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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택배투쟁과 재벌개혁

김성혁/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
금속노조연구원   |  

                     

1. 재벌과 불안정노동


자본주의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노동에 대한 통제방식을 바꾸어 왔다.

19세기 산업화 초기에는 필요할 때만 일을 시키면 되는 일용직이 일반적이었으나, 1930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으로 체제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는 투기적 자본의 이동을 금지하고, 노동 3권과 고용안정을 보장하여 정규직 고용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로 기업의 이윤율이 감소하자, 자본의 투기적 이동을 허용하고 아웃소싱으로 노동비용을 줄이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되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제도화하면서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하고 파견·용역, 특수고용 등 다양한 비정규직 사용을 본격화하였다. 

 2020년에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플랫폼노동(지역기반노동과 인터넷기반노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고용형태 공시(2020.3월) 분석 결과를 보면, 기업 규모가 클수록 비정규직 비율이 높았다. 300~500인 미만 기업은 비정규직 비율이 26.4%에 불과한데, 1만인 이상 거대기업은 43.5%나 되어 재벌 대기업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온상임을 알 수 있다. 1만인 이상 거대기업의 비정규직은 62.8만 명인데,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16.9만 명,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45.9만 명이다.  

위 통계에서는 불안정노동인 특수고용종사자, 플랫폼노동 등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노동자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은 위장된 자영업자로 오분류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특수고용과 플랫폼노동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은 CJ대한통운과 쿠팡이다. CJ대한통운 특수고용인 택배기사만 20,000명이고, 쿠팡의 비정규직은 23,000명에 이른다.   


2. 무법천지 택배시장


지난 20년간 전자상거래 성장에 힘입어 택배시장이 급성장하였다. 택배물량은 2000년 2.5억 개에서 2020년 33억 개로 10배 이상 커졌고 수많은 업체들이 몰려들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과 온라인쇼핑이 일반화되어, 제조업의 부수적인 업무에 불과했던 택배산업이 전 국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생활필수산업이자 신성장 동력으로 부상되었다. 온라인 주문과 배달이 중시되면서 물류와 유통 산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대형물류센터와 빠른 배송시스템이 유통·물류산업의 경쟁력이 되었다.

그러나 택배산업을 규율하는 법과 제도가 미비하고, 특수고용 택배기사들은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아 편법과 탈법이 난무하였다. 

시장을 규율하는 제도가 부재한 가운데, 대기업들은 시장 장악을 위해 단가를 낮추는 출혈경쟁을 지속하여, 중소 택배사들이 몰락하고 CJ대한통운이 시장의 50%를 장악하게 되었다. 과당경쟁 기간동안 택배요금의 하락으로 택배기사들의 운임 수수료도 낮아졌다. 택배기사들은 건당 수수료 체계에서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서 주 6일,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독립 자영업자 신분으로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지만, 회사가 정한 규칙과 업무지시에 따르며 CJ 작업복을 입고, CJ 로고가 붙은 차를 몰고, CJ 택배를 배달한다. 이와 같이 한국의 특수고용 종사자는 오분류된 위장된 자영업가 대부분인데, 이들은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법적 보호에서 배제된다. 원청의 지휘하에 원청의 일을 하는 특고 노동자들이 노동법과 기업복지에서 제외되면, 사용자들은 고용세를 내지 않고 최저임금이나 연장근로수당 등이 적용되지 않아 많은 이익을 얻는다. 반면 특고 노동자들은 4대 보험, 근로자 세금공제, 퇴직금, 산업재해보상 등의 혜택을 상실해 불이익을 받는다.

다음으로 택배기사들은 차량유지비(차량구입, 유류비, 수리비 등)뿐만 아니라 대리점 수수료, 개인사업자 세금, 용차(결근시 대체 기사 일당) 등을 부담해야 한다. 

또한 대리점마다 근무수칙이 다르고 위반시 기사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CJ대한통운은 원래 정규직이었던 택배기사들을 위탁계약으로 바꾸고, 다시 중간에 대리점을 끼워 넣어 원청-대리점-택배기사 구조의 위수탁 계약으로 전환하여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였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원청 관리자가 나서지 않고도, 앱을 통해 지시를 내리고 고객평가로 노동을 통제할 수 있다.


3.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이러한 조건에서 코로나 시기 물량이 폭증하자 2년 사이에 22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로 사망하였다.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일과건강 한인임 사무처장), 민간 택배사는 한 주 노동시간이 70시간이 넘었고, 점심시간은 고작 12분이었다. 응답자의 22%는 차에서 빵이나 김밥을 먹고,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는 비율은 37%나 되었다.

이에 67개 단체가 참가하는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가 구성되었다. 여론의 지지와 택배노조의 강력한 투쟁으로 ▲정부(고용노동부·국토부·공정거래위·산업부·중소기업부·우정사업본부) ▲종사자(과로사대책위) ▲사업주(통합물류협회·대리점연합회) ▲대형화주(한국온라인쇼핑협회·한국TV홈쇼핑협회·공영홈쇼핑)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구성되었고, 2021년 6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주요 내용은 분류작업(대형트럭에서 택배를 내리고, 이를 택배차량까지 모아주는 업무)은 택배기사 업무가 아니므로 대체 분류인력을 투입하고, 택배노동자에 산재보험·고용보험을 적용하고, 최대근무를 주 60시간으로 하고,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필요한 재원을 위해 택배요금 인상분의 170원을 분류인력 투입이나 택배기사 처우개선이 쓰기로 하였다.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 택배기사들의 권익보호와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4. 재벌개혁 투쟁에 나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노사관계가 작동되지 않고 있는, 특수고용종사자나 플랫폼노동 등 불안정노동에서 정부가 주도하여 산업·업종별 또는 지역별로 이해당사자들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산업 질서를 세우고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은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로 산업 질서가 구축되고 이해당사자 간 신뢰가 형성된다면, 그 내용은 자연스럽게 제도화될 수 있고, 정상적인 노사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에 따라 롯데, 한진, 우체국, 로젠 등 택배사들은 표준계약서를 이행하기 시작했고, 택배요금을 인상과정에서 170원을 인력투입이나 택배기사 처우개선에 쓰고 있으며,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이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은 표준계약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독소조항이 포함된 부속합의서를 강요하고, 170원 인상분을 택배기사 처우개선에 쓰이기로 한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합의사항 이행 관련 객관적 검증을 하자는 노조의 요구도 거부하였다. 이런 조건에서도 국토부는 CJ의 합의 위반을 얼버무리고 노사 간의 문제라며 서명 당사자로써의 관리 역할을 회피하고 있다.

 

이에 택배노조는 2월 24일 현재 58일째 전면파업을 전개하고, 200인 결사대가 CJ대한통운 본사건물을 점거하였고, 위원장은 아사단식에 돌입하였다. 1,000명의 상경대오는 청계광장 등에서 매일 시위와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경기지부에서는 곤지암 물류센타 진입투쟁을 전개하였다. 민주노총은 투쟁 지원을 위해 택배노조 채권 구입을 결의하였고 공무원노조, 전교조, 보건의료노조 등은 각 1억 원을 모으기로 하였다.

 

재벌이 양산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삼성가 장남이 물려받은 재계 13위 CJ와 운명을 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 싸움은 택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이자 재벌개혁 투쟁이다. 재벌체제에서 가장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국사회의 근본문제인 재벌개혁 투쟁의 주역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하청, 파견·용역, 계약직 등 비정규직들은 다 같이 일어서서 노동탄압, 사용자성 회피, 고용차별의 주범인 원청 재벌과 항쟁수준의 투쟁을 벌여 생존권과 완전한 노동기본권을 확보해야 한다. 

택배노동자들의 완강한 투쟁은 기업의 현안투쟁을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재벌개혁과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