미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등 세계 주요국들은 대부분 기후위기 대응에 동참하고 있다. 그동안 국제사회로부터 ‘기후악당’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한국도 2020년 10월 넷제로를 선언하면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의 26.3%(2018년 대비)에서 40%로 상향조정하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과연 이러한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까? 앞으로 좀 더 두고 볼 일이나, 현재 논의되는 기후위기의 해결 방향을 보면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기후위기를 불러온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덮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중·후반 증기기관과 공장제 공업의 발전과 함께 일어난 산업혁명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체제를 발전시켰다. 산업제품의 95%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생산되었다. 기후위기는 여기서 비롯된다. 경제성장이 일어날수록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나고, 이는 기후 위기를 점점 더 가속화시켰다, 역사상 그 이전 어떤 사회의 경제성장도 이렇게 총체적인 기후 변화를 가져온 적은 없었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쟁을 통한 성장이 핵심이며, 성장은 지구를 파괴하는 지독한 구조적 모순이 그 체제에 내재되어 있다.

 

실제로 산업혁명 이후 탄소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단지 경제 위기 때만 줄어들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세계의 공급망이 무너지고 공장이 서는 등 경제가 위축되자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면서 맑은 하늘이 많아진 장점(?)도 있었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1973년과 1979/80년의 석유 파동, 2008년 금융위기 등과 같은 경기 침체기를 제외하고는 탄소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성장을 막아야 하나? 그러면 일자리는?

 

현재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정책적 패러다임은 이른바 ‘그린 뉴딜’이다. 우리나라도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인 ‘한국판 뉴딜’에서 디지털 뉴딜과 고용사회안정망과 함께 그린 뉴딜의 추진을 밝혔다. 나라마다 세세한 부분에서의 차이점은 있지만 그린 뉴딜의 핵심은 성장을 포기하지 않고 자본의 경쟁과 이윤추구 논리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새로운 투자, 새로운 사업모델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녹색성장’ 또는 ‘녹색자본주의’라 부르기도 하는데, 자본주의적 성장 때문에 발생한 위기를 다시 그 성장 논리에 다시 기대어 극복하려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사회 불평등의 문제다. 지금까지 기후 난민의 대부분은 가난한 지구 남반부에서 발생했다. 자본주의적 국제 분업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세기에 배출한 온실가스의 79%는 유럽 및 북미 등 선직국의 책임이다. 세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개발도상국은 21%만을 배출했다. 물론 최근 개발도상국의 발전으로 좀 달라지기는 했으나, 이는 역사적으로 선진국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피해는 남반부에서 더 많이 입는다. 이러한 나라 간 ‘위험의 외주화’는 한 사회 또는 계급 간에도 일어난다.

 

세계 성인 인구의 가장 부유한 10%가 기후 피해 배출량의 49%를 유발하는 반면, 하위 절반은 3%만 배출한다고 한다. 기후를 손상시키는 배출량의 증가는 거의 전적으로 부유층의 사치품 소비와 그에 상응하는 라이프스타일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자원의 소비도 마찬가지다. 세계 인구의 상위 1%에 속하는 부유한 사람의 ‘생태 발자국’(인간이 자연에 남긴 오염의 흔적)은 하위 10%에 속하는 사람의 생태 발자국보다 175배나 더 크다.

 

또한 부유한 나라에서도 계급적 차이는 발생한다. 경제적으로 약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예컨대 여름철 열악한 주거 상황은 특히 노인과 아픈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기후 위기는 기존의 계급 차이를 악화시키고 국가 및 글로벌 수준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증가시킨다. 때문에 생태학적 문제는 가장 시급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소수의 부가 다수를 희생시키는 시스템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기후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자본주의 성장모델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분배구조의 개혁은 필수적이다. 지금과 같은 양극화의 사회에서는 환경친화적인 제품이 나와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기가 어렵다. 비싸기 때문이다. 분배구조가 개혁되어야 그린 뉴딜은 성공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환경친화적 제품으로 성장을 원한다면 분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자본의 축적(성장)이나 이윤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있고 인간이 실제로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민주적 경영이 필요하다. 제품개발이나 기술도입 등의 결정 과정에 노조가 참여하여 노동과 자연 파괴적인 제품과 생산과정이 되지 않도록 적극 개입해 나가야 한다. 이때 노조는 시민사회와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노동과 기후 문제를 결합시키기 위해 노조는 더 많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사회는 더 많이 노동과 분배문제 관심을 가지면서 상호 협력과 지원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경제시스템은 여기서 발전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