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국민의 <권력 위임> 대상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촛불집회는 윤석열 탄핵소추(이하 탄핵)의 성공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윤석열에 대한 탄핵은 다시 한번 국민의 힘을 보여주는 쾌거입니다. 이런 승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며 국민의 힘에 경외감을 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에 어떤 의문을 제기하려고 합니다. 의문은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는 명제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국민은 <권력을 위임>하고, <권력행사>를 일상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데서 비롯됩니다. 즉,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그 권력의 행사는 촛불 투쟁을 할 때만 발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으로는 자신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의 지배를 받다가, 그들이 불법 계엄선포 등 부당한 권력 행사를 할 때만 그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 해도 될 촛불 투쟁을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권력의 위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2016년 박근혜를 탄핵한 후 그 탄핵을 주동한 국민은 권력을 민주당에 위임했습니다. 그 결과 모두가 알고 있듯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습니다만, 문재인 정부는 권력을 위임한 국민의 요구와는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시간을 끌다 결국 하지 못했고,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요구, 노란봉투법 제정은 압도적 다수당임에도 불구하고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신임을 잃은 민주당 문재인 정권은 윤석열이란 괴물을 끌어안은 국민의힘(당)에 정권을 넘깁니다. 그리고 국민의힘(당) 윤석열은 작금의 불행을 야기시킵니다.
촛불의 반복은 <권력의 위임>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입니다.
촛불을 이끈 국민이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던가, 민주당이 아닌 다른 진보 진영에 권력을 위임하던가, 아니면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게 권력을 분산 위임하여 민주당을 견제하고, 위임받은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게 했다면, 다시 말해 국민이 권력의 중심으로 계속 남아있었다면, 2024년의 촛불은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윤석열이란 괴물의 탄생을 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권력의 위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촛불은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24년 촛불, 일단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2016년처럼, 국민의 권력이 민주당이라는 보수정당에 위임된다면, 국민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민은, 또다시 권력을 위임받은 세력들에 의해 지배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년 내에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하고, 국민은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지 모릅니다. 불행히도 상황은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촛불 승리에 도취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촛불의 반복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먼저 국민은 <왜> 자신의 권력을 민주당에 위임하려고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국민은 왜 진보 진영과 권력을 공유하고, 권력의 일상적 행사를 도모하지 않았을까요? 국민이 민주당 이외의 세력, 특히 진보 세력들에게 권력을 위임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한계 때문입니다. 즉, 진보 세력들이 권력을 위임받고, 그 권력을 국민과 함께 일상적으로 행사할 태세를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민은 권력의 위임 대상에서 진보세력을 배제한 것입니다. 이 세력들에는 민주노총도 포함됩니다. 금속노조도 포함됩니다. 당연히 노동자들도 포함됩니다.
이제 진보세력이 국민의 <권력 위임> 대상이 되기 위한 태세를 갖춰나가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상을 좁혀 민주노총,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왜냐하면 민주노총이 진보세력의 주축이고, 영세화된 진보정당을 모아낼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의 설립 목적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포함됩니다. 이것을 포함시킨 것은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무장해서 노동자 권력 적어도 민중 권력을 쟁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은 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이라는 생산수단(무기)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노력으로 노동자 출신을 비롯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계속 발전했다면 국민의 권력 위임 대상 리스트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이후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 사업, 권력 획득 사업을 민주노동당에 위임하고, 자신들은 경제투쟁(사실은 임금인상)에 몰두합니다. 말이 좋아 위임이지 사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권력 획득 사업의 아웃소싱이었습니다. 정치세력화 아웃소싱 업체인 민주노동당은 사세를 키워가기 보다는 경영권 다툼을 하다 회사를 분열시킵니다.
민주노총의 아웃소싱과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진보세력이 국민의 권력 위임 대상이 되는 기회를 잃게 만듭니다. 민주노동당의 분당 때 민주노총은 아웃소싱 정책을 철회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권력 획득 사업을 직접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아웃소싱은 지속되었고, 아웃소싱 업체의 분열은 계속되어 급기야 겨우 생명만 부지하는 영세사업장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진보세력이 국민의 권력 위임 대상 리스트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고, 국민과 함께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평등한 세상 만들기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역사의 불행한 반복을 그저 지켜보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민주노총이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한 태세 전환이 필요합니다. 국민에게 ‘우리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함께 권력을 일상적으로 행사합시다’라는 말을 할 수 있고, 그 말을 믿을 수 있게 하는 태세, 기반을 갖춰야 합니다.
민주노총의 마인드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민주노총 소속 16개 산별노조가 임단투에 1년의 2/3를 할애하면, 태세는 갖춰지지 않습니다. 노동해방이라는 창업정신은 창고에 처박고, 오직 임금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서만 매진한다면, 국민은 민주노총을 권력 위임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습니다.
금속노조는 민주노총 소속 산별노조 중 두 번째로 큰 조직입니다. 금속노조는 전노협의 전통을 계승한 조직입니다. 그래서 가장 계급적이고, 투쟁적이었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산별노조로의 전환도 가장 빨랐습니다.
그러나 그런 금속노조가 종이호랑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치세력화, 세상 바꾸기, 노동해방이라는 창업정신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오직 임금 등 근로조건 개선만 남아있는 실정입니다. 민주노총에 있는 금속노조 외 15개 산별노조의 사정도 금속노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산별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노총을 국민이 모를 리 없습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진보세력들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습니다. 그 결과 권력을 위임하고, 함께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기존의 경제주의 마인드를 버리고, 사회운동과 함께하는 민주노총으로 마인드 전환을 해야 합니다.
기업, 산업에 머물고 있는 노조를 지역으로 나오게 하고, 지역의 진보세력들과 함께 국민의 위임을 받을 수 있는 태세 구축에 나서야 합니다. 민주노총과 함께 세상 바꾸기에 나설 수 있는 진보정당들이 영세기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함을 인지하고, 진보정당 구하기에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국민의 위임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해야 합니다. 즉, 노동자들의 정치의식 고양을 토대로 현재의 영세화된 진보정당들을 규모화해야 합니다. 이 규모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규모화는 국민이 민주노총을, 권력을 위임하고, 일상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파트너로 인정하는 중요한 기제입니다.
탄핵은 진행 중입니다. 헌재에서 탄핵을 인용해야 끝납니다.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민주노총은 국민의 권력이 특정 정당에 위임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내부 태세 갖추기 사업과 더불어 진보정당들을 원탁회의에 초대하고, 이들과 함께 국민의 권력이 특정 정당에 위임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등 진보 진영에도 위임되어, 국민의 권력이 일상적으로 행사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의 성과가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는 진보세력(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시민세력+진보정당)의 탄생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