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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책대의원대회를 제안하며

공계진 /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사장
금속노조연구원   |  

금속노조 60차 임시대의원대회 상정된 안건들

 

필자도 금속노조 조합원이다. 필자가 속한 단위는 시흥안산지역지회 내 안산시흥일반분회이다. 조합원이기 때문에 일반분회 방에 올라온 임시대대 안건들을 살펴보았다. 그 중 일반분회에서는 <금속노조 조합비 및 규약 개정 현장토론안 요약>을 올리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요약에 올라온 내용은 규약개정안과 조합비 및 교부 기준 개정안이었고, 지역지회에서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규약개정안이 아닌 조합비 관련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조합비 부담 경감>을 이유로 조합비와 교부금을 변경할 시 대공장이 없는 시흥안산지역지회는 2천만 원 가까운 교부금 감소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토론은 분노를 모으는 과정, 이 분노를 모아 정현철 지회장을 비롯한 대의원들은 사생결단의 각오를 하고 대대에 참석했다. 하지만 안들에 대한 타협이 이루어져 사생결단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했다.

 

아, 대의원대회...

 

정기가 아닌 임시대의원대회를 보고, 대의원대회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래서 필자는 임시대대를 계기로 대의원대회 일반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고자 한다.

금속노조는 60차 임시대대의 안건으로 임원임기 변경, 임원선출방식 변경, 대의원 수 조정 등을 올릴 예정이었다. 이런 안건들은 금속노조의 권력구조와 연결된다. 이 안건은 금속노조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현장 토론을 수렴한 중집은 이 안건들 중 대의원 수 조정만 상정했다. 비록 상정과 통과에 이르지 못했지만 필자에게는 아쉬움을 주는 안건들이다.

권력구조의 변화를 논하려면 실무적 접근이 아닌 금속노조의 전략의 변화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전략의 변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발전전망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대대 안건에는 이런 것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1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아쉬움

 

2008~2012년은 필자가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재직시절이다. 필자는 그 기간 내내 산별노조 발전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내부 연구자와 외부연구자의 도움으로 금속노조 교섭구조 발전방안, 금속노조 위기진단과 대안모색, 대공장운동과 지역운동의 강화방안 연구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많이 부족하여 내놓기 부끄러웠지만, 필자가 고민한 핵심은 <경제주의, 조합주의>에 빠지며 <세상을 바꾸는 금속노조>라는 궤도에서 이탈할 위험에 빠진 금속노조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노조식으로 표현하면,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하여 기업성이 짙은 산별노조에서 기업성을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 <사회 운동적 노동운동론>이었는데, 이 개념은 위의 보고서의 앞부분을 늘 차지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담은 부족한 보고서들이 생산된 것은 2011~2012년에 이르러서인데, 불행히도 필자는 이것을 공론화하고, 더 발전시켜가는 작업을 하지 못한 채 2012년 말에 퇴직하였다.

평조합원이 된 필자는 누군가가 필자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대의원대회에 금속노조 발전전망이라는 안건을 올려주길 기대했었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어느 연구에 어떤 교수님이 필자의 문제의식을 담은 글을 작성한 것을 보았지만, 그 문제의식의 대의원대회 상정은 끝내 보지 못했다. 그 후 세월은 흘러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는 10년 동안 금속노조에 미래를 모색하는 고민이 없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다시 정책대의원대회를 제안

 

금속노조라는 거대 조직은 논의할 일이 많다. 대의원대회에서 논의의 정점을 찍기 때문에 대의원대회에 올라오는 안건은 늘 많다. 보통 안건은 현안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설령 발전전망과 같은 안건이 올라와도 실속 있는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대의원대회에 상정할 생각조차 못하게 된다. 그것은 중장기 발전전망을 입안하지 않고, 토론은 더더욱 하지 않는 결과로 연결되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필자는 금속노조 위기진단과 대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정책대의원대회를 제안했었다.

필자가 제안한 정책대의원대회 상은, 대의원대회 내부에 교섭, 투쟁, 조직 등의 중장기발전방안을 논의하는 몇 개의 상임위를 두고, 그 상임위의 논의 결과를 총 취합하여 본 대회에서 금속노조의 중장기 정책과 발전전망을 결정하는 것이다.

정책대의원대회 상임위에 발전전망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발전전망에 대한 문제의식을 도출하고 이것을 대대에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임원들이 전략적 사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후보단계에서부터 임원들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선출 후 임원들이 금속노조의 전략방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책이해력과 정세판단력을 갖고 금속노조를 이끌어갈 수 있게 역량강화프로그램을 가동시켜야 한다. 대의원도 마찬가지이다. 단순 거수기가 아니라 발전전망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하지 못하는 임원의 임기는 길 필요가 없고, 대의원 수는 많을 필요가 없다.

 

임기 문제나 대의원 수 감축은 금속노조의 발전전망과 연동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무적 수준으로 임시대대에서 결정하려고 하기보다는 필자가 제기했던 정책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금속노조의 발전전망과 연계해서 결정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실무적으로 임원 임기와 대의원 수 변경을 시도한 것은 잘못이다. 그런 면에서 임원 임기 문제의 미상정과 상정한 대의원 수 조정의 부결은 어쩌면 잘된 일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선행되어야 할 작업을 하지 않은 채 임기 연장과 대의원 수 감소 결정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동운동사는 임원 임기와 대의원 수 조정은 역사적인 문제이므로 간단히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전노협의 후신이랄 수 있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위원장 임기를 3년으로 연장하는 문제를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된다. 금속노조의 역사는 어용노조 민주화와 떼놓을 수 없다. 전노협 시절 금속 조합원들은 3년 임기의 어용노조 위원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죽도록 투쟁했어야 했다. 임기가 2년이면 끌어내리는 시간이 단축될 수 있었지만, 임기가 3년이라 불신임시키지 못하면 회사 편 어용노조 위원장을 3년이나 지켜보아야 했다. 즉, 3년이나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끈질긴 투쟁으로 민주노조를 만들자마자 조합원들은 규약부터 개정했다. 규약개정의 핵심은 상급단체의 변경, 위원장 임기의 1년 단축, 즉 임기 2년제의 도입이었다.

대의원 수도 그렇다. 한국노총 소속 어용노조는 소수의 조합원을 뽑아놓고, 그들을 주무르며 어용 짓을 일삼았다. 내가 아는 반월공단의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 어느 노조는 18명 정도의 대의원을 뽑았다. 그리고 그 대의원들을 과거 박정희 시대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으로 만들고 그들이 위원장을 선출하게 했다. 그리고 장기집권을 했다. 민주파 조합원들이 직선제를 요구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대의원들의 역할은 조합원들의 의사를 조합에 전달하고, 조합의 결정을 조합원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자인데, 당시 대의원들은 어용 집행부와 회사를 대변했다. 어용노조와 싸워 민주노조를 세운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이런 대의원제도를 지긋지긋해 했다. 그래서 민주노조로 전환하자마자 대의원 선출규정을 바꿔버렸다. 가능하면 대의원 수를 늘리는 게 조합원들이 쟁취한 민주노조의 방향이었다. 즉, 어용시절 100명당 1명을 뽑았다면 10명당 1명의 대의원을 두어 대의원과 조합원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었다. 과거 어용위원장과 회사의 수족이었던 대의원에게 민주노조 사수의 선봉대의 역할을 맡겼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위원장, 위원장 임기, 대의원 수이기 때문에 단순히 실무적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즉, 2년은 너무 짧으니 3년으로 하자, 800명은 너무 많으니 200명으로 하자는 식의 접근은 금속노조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을 설득할 수가 없다. 아니 그런 식으로 조합원들을 설득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정책대의원대회를 통해 금속노조의 발전전망을 정리하고 그 발전전망대로 위원장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원장 선출에 대한 방안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테면 중장기적 발전전망을 집행해나가기 위해서는 3년이란 임기가 필요하고, 위원장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위원장 역량강화프로그램 수행을 의무화하겠다는 것을 규약에 못 박아 두는 것이다. 이런 조치가 선행될 경우 조합원들은 과거 어용노조 위원장에 환멸을 느껴 줄인 위원장 임기의 연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대의원 수 조정도 마찬가지이다. 10년 전 필자는 금속노조 발전방안 모색에서 대의원 수를 200명으로 줄일 것을 제안했었다. 지금 조합원들이 보면 펄쩍 뛸 내용이지만, 필자의 제안에는 여러 보완장치가 있었다. 상임위원 제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 임시대대에 제출하려고 했던 감축안에는 이런 보완장치가 없다. 그저 수가 많아서 회의가 어려우니 줄이자는 것이 감축의 주요내용이다. 이런 식의 접근으로는 대의원 수 감축에 대한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이런 점들을 감안, 발전전망만을 다루는 정책 대의원대회를 2년에 한 번씩이라도 열어 그것을 정리할 것을 과거에도, 지금도 제안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런데 그 변화가 노동자들에게 유리하지 않다. 이런 변화에 금속노조의 대응은 취약하다. 기껏해야 변화의 한 요소인 청년노동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해서는 금속노조가 금속산업 내 모든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없다. 작은 공장 노동자들, 다양화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제 인구의 주요 구성원이 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조직이 되지 못할 수 있다. 지금처럼 대기업 중심, 실리주의, 조합주의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기간이 길어 질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는 기후위기, AI로 인한 급격한 산업전환, 트럼프와 같은 인물의 등장과 국제적 착취, 극우세력의 등장과 노동자 탄압 등의 문제에 대응하기 어렵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이것을 막는 길은 정책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변화를 헤쳐나갈 중장기발전전망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을 토대로 위원장과 대의원들이 변화를 추진하면 도태가 아니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조합원들은 위원장의 임기 연장, 대의원의 수 감축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