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과 사회대개혁의 담론을 위해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2024년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 탄핵을 인용하였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국가폭력을 행사한 자에게 파면을 최종적으로 선고하였다. 그래서 정부는 4월 8일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 3일로 공고하였다. 이제는 차기 대통령 선거 시간이다. 이미 차기 대통령이 결정된 듯한 분위기도 만연하다. 그래서 그런지 민중의 광장정치는 선거 정치로 바뀌고 있으며, 차기 정부가 윤석열 세력에 대한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일궈낼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기도 한다. 한 번쯤은 이런 믿음의 사실들을 의심하면 어떨까? 필자 역시 나 자신을 의심하면서 이 글을 쓴다.
의심할 지점은 매우 간단하다. 광장정치의 염원이 선거 정치나 차기 권력의 정책에 고스란히 담길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촛불 정부임을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의 진실조차 규명하지 못했고, 노동을 존중한다고 해놓고 노동을 실질적으로 배제했고,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지 않았듯이, 차기 정부가 광장의 빛이 수놓았던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던 세력의 청산, 진정한 사회대개혁의 추진’ 등을 국가정책에 담아낼지 궁금하다. 나도 광장정치의 한 사람이기에, 빛의 염원을 실현할 정부가 들어서길 바란다.
빛은 보통 어둠을 걷어내고 밝음을 이끌어 낸다. 사람들이 빛을 희망으로 여기는 이유일 것이다. 필자는 대통령 선거 시간을 맞이하여 한국 사회의 희망을 한 단어로 말하고 싶다. ‘진실’이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파면을 인용하면서 각종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된 사실만이 아니라, 윤석열의 탄핵에 반대했던 각종 사실들이 무수하다. 비상계엄의 정당성이나 윤석열 파면의 부당성을 내세웠던 세력들의 각종 언행이다. 12.3비상계엄 선포 이후 민중들에게 범했던 정신적 폭력들이다.
필자는 2001년에 한 권의 책을 발간하였다. 책은 <화해는 용서보다 기억을 요구한다>는 제목이다. 25년 전에 발간한 책이지만, 이 책의 제목을 소환하는 것은 2024년 12월~2025년 4월까지 광장에서 발했던 빛의 염원이자, 한국 사회의 ‘희망’을 제작할 수 있는 단초가 책의 제목에 들어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 책은 1990년에 남아공 인종차별정책이 폐지되고 난 이후 남아공 정부가 추진했던 과거사정리의 가치와 정책과 그 효과를 일목요연하게 수록하였다. 남아공 과거사정리의 핵심 담론은 ‘진실과 기억’이었다.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기억하자는 새로운 남아공 사회의 가치였다. 국가폭력을 행사한 사람이나, 그러한 폭력을 뒷받침했던 헌정질서를 바꾸었다. 역사적 사실들을 진실의 옷을 입혀 ‘진실의 방’에 채우는 과정이었다. 이 책을 발간한 지 벌써 25년이 흘렀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진실’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았다. 사실을 ‘진실’로 기억하기 위한 투쟁 대신, 사회통합이라는 담론의 이불로 ‘진실’을 덮는 데 급급하였다.
역사적으로 광장정치의 힘으로 독재 권력에 저항했으며, 저항의 힘이 차고 넘쳐흘러서 제도권 야당 정치 세력에게 행정부 권력을 안겨보기도 했지만, ‘진실’을 기억하기 위한 청산의 정치는 나 몰라라 했다. 갈등을 두려워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청산의 정치는 범죄를 저질렀던 사실을 진실로 바꾸는 과정이다. 단순히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정치의 사법화, 청산의 사법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가치’를 사회적인 담론으로 만들어 내고, 그 담론을 둘러싼 공론화가 삶의 구석구석에 파고 들어가게 한다는 의미다.
12.3비상계엄은 대통령 선거의 시간에도 째깍째깍 소리와 함께 지속된다고 생각한다. 비상계엄을 동조하고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면서 민중들에게 폭력을 서슴지 않았던 세력들이 대통령 후보를 내세우고 있으며, 비상계엄을 가능하게 했던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도 여전하다. 민중의 권리를 억압하는 헌정질서도 굳건하다. 필자는 헌정질서를 헌법만이 아니라 각종 법률, 법령, 규칙, 규정, 지침 등을 감싸고 있는 헌법의 체계로 간주하고 있다.
비상계엄을 주도한 사람을 법률적으로 하는 것만으로 헌정질서를 회복했다거나, 혹은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였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민주주의의 반쪽만을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선거 민주주의의 과잉에 빠져 있다. ‘진실’은 헌법의 조문보다 포괄적 헌정질서의 권력체계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빛은 염원한다. 진정한 사회대개혁은 포괄적 헌정질서를 진짜로 바꿔내는 ‘체계 판갈이 정치’와 함께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무리 급해도 스스로를 돌아보자. 사회대개혁이 제도권 의회정치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왔다. 허울뿐인 ‘진짜 대한민국의 개혁 담론’은 쓰레기통에 던져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 사회대개혁은 제도권 안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하면서 광장정치를 배제하거나 빛의 염원을 희화화하는 역사의 굴곡에 벗어날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운동도 윤석열 탄핵 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제는 대통령 선거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거창하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고 싶지 않다. 또한 민주-진보 연합으로 선거 정치에서 승리하자거나, 그러한 선거 전략으로 권력을 되찾자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민주-진보의 연합은 자기모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권력을 독과점하는 제도권 정치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희화화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권력의 거점을 내세워 노동자 계급정치의 가치와 담론을 진보의 상대적 오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노동자 계급정치는 담론이 필요하다. 요즘 자본주의는 노동자 계급이 잘 보이지 않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고, 민주노조운동도 조직적인 계급정치의 담론을 쉽게 제기하지 않고 있다. 마지 노동자 계급의 담론을 제기하는 것이 현실에 무지하고 모험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돈키오테인 양 취급받고 있다. 노동자 계급 스스로 계급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자기모순에 빠져 산다. 노동자들의 계급 담론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술자리 안주거리가 필요하다. 서로에게 단순한 말을 주고받자. 무수하게 오가는 사실을 진실로 만드는 정치를 노동자 계급이 하자는 것이다. ‘진실’을 기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희망’의 빛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