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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노동정책

이문호/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금속노조연구원   |  

우리는 지금 그야말로 전환시대에 살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라 일컫는 디지털시대로의 전환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중립 시대로의 전환이 그 핵심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 전환의 종착점이 어디이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번영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의 모습을 보면 재앙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다. 노조가 ‘정의로운 전환’, ‘노동중심의 산업전환’의 기치를 드는 것은 이 때문이며 이는 곧 ‘시대정신’이라 하겠다. 이제 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새로운 노동정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현재의 산업전환이 재앙으로 흐르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디지털화와 함께 이른바 ‘플랫폼 노동’이 발전되면서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라 불리는 새로운 비정규직 또는 특고와 단기적 고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쿠팡, 아마존, 테슬라 등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재벌이 된 국내외 스타트업들은 한결같이 반노조 정서를 갖고 있으며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악명이 높다. 혹자는 디지털 기술로 재택근무가 가능해 코로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자랑하지만 이는 관리직 또는 사무직의 얘기지 공장의 노동자나 병원의 간호사, 미화원, 배달기사 등 일선의 노동자들은 코로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일했다. 코로나 위기를 넘긴 것은 이들의 노동 덕분이지 디지털 기술 덕분이 아니다. 사무직에게도 디지털화는 일과 생활의 경계를 무너트려 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고 있다. 퇴근 후나 주말, 심지어 휴가 중에도 연락을 취하고 원격으로 업무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최근 ‘노동시장 유연화’를 노동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고 했다. 지금 나타나는 이러한 여러 징후들을 보면, 문제는 유연성의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 유연화’가 아닌가.

 

탄소중립 역시 재앙으로 흐를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로 3만여 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고, 전기차 생산을 위해 10만 명이 넘는 자동차 내연기관 부품 관련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단호한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부담이 일방적으로 노동자에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산업이 집중된 지역은 개별 노동자나 회사를 넘어 지역경제 전체가 큰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철강이나 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량이 높은 산업도 큰 문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적 압력과 규제가 점점 더 강화되고 있어 특히나 수출지향적인 우리의 산업에게는 더욱 시급한 문제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한국의 기업은 거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대기업은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선언적 목표는 세우고 있으나 그에 합당한 전략은 보이지 않으며, 중소기업은 아예 문제의식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산업은 머지않아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고 대량실업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산업전환을 환경과 경제와 노동이 모두 지속가능한 정의로운 전환으로 만들 수 있을까?

 

먼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번 대우조선 파업이 준 교훈이기도 하다.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나쁘면 노동자는 떠나거나 노동을 거부한다. 이렇게 되면 그 산업의 지속가능성은 없다. 산업전환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산업이 가야 하는 전동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전문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많은 부품사에서는 그러한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이다. 이는 산업전환을 막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 주 52시간 상한제를 갖고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다. 노동자들이 의욕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산업전환은 물 건너간다. 산업전환을 지원하는 정부의 많은 고용정책과 산업정책들이 있다. 이 정책들이 과연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지 노조의 모니터링과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우리산업의 미래와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차대한 문제다.

 

다음으로 사회적 정책협의체가 필요하다. 산업전환은 매우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여서 그 대응방안은 회사 차원이나 노사관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정책협의체가 필요한 이유다. 전환에 영향을 받는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조정하는 민주적 과정을 거쳐야만 산업전환은 원만하게 이루어진다. 사회적 정책협의체는 지역이나 업종별로 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는 유럽노동조합총연맹의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노조는 해당 업종과 회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여 정책적으로 수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미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석탄과 자동차산업은 물론이고 철강과 석유화학 등 탄소 고배출 산업의 문제를 논의할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여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산업과 지역경제는 무너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의 산업정책이다. 지역 내 회사 및 산업적 특성과 역량을 고려하여 새로운 ‘지역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지금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직무역량 또는 전직훈련 등과 같은 정부의 노동전환 서비스는 이와 연계되어야 한다. 지역의 새로운 산업정책이 없는 노동전환 정책은 효과도 없고 노동자들에게 교육·훈련의 동기도 부여하지 못한다.

 

끝으로 노조는 산업전환에 맞는 조직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노조가 힘이 있어야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 수 있다. 작금의 산업전환은 노조의 위기를 초래하기 쉽다. 전통적으로 조직률이 높은 금속산업은 쇠퇴하고 전기·전자산업 또는 IT 기업 등이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조직률이 낮고, 노조배제적 마인드가 강하다. 노조는 앞서 언급한 업종이나 지역의 사회적 정책협의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데 기여하면서 신산업 노동자에 어필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노조의 정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특히 기후정의에 관심이 많은 청년세대와의 소통을 확대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전략으로 독일의 금속노조(IG Metall)는 2010년대 초·중반 새롭게 성장하는 재생에너지 부문에 집중적으로 조직화 사업을 펼쳐 독일의 선도적인 풍력발전회사인 에너콘(Enercon)을 비롯하여 20개의 회사에 사업장평의회를 설립하고 1,500여 명의 조합원을 신규로 조직화했다. 전환시대에 성장하는 신산업에 노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