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전환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요즘에는 어느 나라든 국가의 미래 비전을 세우는데 ‘산업전환’이란 말은 빠트리지 않는다. 그만큼 산업전환은 이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정책적 화두가 되었다. 그 핵심 요인은 디지털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화 즉, 생태적 전환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산업전환은 ’이중전환‘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한다. 2010년대 초반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디지털전환은 최근 생성형 AI의 등장과 더불어 더욱 뜨거운 정책적 이슈로 떠올랐으며, 탈탄소화는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 세계의 모든 나라(195개국)가 참여하면서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런데 이 기술적, 생태적 전환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큰 변화에는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기 마련인데, 이에 슬기롭게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디지털전환으로 소프트웨어 기술자와 ‘테크기업’들은 큰 이익을 보지만 기술로 대체되기 쉬운 중간 또는 저숙련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위험성이 높다. 탄소중립 경제를 위해 전기차를 만들면 내연기관차와 관련된 기술자나 부품사들은 피해를 보게 된다. 또한, 새로운 재생에너지 산업에는 큰 기회가 되지만 석탄이나 석유 등 화석연료 산업은 사라져야 한다. 이러한 이중전환의 이중적 영향은 사회적 유대를 해치고 갈등을 유발해 민주주의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
유럽의 경우 산업전환으로 일자리 위협이 높은 산업이나 지역의 노동자들이 극우 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노조 조합원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산업전환의 피해 산업이나 지역의 조합원들이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비율은 전체 평균 지지율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청소년층에서는 양극화 현상이 보인다. 당장 탈성장과 탈산업화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적 환경주의자와 기후위기와 에너지전환을 부정하고 무조건적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극단적 우익 성향의 동조자로 갈린다. 극우 세력은 기후위기는 사실이 아니고 좌파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세력 확대를 위해 만들어낸 정치적 음모론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어떤가? 월간지 ‘참여와혁신’이 2024년 초 자동차, 발전, 시멘트. 철강 등 산업전환에 영향을 받는 업종의 조합원 4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대부분이 기후위기는 심각하고(83%), 따라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전환은 필요하지만(84%), 고용이 보장될 때 산업전환을 찬성한다는(85%) 입장을 보였다. 이는 한국의 노동자도 산업전환 과정에서 우경화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용보장을 전제로 산업전환에 찬성한다는 것은, 고용이 보장되지 않으면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산업전환과 일자리가 충돌하면 문제가 생긴다. 현재의 일자리는 위협받고 미래의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면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시스템을 지키려는 우경화 경향이 나타나기 쉽다. 최근 계엄사태로 등장한 극우 세력이 활개 치는 판에 산업전환은 자칫 한국사회의 우경화에 불을 댕길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은 극우화의 길을 선택했다. 새로 들어선 트럼프 정부는 공공연히 유럽의 극우 정당을 지원하고, 기술패권주의로 글로벌 산업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AI를 비롯한 디지털전환은 자국의 자본 및 기업의 이윤과 경쟁력의 도구로만 생각한다. 바이든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을 폐기하고, 화석연료 산업을 재부양하고자 한다. 파리기후협약에서도 다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미국식 극우화가 답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가 답이다. 최근 많이 회자되는 ‘정의로운 전환’, ‘사회 대개혁’ 등은 노동자에 피해가 없는, 모두가 수용하는 지속 가능한 산업전환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포괄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사회, 경제, 정치적 영역에서 더 많은 정의와 더 많은 평등, 더 많은 참여와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며, 이를 우리의 정책적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사안들이다.
먼저 ‘큰 정부’와 공정한 분담이 요구된다. 산업전환을 위해서는 신기술과 재생에너지 투자, 친환경적 재산업화를 위한 지원, 노동자의 직업전환을 위한 교육·훈련체제 및 사회적 안전망 확대 등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이를 감당할 ‘큰 정부’가 필요한 데, 지출 확대를 위한 재정마련이 문제다. 여기서 공정한 분담이 요구된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부유한 상위 10%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반(48%)을 차지하나 기후위기로 인한 소득손실은 총손실의 3%에 불과하다. 반면 하위 50%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2%에 불과하나 폭염, 폭우, 가뭄 등 기후변화로 인한 소득손실은 전체의 75%를 차지한다. 어이없는 불공정한 결과다. 책임 있는 자는 손해가 없고 책임 없는 자가 피해를 본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책임 있는 자가 더 많이 책임지는 공정한 분담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 부유세, 법인세, 상속세, 횡재세, 탄소세 또는 에너지세 등의 세제개혁을 통해 산업전환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가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평등사회는 산업전환을 위해 더욱 필요한 가치다. 저소득 계층에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실천적 행동이 어려울 수 있다. 친환경 에너지나 제품이 비싸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기차는 비싸 값싼 내연기관차를 사게 된다. 이리되면 기후 운동은 ‘엘리트 운동’으로 축소되고 친환경적 산업전환은 어려워진다. 모든 국민이 산업전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저소득층의 임금을 높이고 사회적 평등을 구현해야 할 이유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문제가 된다. 산업전환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에서 노동력 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과 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산업 간 노동조건과 임금 격차가 심하면 이동이 어려워진다. 노동력 이동은 노동조건과 임금이 평준화되었을 때 원활해진다. 이는 노조 조직률이 높고 산별노조가 활성화될 때 가능하다.
유럽연합은 노조와 단체협약을 기업 및 산업 간 노동조건과 임금 격차를 줄이고 산업전환을 지원하는 ‘공공재’로 인식하고, 단체협약에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70% 미만인 회원국은 그 적용률을 높이기 위한 실행 계획을 수립하도록 권고한다. 이에 따라 독일은 단체협약의 일반효력 규정을 완화하여 적용률과 적용산업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공공조달은 단체협약을 적용하는 회사들과만 계약한다는 ‘단체협약준수규정’을 도입했다. 노조 조직률을 높이고 단체협약의 효력확장을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려는 시도다. 이는 노동시장의 상향 평준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노조를 무력화시켜 하향 평준화를 노렸던 윤석열 정부와는 정반대의 길이다.
또한, 산업전환 과정에 노동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최근 OECD는 AI 도입 시 회사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노사의 협의 과정을 거치면 예상되는 문제를 사전에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게 돼 도입 후 훨씬 더 효율적이고 직무 만족도도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일터민주주의’가 산업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직장을 상생의 터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노동의 참여는 일터를 넘어 지역과 산업 차원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산업전환으로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과 지역은 사회적 정책협의체를 구성하고, 이해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미래의 비전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비전이 없으면 산업전환을 거부하고 당장의 이익만을 생각하게 돼 갈등이 생기기 쉽다. 비전이 있을 때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협력과 연대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산업전환은 민주주의 위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탄핵 정국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더 많은 정의와 평등, 더 많은 참여와 연대가 이루어지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