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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과 노조의 역할

이문호/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금속노조연구원   |  

얼마 전부터 정의로운 전환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존의 ‘파괴적‘ 성장방식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새로운 미래의 발전모델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발전모델은 경제성장에 우선권을 두었다. 그러나 이는 사회와 환경에 파괴적 결과를 가져왔다. 장시간·저임금 노동과 스트레스,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자원의 남용과 기후 변화로 지구는 이제 생존의 한계점에 다다랐다. 이렇게 한 영역의(경제) 발전이 다른 영역을(사회와 환경) 파괴하는 불균형적 발전을 지양하고, 모두가 지속가능한 공생적 발전을 만들자는 것이 정의로운 전환이다. 그렇다면 노조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노조의 역할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노조 탄압이나 노조의 정책적 참여를 가로막는 현 정부의 작태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문제는 훨씬 더 본질적인데 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국가에게는 탈탄소화를 위한 강력한 정책적 드라이브를, 기업에게는 RE100/ESG 등 사회적 책임을, 소비자에게는 사회생태적 영향을 고려하여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자는 ‘착한 소비’를 요구하지만, 노조에게는 딱히 어떤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노동자는 소비자이기도 해서 착한 소비자로서의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노동자로서의 역할은 명확하게 부여된 것이 없다. 이는 노동을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세력으로 보지 않고 그 과정에서 보호받아야 할 수동적 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전환과 관련된 논의를 보면 주로 사회정책적 지원 문제에 치중하고 있다. 물론 노동의 보호적 측면은 두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노동이 역사적 변혁주체로서의 역할을 상실하면 미래의 세계는 계속해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지배하에 있게 돼 지금과 같은 파괴적 성장은 지속될 것이 뻔하다. 작금의 후퇴하는 정부의 기후정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정의로운 전환은 요원해지고 어차피 망할 거라는 종말론적 무력감이 밀려온다.

 

이제 노조가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세력으로 역할을 찾아야 할 때다. 이를 통해 노조의 전통적인 이슈가 다시 생동감을 찾고 새로운 노동사회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과 지역, 사업장 차원으로 구분하여 생각해보자.

 

먼저 중앙차원에서는 사회적 연대를 통해 담론적 권력 형성에 집중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 데 현재의 조직률로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 때문에 시민사회와의 전환 동맹을 구축하고 노조가 중심적 역할을 해야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공론화시켜 나가야 한다. 여기서 노조는 무엇보다 자신의 전통적인 이슈인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주제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기후 위기는 부자들(북반부 선진국/글로벌 기업/부유층 등)이 만들었는데 그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남반부 기후난민/저소득층 등)들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자의 경우 기후 위기의 주범임에도 충분한 재력으로 대응능력을 갖추고 있는 데 비해, 후자는 피해자임에도 아무런 대책 없이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따라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은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특권층에서 취약한 계층으로 물질적 재분배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분배 정의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탄소세/부자세 등 세제 개혁과 저소득층 임금인상이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사회생태학적 분배정책은 최근의 ‘산별교섭 5만 입법청원’처럼 법제화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공론화가 일어나고 정치와 시민사회와의 연대가 깊어지면서 노조의 담론적 권력 자원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지역별 차원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게 전환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지역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경우 전기차 전환을 위한 지역의 사회적 정책협의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국적으로 39개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 26개는 금속노조가 주도하여 구성됐다. 노조의 주체적 역할을 통해 노동의 희생이 없는 정의로운 전환을 설계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지역의 완성차 및 부품사, 노조, 사용자단체, 대학 및 연구기관, 지자체, 컨설팅, 교육기관, 노동청 등 다양한 관련 행위자들이 모여 지역 내 자동차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에 대해 논의한다.

 

우리도 지역에서 노조의 이와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 각 지역에는 상이한 업종이 분포되어 있어 산업전환에 대한 노동자의 인식과 태도가 다를 수 있다. 석탄화력발전이나 내연기관차와 같이 앞으로 퇴장해야 할 산업이 있는가 하면,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과 같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탄소 배출량이 많아 생산방식을 개조해야만 하는 산업도 있다. 또한 신재생에네지/IT/친환경 모빌리티 등 새롭게 성장하는 산업도 있다. 이러한 산업들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느냐에 따라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의 방향과 전략도 달라진다. 지역 본부 또는 지부는 이러한 특성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정책개발을 논의하는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전환으로 위기의식을 느끼는 노동자들은 그에 대응하는 합당한 대안이 보이지 않을 경우 전환을 거부하고 보수화되기 쉽다.

 

사업장 차원에서는 무엇보다 더 많은 사업장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앞서 말한 물질적 재분배와 함께 결정 권한의 재분배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사항이다.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관한 결정을 소수의 경영진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단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생산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상품과 생산과정이 과연 사회생태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고 노사가 공동으로 투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환경 유해상품을 만들어 놓고 사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착한 소비’) 아예 처음부터 생산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소비자로서의 정의로운 역할보다 노동자로서의 정의로운 역할이 더 중요하고 더 효과적이다. 노조나 노동자대표의 경영참여가 더 많아질수록 사회생태학적 지속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러한 경영참여와 결정 권한의 재분배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얼마나 가능할지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자본주의적 성장방식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지속가능한 새로운 발전모델로 갈아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그동안 위기 극복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 능력이 결국 인류의 생존 문제가 걸린 기후 위기를 초래했는데, 이 위기가 과연 이번에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극복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마지막 시험대에 올라와 있는지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