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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업화’의 길을 찾아 – 전환기, 독일 금속노조의 정책 방향

이문호/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금속노조연구원   |  

금속노조의 장창열 집행부가 새롭게 출범한다.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면서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도 곁들여야 할 것 같다. ‘이중적 전환’(디지털화와 탈탄소화)이라 부르는, 산업화 이후 실로 가장 큰 격변의 시기를 맞아 그 어려움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선자의 선거 공약 속에 자주 등장하는 ‘산업전환’, ‘미래장악’ 등의 구호만 보아도 전환시대의 고민과 책임감이 여실히 느껴진다. 작금의 산업전환이 어디로 갈지, 그 사회적 파급효과는 어떠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을 꿋꿋하게 헤쳐나가야 한다.

 

물론 이는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세계의 모든 노조에 똑같이 닥친 문제다. 그래서 다른 나라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를 살펴보았다. 독일은 한국과 유사하게 제조업 중심의 수출경제 구조를 갖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조업은 에너지 소비가 많아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는 탄소중립 경제로 가기가 쉽지 않으며, 또한 수출경제일수록 국제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비용이 많이 드는 그린 경제로의 전환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독일에서도 산업전환 시기에 원·하청 간 양극화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얼마 전 독일의 자동차산업 연구자인 홀스트(Holst) 교수는 한국 금속노조 연구원을 방문하여 독일에서 일어나는 완성차/1차 대기업과 2/3차 중소 부품사 간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 말하면서 전자는 미래차로의 전환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후자는 자본력이 약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걱정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독일의 IG메탈은 과연 어떤 정책을 고민하고 있을까?

 

마침 IG메탈도 ‘미래를 위한 시간’(Zeit für Zukunft)이라는 모토 아래 지난 10월 22일 ~ 26일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제25차 정기 노동조합대회(Gewerkschaftstag)를 열고 새 집행부를 선출했다. 4년마다 소집되어 1주일 동안 열리는 노동조합대회는 IG메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각 지역에서 선출된 대표들(조합원 5,000명당 1명의 대표)이 모여 새 집행부를 선출하고, 지난 4년간의 활동을 검토하면서 향후 4년간의 정책 방향과 주요 의제 및 전략을 결정한다. 이번 대회에는 총 421명의 지역대표들이 참가했는데, IG메탈 역사상 처음으로 벤너(Benner)라는 여성이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최근 독일 노조운동에서의 여성 파워가 예사롭지 않다. 작년 5월에는 최초로 여성이 독일노조총연맹(DGB) 위원장이 되었고, 재작년 5월에는 독일 사업장평의회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폭스바겐의 총사업장평의회 의장에도 처음으로 여성이 올랐다. 격변의 시기에 노조의 새로운 조직문화가 요구되는 것일까? 어쨌든 IG메탈의 새 집행부는 노동조합대회에서 많은 토론을 통해 향후 4년간 지향할 목표를 세웠다. 전체적으로는 산업전환이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탈산업화’가 아닌 좋은 일자리(Gute Arbeit)를 보장하는 ‘재산업화’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의제와 전략들이 논의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5개의 방향으로 축약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정의로운 전환이다. 새로 선출된 위원장인 벤너는 많은 사용자들이 친환경과 디지털 전환에 대한 사업전략을 갖고 있지 않아 노동자들이 불안해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일부는 산업전환에 반대하는 극우 포퓰리즘에 동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다른 나라로 생산을 이전하려는 사용자들도 많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독일의 탈산업화를 멈춰야 한다. 우리는 산업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IG메탈은 기후 친화적이고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만이 탈산업화와 극우세력의 확장을 막는 유일한 길임을 선언하고, 앞으로 이를 위한 노조의 강력한 정책적 개입을 예고했다. 산업전환은 엄청난 비용이 든다. 이를 위해 부유하고 큰 수익을 내는 사람과 기업들이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공정한 세제개혁을 추진할 것도 약속했다.

 

둘째, 더 많은 공동결정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현재보다 더 많은 노동자의 권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IG메탈은 그동안 ‘미래협약’을 통해 전환기에 회사의 투자와 인력계획 등에 관해 많은 개입을 해왔지만 이는 사업장평의회가 강한 대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아직 법적으로는 경영참여에 제약이 있어,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사업모델의 전환, 이전 또는 폐쇄 및 인력조정 등에 대해 사전에 개입하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발표가 난 후 개입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개입의 효과성이 떨어지고 지난한 투쟁만이 기다린다. 따라서 IG메탈은 독일노조총연맹(DGB)과 함께 공동결정의 범위를 확대하는 법·제도적 개선 투쟁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더불어 자본 측에 유리한 ‘감사회’(Aufsichtsrat)에서의 표결조건도 문제로 삼았다. 즉, 자본 측에서 감사회 의장을 맡고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권한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업장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되고 정의로운 전환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

 

셋째, 에너지 및 산업정책적 개입이다.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산업전환은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때문에 IG메탈은 긴축정책은 전환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재생에너지의 빠른 확장, 미래차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 더 많은 정부의 역할을 요구한다. 이와 함께 에너지 집약적인 소재산업(철강, 화학 등)에 대한 ‘교량전기요금’(Brückenstrompreis)을 촉구했다. 이는 전기요금이 급속히 올라 어려움을 겪는 소재산업의 기업들을 위해 과도기적으로 즉, 저렴한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업에 시간을 주기 위해 전기가격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제한된 전기가격과 시장가격과의 차이는 정부가 지불한다. 산업전환의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고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미 IG메탈은 독일노조총연맹(DGB)과 광산·화학·에너지 노조(IG BCE) 및 에너지 집약적 산업협회들과 ‘교량전기요금 동맹’(Allianz pro Brückenstrompreis)을 결성하고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동맹은 소재산업의 8,000개가 넘는 업체와 110만여 명의 노동자를 포괄한다.

 

넷째, 더 나은 단체협약과 효력 확장이다. 단체협약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노동조건을 개선하여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때문에 더 나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그 효력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IG메탈은 기업은 특정 조건에서만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의 지원을 받으려면 기업은 신규투자와 고용안정 등 지속가능한 노동의 미래를 약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IG메탈은 앞으로 연방 및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단체협약을 적용하는 기업들과만 공공조달 계약을 맺는 ‘협약준수규정’(Tariftreue-Regelungen)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한 새로 발전하는 산업에 전략적 목표를 두고 조직화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이미 신재생에너지 부문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베를린 근방에 새로 설립한 반노조적 테슬라 공장에도 1,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조직했다. 최근 이들은 공장에서 ‘테슬라의 안전하고 공정한 노동을 위해 함께’라는 IG메탈 스티커를 공개적으로 착용하는 이벤트를 벌여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IG메탈은 앞으로 지속가능한 산업전환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가야 한다고 보고 주 4일제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미 철강산업은 임금 보전을 전제로 주 32시간을 교섭 요구안으로 내놓고 협상 중이다. 숙련된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유지하는데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다섯째, 현장성 강화다. 자동화와 디지털화로 사업장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이에 IG메탈은 기술이 노동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고용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인간에 봉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생산과 노동과정의 혁신모델을 개발하고 사업장평의회에 대한 일자리 혁신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지역 문제 해결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이미 IG메탈은 미래차 전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자동차부품사 지역에 국가의 지원을 받아 ‘전환네트워크’(Transformationsnetzwerke)를 구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구축된 39개의 전환네크워크 중 25개의 전환네크워크가 IG메탈의 주도로 운영되면서 그 지역의 경제단체, 지자체, 교육기관, 연구소, 컨설팅사, 시민단체 등과 같이 지역경제의 구조전환과 부품사 발전 전략을 공동으로 설계해 나가고 있다, 신임 위원장 벤너는 이러한 지역의 구조정책적 효과는 시간이 걸린다고 강조하면서 2025년까지인 지원 기간을 더 길게 연장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IG메탈의 노동조합대회에는 연방총리와 경제부 및 노동부장관이 참석해 신 집행부에 축하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정부의 정책적 입장을 피력하는 연설을 했다. 이는 이번 대회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져 온 오래된 관행이다. 그만큼 노조의 사회적, 정치적 위상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IG메탈의 정책 방향과 세부제안은 정부에 전해졌으며, 이제 그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대답이 있을 것이다. 독일의 산업전환은 최소한 이러한 소통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정부나 자본의 일방적 주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가? 총선을 앞두고 할 일이 많아 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