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과 사회적노동운동 그리고 사회적 교섭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민주노총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진보진영도 뒤숭숭합니다. 대의원대회에 상정된 안건은 유회라는 형식으로 부결되었습니다. 사회적 교섭을 추진했던 양경수 위원장 진영은 유회 전술을 통해 안건을 부결시킨 대의원 또는 진영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양경수 위원장 진영은 이 참에 다가올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승리를 꾀하려는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교섭을 반대했던 진영은 현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이 불가한 이유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민주노총 내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지 못한 듯합니다. 그것의 반영이 유회 전술인데, 사회적 교섭 반대 진영은 사회적 교섭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유회에 따른 추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선이 유회에 대한 비난과 이의 방어로 넘어가며 사회적 교섭에 대한 진지한 논쟁은 뒤로 쳐진 느낌입니다. 바야흐로 다가올 선거에 대한 정치공학적 접근이 이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거꾸로 선 사회적 교섭’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칼럼의 내용을 사회적 교섭에 대한 찬반의 입장에서만 바라본다면 ‘반대’에 해당하지만 이렇게만 규정한다면 필자의 의도는 너무 허접한 대접을 받는 꼴이 됩니다. 필자가 현재의 논의가 거꾸로 섰다고 표현했던 것은 민주노총의 운동 수준은 사회적 교섭과는 거리가 있는 ‘조합주의, 실리주의, 경제주의’로 흐르고 있는데 그것을 뛰어 넘는 사회적 교섭이란 것이 성립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회적 교섭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먼저 만들어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사회운동,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을 살펴보며 사회적 교섭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 사회운동
필자가 생각하는 사회운동(Social Movement)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변화를 추진하는 운동입니다.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이 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세력들의 결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회세력, 정치세력, 경제세력, 문화세력 등등. 이 세력들은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변화를 추진합니다. 시민단체, 정치단체, 경제단체, 문화단체 등등이 그것입니다. 변화는 권력, 제도나 법률 등의 개조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제도나 법률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는 권력의 변화를 추진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위해 정당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들 단체나 정당은 사회, 경제, 정치, 문화의 변화를 추진하기 위해 변화의 매개체를 찾아 집단적 행동 또는 투쟁을 합니다. 그 매개체로 주로 등장하는 것이 불평등(빈곤), 노동, 인권, 환경, 성평등, 평화 등등입니다. 정당으로 결집한 세력들은 이런 투쟁을 하나로 집적시켜 권력을 잡기 위한 선거투쟁도 전개합니다.
□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필자가 생각하는 사회운동적 노동운동(Social Movement Unionism)은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결합하는 운동입니다. 세력과 세력으로 표현한다면, 사회운동세력과 노동조합을 결합시키는 운동입니다. 이것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다시 설명해보겠습니다. 이 운동에서 핵심은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문제, 즉 임금, 근로조건을 갖고 자본과 투쟁하는 것을 뛰어넘어 사회세력들의 관심 사항인 불평등(빈곤), 인권, 환경, 성평등, 평화 등의 의제를 갖고 사회세력, 정치세력, 경제세력, 문화세력과 함께 투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노동자의 삶과 결합시켜 설명하면, 일터의 문제(임금, 근로조건) 뿐만 아니라 삶터의 문제(불평등, 환경 등)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나서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10여년 전 필자가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에서 썼던 ‘일터와 삶터의 결합’을 추구하는 운동입니다.
10여 년 전, 제가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을 주장(당시는 목소리가 작았습니다만)하며 ‘조합주의, 실리주의, 경제주의’ 극복을 말했었는데요, 이유는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이란 나의 문제 뿐만 아니라 남의 문제도 함께하는 운동이라서, 나의(노동) 문제 해결에만 집착하는 조합주의, 실리주의, 경제주의의 극복없이는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이란 것이 자리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사회적 교섭
노동조합에서 사회적 교섭을 추진한다면 앞서 언급했던 사회운동적 노선의 연장선이어야 합니다. 사회적 교섭의 주 내용은 노사교섭과는 다릅니다. 노사교섭은 임금, 근로조건, 고용 등에 대한 것입니다만, 사회적 교섭은 앞에서 언급했던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인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섭의 주체도 단순히 노동조합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과 사회세력이 교섭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섭 대상도 사업장의 사장(자본가)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 그리고 정부를 앞세운 자본가 집단이 됩니다. 교섭은 사회적(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이슈를 제기하고 사회제세력과 함께 대정부, 대자본 투쟁을 하며 진행됩니다. 즉, 사회적 교섭은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이 자신의 목표(광범위한 사회적 의제 해결과 연대)를 제도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활용하는 핵심적인 수단 중 하나입니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면서 사회운동,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사회적 교섭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다음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앞에서 살펴 본것을 토대로 과연 메가특구에서 노동권후퇴를 막는 교섭이 사회적 교섭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의제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메가특구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메가특구라는 미명하에 지방자치주의, 지역의 민주적 발전을 가록막으려는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애써 일궈놓은 지방중심의 행정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가특구의 문제는 산업정책의 문제입니다. 금속노조에서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이야기했는데요, 이 메가특구는 특정 재벌(이를테면 삼성, 에스케이 등) 중심의 산업재편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메가특구의 문제는 기후환경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이 아닌 자본중심의 전환을 추구하며 환경파괴를 가져오는 정책입니다. 그리고 노동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메가특구가 자본중심의 특구조성이기 때문에 자본의 행진에 걸림돌이 되는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정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메가특구의 문제는 복합적인 성격의 의제입니다. 따라서 메가특구내의 노동권 후퇴 만을 상정한 의제는 사회적 의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 민주노총의 사회적 의제 설정은 잘못된 것이고, 이는 주체의 문제 등에서 오류를 낳게 했습니다.
주체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의제의 복합성은 복합적인 의제와 관련이 있는 세력과의 관계의 문제를 불러옵니다. 메가특구의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세력, 사회세력, 경제세력과의 관계 형성이 필요합니다. 즉, 민주노총은 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 혼자 이 싸움에 뛰어들기 보다는 관련 세력과의 다자간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함께 해야 했습니다. 정의당을 비롯한 정치세력, 환경단체를 비롯한 사회세력, 메가특구가 추진될 경우 피해를 입을 경제세력 등과 함께 할 구상을 했어야 했습니다. 즉, 민주노총 혼자 주체로 설 것이 아니라 제 세력을 주체로 세우고 함께 투쟁할 구상을 세웠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메가특구내의 노동권 후퇴 저지라는 것만 의제로 내세우며 혼자 나서려했습니다. 이는 의제의 복합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기인합니다. 이 결과는 뻔합니다. 민주노총은 98년 정리해고제 의제를 다루는 노사정협의회에 참여했습니다. 선의는 그것을 막겠다는 것이었는데요, 결과는 정리해고 수용, 노동자들이 비용전부를 뒤집어 썼습니다. 노동권 후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작은공장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최대의 피해자가 되는 결과를 초래했었습니다. 이런 오류는 정리해고제는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구조의 추진체라는 것을 이해못한 데서 발생했습니다.
노선의 문제입니다.
의제의 복합성을 읽고, 관련 제세력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활동마인드의 재정립이 필요했습니다. 우선 인식의 문제부터 바로 잡아야 했습니다. 메가특구의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 했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는 사회구조를 바꾸는 투쟁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사고가 필요했습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노동조합운동 영역이 아니라 사회운동 영역이고, 따라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사회운동과 함께 해야 한다는 마인드 정립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구도를 그리고 판을 짜고 정권 및 자본과 붙을 준비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파악하고 달려들었습니다. 당연히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찌보면 부결이 잘된 일인지 모릅니다. 만약 제동없이 달려들었다면 98년의 참사를 다시 겪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의 발생은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했습니다. 이제라도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을 정립하고 제대로된 사회적 교섭을 준비해야 합니다.
결론에 대신합니다.
사회적 교섭 찬성진영은 사회적교섭 찬성률이 87%라며 사회적 교섭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필자는 이것을 보며 걱정을 했습니다. 앞의 87%의 성질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샘플의 대표성 문제는 차치하고, 87%라는 수치는 앞에서 필자가 언급했던 사회운동,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사회적 교섭을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찬성한 수치는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 특히 규모가 큰 곳의 경우 이미 조합주의, 실리주의, 경제주의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민주노총 소속의 많은 노조들이 지역 또는 전국 차원에서 진행되는 사회운동에 결합하지 않습니다. 시단위 민주노총지부의 지역 결합력은 매우 낮아져 있습니다. 지역에서 민주노총의 사회운동 결합은 이전에 비해 현저히 저하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산별단위 행사에 결합하는 수준입니다. 진보정당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 정도는 더 심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앞의 87%는 사회적 교섭에 대한 찬성률로 보기 어렵다고 했던 것입니다. 필자의 우려는 87%는 오히려 조합주의, 경제주의, 실리주의에 대한 경도성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즉, 여론 조사의 결과가 진짜 가리키는 곳은 민주노총이 더 조합주의로 경도되고 있으니 시급히 노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운동과 결합한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으로 자신을 정립하고 진짜 사회적 교섭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사회적 교섭은 경사노위가 마련해준 테이블에 앉아 협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설정해 놓은 구도에 10%의 파열구를 내고 90%는 내주는 그런 타협의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메가특구가 가져올 구조적인 문제(마치 신자유주의와 같은), 구조적 올가미가 우리 사회, 정치, 경제를 나락으로 내몰고, 그로 인해 작은 공장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들,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민중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을 막기 위한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 전선'을 구축하는 투쟁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1%에 이익을 주고 99%에 손실을 주는 그런 사회적 교섭에 매달리기 보다는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을 준비하는 것이 더 급합니다. 더 이상 미루면 안됩니다. 거대한 자본의 지역 재편과 정의롭지 않은 산업전환은 개별 사업장의 단기적인 노사교섭이나 경제주의적 임금 투쟁만으로는 결코 돌파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교섭테이블에 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사회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투쟁을 통해서만 막을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해야할 일은 테이블에 앉는 것이 아니라 메가특구와 관련되는 사회제세력, 정당 등을 모아내는 것입니다.
사회운동과의 결합은 중앙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차원에서도 추진해야 합니다.
현재 지역단위에서의 사회운동과의 결합은 거의 무너진 상태입니다. 현재 시단위 지부들의 사회운동 결합력은, 노동운동이 얼마나 지역 사회의 일상적인 사회운동과 괴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이제 지역 내의 진보정당, 시민사회, 그리고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과 일상적으로 호흡하며 지역사회의 변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글을 마치며 하나를 강조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87%는 진정한 사회적 교섭을 향한 동력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운동이 얼마나 조합주의, 경제주위, 실리주의에 깊이 침습당해 있는지를 경고하는 신호입니다. 이를 직시하고 진정한 사회적 교섭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회운동과 결합하여 세상을 바꾸는 ‘사회적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