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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의회가 다루는 당신의 권리를 아시나요?

김영수/상지대학교
금속노조연구원   |  

사람들은 정치를 생각하고 말하는 순간, 뼛속까지 새겨져 있는 몇 가지 단어들을 떠 올린다. 일상생활에서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다. 권력, 정당, 선거, 의회. 혹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자체 단체장들도 그 대상이다. 이 이름표들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선거와 맞물려 있다. 물론 선거가 없어서 추첨과 추천의 방식으로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사회도 있겠지만, 대부분 일정한 주기만 되면 선거로 권리를 위임받는 대표자가 선출된다. 권력구조의 대표자들과 노동조합운동의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선거까지 고려하면, 노동자들은 거의 매년 선거와 선거운동을 접한다. 국가는 1년~1.3년에 한 번 정도 선거로 시끌시끌하다. 일상생활의 슬픔과 고통까지 다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과도 같다. ‘선거가 있으니, 당신의 권리도 안전하다. 민주주의의 최고선은 선거다.’는 생각을 강제로 밀어 넣는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023년 9월 제77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과 2024년 총선방침을 수립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핵심 전략은 “직접정치와 광장정치를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구, 한국 사회의 체제 전환과 진보 개혁을 위한 대중투쟁과 정치개혁투쟁을 동반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구, 민주노총은 다양한 진보적 가치와 지향을 존중하며 진보정치세력의 연대연합 수준과 단결을 높여내는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이다. 총선방침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진보정당과 신뢰와 합의로 연합정당 건설에서부터 정책연대·후보단일화·공동 선거운동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총선 공동 대응을 적극적으로 추진, 전·현직 간부의 지위를 이용한 친자본적인 보수 양당의 지지 행위 금지, 민주노총은 2024년 총선평가에 기초하여 2026년 지방선거까지 연합정당 건설을 목표로 한다.”

 

노동자들이 조직된 대표 조직은 민주노총이다. 조합원의 다양하고 불균등한 정치의식을 고려하더라도, 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은 정당정치의 보수 양극화, 개혁의 틀 안에 갇힌 진보,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한 진보정당, 노동자 계급정치를 박물관의 고대 유물인 양 관람만 하려 하는 노동현장정치 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자, 민주노조운동의 정당정치와 노동자 후보들을 의회에 진입할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약 40년 가까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추구하는 동안, 이념형 진보정당의 후보자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의회에 진출하기도 하였고, 의회를 노동자의 정치적 투쟁 거점이자 권력 시스템을 바꾸는 구조개혁의 진지로 삼았다. 노동자·민중들도 거점과 진지에 희망을 걸기도 했다. 노동자·민중들의 요구와 권리가 들어있는 법안을 쉽게 발의할 수 있었고, 노동자·민중의 목소리를 진보적인 정당의 입으로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념형 진보정당은 권력 시스템의 동력장치로 존재하는 의회의 방어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의회정치의 깍두기 신세로 남았다.

 

그래서 필자는 의회에서 다루는 내 권리와 의무를 살펴보았다. 일상을 견뎌내는 것조차 버거워서 그러겠지만, 나는 한국 의회와 언론이 생산하는 선정적인 법 이슈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더라도, 정작 자신의 삶 속에 들어와야 할 권리나 특정 세력에게 득이 되는 법의 문제에 잘 알지 못한다. 노동자·민중들도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제21대(2020년~2024년)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이 총 25,469개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지난 4년 동안 하루 평균 약 17.5개의 법률안이 발의된 것이다.

 

 

21(2020~2024) 국회 발의 주체별 법률안 통계

구분

접수

처리

법률 반영

원안가결

수정안가결

대안반영

수정안반영

의원

23,371

7,212

6,833

338

970

5,306

219

위원장

1,276

1,274

1,266

1,264

2

-

-

정부

822

458

458

71

130

255

2

총계

25,469

8,944

8,557

1,673

1,102

5,561

221


  

25,469개의 법률안을 세밀하게 뜯어보면, 모든 내용이 내 일상생활의 생명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테지만, 그 법률안의 내용이 내 권리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잘 모른다. 노동관계와 관련된 법 이외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저 단체나 직업의 이익과 밀접하게 활동하는 이익단체의 문제로 치부하고 만다. 정보화 사회에서 약간의 관심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사안들인데도 모르고 지나가거나, 알고도 내 문제가 아니라고 규정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정치를 이런 수준에서 인식하고 대응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니? 필자가 아는 것이 부족해서 그러겠지만, 노동자 정치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노동자들이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 후보를 내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겠다는 것인지. 이것과 다른 무엇이 있다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보통 정치와 정당을 동일시한다.

 

그래서 똑똑하고 돈 많은 노동자들끼리 정당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선거에 후보로 나서서 유권자들의 지지로 당선되면 될 터인데, 굳이 노동자와 세력화라고 할까? 게다가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정치를 한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할 권리가 있는데, 노동자라고 못 할 것 없지! 그러면서도 입꼬리를 씁쓸하게 치켜세우며 읊조리는 말이 있다. 나라가 망하게 되었구먼~ 망조일세 망조. 사람과 직업의 본분을 고착해버린 상태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일수록, 한숨 소리가 크고 깊다. 우리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차별의식이나, 성공한 엘리트들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승자 귀속주의의 뿌리가 깊게 박혀있다.

 

노동자·민중들도 이러한 의미체계의 틀 안에서 정치와 권력을 인식하는 순간, 기득권층이나 엘리트들에게 시혜 충성도와 대리 만족도를 드높인다. 권력자들을 대하는 노동자·민중들의 행동을 살짝 들여만 봐도 알 수 있다. 권력자들과 악수하는 모습, 셀카를 찍겠다고 들이미는 핸드폰, 지역 주민들의 공공적 행사에서 권력을 우선 배려하는 의전 체계, 권력에 저항하는 말과 행동을 비난하거나 뜯어말리는 태도 등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데,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