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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삶의 질’을 추구하는 노동시간과 여유시간

김영수/상지대학교
금속노조연구원   |  

국민적 욕구에 역행하는 노동시간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노동자들이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의 핵심을 노동유연화 전략, 소위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강화하여 최대 주 69시간제를 도입하되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확실히 지키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물론 대통령이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에서 규정하고 있는 1주 40시간 노동과 1일 8시간 노동에 최고 12시간의 연장근로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년으로 확대하고, 연장근로 허용시간을 최대 40.5시간까지 허용함과 동시에 11시간 연속 휴식마저 면제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삶의 질을 보장한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의 노동 현실은 암담하다. 변형된 노동시간과 노동의 형태는 노동자들을 불규칙한 생체리듬에 노출시키고 있으며,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장시간 연속 노동의 틀에 결박시키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의 약 30% 정도인데, 이들은 현재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다양한 권리, 특히 해고나 노동시간과 관련된 조항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2022년 8월 현재 약 2200만 노동자 중 약 820만 명이 비정규직인데, 이들 또한 근로기준법의 다양한 권리들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윤석열 정부는 MZ노동자들의 워라밸(work & life balance)에 부딪혔다. 그리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노동시간을 더 단축하고 여유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노동과 삶의 원리를 일깨워 주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역설의 늪에 빠졌다. 삶의 질은 여유시간을 많이 갖는 것인데, 변형된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모순의 미로에 들어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곧바로 주 69시간제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저 대통령의 생각과 의지에 대한 국민과 여론의 오해였다는 ‘떠넘기기 핑계 정치’에 열을 올릴 뿐이다.


원시공동체 사회의 노동시간과 여유시간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원시공동체의 노동시간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노동시간과 여유시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2002년에 번역된 『시간의 지도-빅히스토리-』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지구 생명체들이 하는 노동의 주요 목적은 먹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주거와 음식의 확보였다. 각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이나 가족들의 삶을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의 노동을 하였다. 채집사회의 사람들이 가장 적은 노동을 하면서 살았고, 그 다음으로는 원예 농업사회의 사람들이었다.

 

 

사회의 성격

1일 평균 노동시간

자연 채집사회

6시간 내외

원예 농업사회

6.75시간

집약 농업사회

9시간

산업 기술사회

8시간



각 사회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자연 채집사회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이 6시간 내외라니? 적은 노동시간 대신에 보다 많은 여유시간을 즐겼던 채집사회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놀랐고, 내가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의 장벽이 참으로 높고 두껍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이 책은 단순한 진리를 깨우쳐 주었다. 인구가 적고 확보할 음식이 풍부한 지역은 노동시간이 아주 짧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와 휴식과 축제를 즐긴 반면, 인구가 증가하면서 식량이 부족해지자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식량을 약탈하기 위한 전쟁이 빈발하였다. 그래서 원시공동체 사회는 갈등이나 전쟁과 약탈•착취를 예방하기 위해 공동체적인 동맹과 협력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사회의 지도자나 권력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산업 기술사회라고 해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아주 간단하게 보여준다. 사회적인 갈등이나 약탈•착취를 유발시키지 말고, 그러한 현상의 근본이나 뿌리를 혁신하는 일에 몰빵을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가르침이다. 


동전의 앞뒷면인 노동시간과 여유시간


노동시간과 여유시간은 삶의 질이라는 동전의 앞뒷면이 되었다. 노동시간과 여유시간이 서로 반비례 관계를 유지하면서,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자본과 여유시간을 확보하려는 노동자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누적되거나 표출되고 있다. 여유시간에 대한 욕구는 임금 노동자만이 아니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똑 같다. 그래서 통계청 산하 통계개발원도 「국민 삶의 질 2021」에서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간과 여유시간의 관계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삶의 질을 두 가지 의미로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포괄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객관적인 생활조건과 이에 대한 당사자들의 주관적인 인지와 평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삶의 질은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는 생활요소들과, 이에 대한 당사자의 인지나 평가에 따라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통계개발원은 삶의 질을 인지하고 평가하는 42개의 객관적 지표 중에서 고용•임금 영역의 근로시간이나 여가 영역의 여가시간을 중하게 다루고 있다. 핵심은 아주 간단했다. 삶의 질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보편적으로 증가했으며, 보다 적은 근로시간과 보다 많은 여가시간이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적 요인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삶의 질은 노동시간의 단축과 여유시간의 늘림이 관건이다. 어떤 형태의 노동이든, 그 자체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결합되어 있고, 서로를 잇는 연결과 순환의 고리는 바로 여유다. 육체노동에도 정신노동의 시간을 배려하는 노동시간, 정신노동에도 육체노동의 시간을 배려하는 노동시간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산업 기술사회의 8시간 노동제가 인정될 경우, 8시간 노동 속에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동시에 배정하여, 노동자들이 보다 많은 여유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서로 최고의 균형 지점을 찾았을 때, 삶의 질은 달라진다. 그 동력은 여유 시간이다. 삶의 질을 판단하는 지표 중에서 ‘여가와 여유’가 빠지지 않는 이유나,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 노동과 여유가 어우러지는 균형의 삶 속에 존재한다는 이치가 근거로 작용한다. 사람들이 보다 짧은 노동시간과 보다 긴 여유시간을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