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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 AI와 노조의 도전과제

이문호 /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금속노조연구원   |  

공중제비를 도는 아틀라스가 인간사회를 양분시키고 있다. 한편에서는 열광과 기대, 다른 한편에서는 회의와 두려움이 가득 찬 눈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전자는 AI가 인간을 힘든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성장과 번영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치며, 후자는 반대로 인간은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가난과 AI의 감시 및 통제하에서 허덕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누가 옳을까?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노조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섰다.

 

현재 낙관론적 전망이 판을 치지만 믿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기술혁신 시기마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으나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등장한 1차 산업혁명은 기계에 일자리를 뺏긴 노동자들의 ‘러다이트 운동’을 불러왔고, 2차 산업혁명 때는 컨베이어 시스템이 노동의 ‘탈숙련화’(단순반복노동)를 가져왔으며, 컴퓨터와 자동화 도입이 본격화되는 3차 산업혁명 때는 기계 속도에 맞춰 일하는 저숙련 노동과 그 기계를 관리하는 고숙련 노동이 공존하는 노동의 ‘양극화’가 일어났다. 디지털 시대인 지금(4차산업혁명)은 ‘플랫폼노동’으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불안정 노동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AI의 낙관적 전망에 회의를 느끼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 AI를 거부해야 하나? 어렵다. 무엇보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AI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 생성형 AI가 등장하자 거의 모든 사무직과 지식노동자는 자신의 업무에서 AI를 사용한다. 그것도 자신이 스스로 AI 도구를 찾아 사용한다. 이는 그만큼 AI가 편리하고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이자 앞으로의 업무능력과 성과는 AI의 활용능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알파고와의 대결로 유명한 이세돌은 향후 바둑 실력은 AI 활용능력에 달려 있다고 단언하면서, 세계 최고 기사인 신진서는 AI를 통한 학습으로 절대강자가 됐다고 말한다. 커리어 전문 플랫폼인 링크드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경영진의 2/3는 앞으로 AI 활용능력이 채용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를 거부할 수 있을까. 회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BYD가 피지컬 AI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면 현대차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경쟁력이 떨어지면 일자리도 위험해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AI의 낙관적 전망은 믿기 어렵지만 울며 격자 먹기로 수용해야 하나? 딜레마다. 여기서 기술과 노동에 대한 마르크스(Marx)의 분석을 소환할 필요가 있다. 기계화로 대공장이 건설되는 산업화 초기에 당대의 저명한 사상가인 밀(Mill)이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기계의 발명이 과연 인간의 노고를 덜어주었는지 참으로 의문스럽다’고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는 기술은 절대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자본주의하에서 기술은 인간이 아니라 오로지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산업혁명의 진원지인 영국 맨체스터 지역의 방직공장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계의 비인간적 효과를 발견한다.

 

공장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힘든 육체노동이 감소 되자 사용자는 임금이 비싼 남성 노동자를 몰아내고 싼 임금의 여성을 고용했다. 그러나 여성의 싼 임금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기 힘들었고, 급기야 아이들도 일을 해야 하는 비인간적 노동체제가 발생했다. 또한, 비싼 기계를 놀리지 않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렸으며(‘절대적 잉여가치’), 이것이 법적으로 제한되자 기계의 속도를 높였다(‘상대적 잉여가치’).

 

인간은 뒤켠에 두고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기술활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관점과 분석은 아직도 유효하다. 우리가 거부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활용방식이다. 기술은 중노동을 없애고 지루한 단순반복 작업 등을 대신해줌으로써 노동의 인간화에 기여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생산성을 높여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러나 기술이 이윤추구의 도구로만 활용되면 그러한 기술의 ‘인간적’ 잠재력은 발전되기 어렵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기술활용방식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터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일터 민주주의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노조 또는 노동자 대표가 참여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협의를 거쳐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민주적 과정은 기술이 이윤추구의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것을 막아준다. 이는 사용자에게도 득이 된다. 제조업과 금융 및 서비스업을 조사한 OECD의 한 조사에 따르면, AI의 도입과정에서 노조 또는 노동자 대표와 협의한 회사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모든 면에서 더 큰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업무만족도와 정신 및 신체 건강, 관리의 공정성은 물론이고 업무성과도 높았다. 도입과정에서 기술을 직접 사용하는 현장의 직원들과 논의를 통해 예상되는 문제점과 갈등을 사전에 파악하고 예방조치를 취함으로써 도입 후 운영 효율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일터 민주주의가 요구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사회복지체제의 강화도 필요하다. AI와 같은 급격한 기술혁신은 많은 직업적 변화를 동반한다. 사라지는 직업도 많고 새로 생기는 직업도 많으며, 없어지지는 않지만 일의 내용이 변하는 직업도 많다. 이는 직업 전환을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요구된다는 것인데, 이 유연성에 노동자가 희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AI 도입을 반대하게 된다. 해고가 살인이 되는 나라에서는 절대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 사라지는 일자리를 수용하려면 그만큼 사회복지체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기에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결부되어야 한다. 직업 전환을 위한 교육·훈련체제를 강화하여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복지체제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시 노동시장으로 복귀할 기회를 넓혀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로서의 사회적 위상도 되찾고 복지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임금과 노동조건의 평준화도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기업 및 직종 간 격차가 심하면 직업 전환의 유연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AI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서 더 많이 도입되고, AI로 대체되는 일자리는 사무직과 생산직의 중간 숙련 직종이 가장 많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적어야 대기업 노동자들이 중소기업으로 이동한다. 또한, 지금과 같이 새로 생기는 직종이 불안정 노동이라면 일자리를 잃는 중간 계층의 노동자를 흡수하기 어렵다. 이들은 당연히 AI 도입에 저항한다. 임금과 노동조건의 평준화를 위한 원·하청 및 산별교섭을 강화해야 할 이유다.

 

생태학적 관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AI는 막대한 에너지와 물 소비로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비판받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AI는 사라져야 한다. AI를 살리기 위해 지구를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재생에너지로 구동되는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고, 에너지 효율적인 모델 개발 및 데이터 전송 경로 단축 등 ‘그린 AI’를 위한 모든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노조는 생태학적 관점을 강화하면서 사회적 책임과 연대의 폭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AI를 둘러싼 논쟁은 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 기술의 활용방식을 문제 삼아야 한다. AI가 단지 이윤추구의 도구로만 사용되면 사회적 저항에 부딪치고 ‘모두의 AI’가 되지 못한다. ‘거부냐 아니냐’는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모두의 AI가 될 수 있도록 일터 민주주의, 사회복지 및 교섭체제의 개선, 그린 AI 등 사회생태학적 혁신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