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칼럼 > 칼럼
칼럼
 

이제 ‘영웅적 투쟁’은 그만 하자

금속노조연구원   |  
이제 ‘영웅적 투쟁’은 그만 하자

 
                           김승호 정책자문위원장(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87년 대투쟁 직후 한동안 광풍처럼 몰아쳤던 노조회피전술에 폐업과 부도가 있었다. 내가 활동했던 인천에서도 세창물산 등 수없이 많은 사업장이 폐업과 부도를 단행(!)했고, 이후 단체협약에는 폐업과 부도에 관한 조항들이 교섭때마다 요구로 제기되고 쟁점이 되곤 했다. 사업장 자체의 존폐를 차치하면 폐업이나 부도나 정리해고나 고용을 단절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모로 가도 결과는 똑같게 된다. 90년대 초반에는 산업구조조정의 와중에 경쟁력없는 산업의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업종전환을 하면서 조합원들을 떨구어냈고, IMF 때는 경제침체의 괴물이, 그 이후에는 시도 때도 없는 상시적 인원정리가 행해지고 있다. 발레오공조,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금속노동자 어느 기사에는 이런 인용구절이 있다. “희망퇴직했더니 하청으로 일하라고 한다.” 이 의미를 애써 해석해보면, “대우좋고 임금도 많은 곳에서 내쫓기고 났더니” “대우도 형편없고 고용도 제대로 보장안되는”이라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원청에서 하청으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낙오이고, 차별이고, 서러움이라는 것일게다. 그래서 희망퇴직이든 정리해고든 내가 선 고용의 자리에서 물러남은 곧 죽음이라는 등식으로까지 발전한다. 논리의 비약인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낯설지 않은 등식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피할 수 없는 본질이고 속성이라면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이유는 이러한 본질을 훼손시키고 변질시키면서 뭔가 궁극의 곳을 향해 가보고자 하는 열망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30여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렇게 변하는 것이 없을까 할 정도다. 노동조합의 덩치는 변했으되, 덩치에 걸맞는 인성과 뚝심은 갖추지 못했으니 덩치값을 못한다는 비판이 뒤를 잇고, 전투성은 남았으되 다수의 조합원이 함께 나누는 투쟁이 안되니 싸움에 이겼어도 결과의 역사에 기록되는 조합원은 거의 없게 된다. 기륭전자가 그랬고, 지금도 한진중공업, 발레오공조, 쌍용자동차, 발레오만도 등 많은 사업장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 싸움들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수세적이다. 한 사업장의 싸움이어서가 아니라 여러 사업장이 연대를 해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금속연맹에서 산별사업을 추진하던 시절, 스웨덴과 핀란드의 국제국장이 연맹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사업장방문, 산별노조의 운영 등에 대한 토론 등으로 며칠을 보낸 후 떠나기 전날 실무자 몇 명과 어떻게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열받기도 하면서 창피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 우리 노동조합의 전투성과 연대성을 열심히 떠들어댔고, 그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딱 한마디(아마 통역을 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 1차대전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우리보다 전투적이었고, 기업별과 비슷한 직종별노조였고, 1910년대에 18만명이 총파업을 했다가 사용자의 전국적 직장폐쇄로 조합원의 절반이 쫓겨나는 패배를 경험했으며 이후 현재와 같은 산별조직을 갖추기 위해 30여년의 세월을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위해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조직과 조합원이 양보를 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강한 노조와 강한 복지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실업의 고통과 비정규직의 고통을 느끼는 대신, 자기개발의 기회와 가사와 육아를 위한 파트타임 근로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는, 비정규직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혹은 내가 현재 서 있는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치열하고, 영웅적인 투쟁이 아니라, 수많은 조직과 조합원의 평균적 투쟁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임금과 성과급을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상급식을 위해 싸울 수 있고, 하청으로 일해도 차별을 느끼지 않을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평균적인 투쟁은 언제나 가능할까? 이제는 더 이상 내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내 몫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3년씩 돗자리를 깔아야 하고, 영하의 날씨에 고공농성을 해야 하는 영웅적 투쟁이 더 이상은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