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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저성장 구조에서 노동진영이 당면한 문제들

금속노조연구원   |  

저성장 구조에서 노동진영이 당면한 문제들

 

 

이종탁(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성장은 이제 구조화되고 있다.

 

저성장은 이제 시대의 징후가 되었다. 한국은행조차 이제 한국 경제 성장률을 2%대로 잡기 시작했다. 저성장 체제란 이미 ‘성장을 통한 파이 키우기’와 ‘분배의 확대’가 ‘선순환’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국 국민들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그런 성장과 분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노동자들부터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 말은 노동조합에서 임금인상을 중심에 놓는 활동양식이 일반적이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성장 국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가 써왔던 경기부양책을 그대로 답습하기는 어렵다. 외환위기의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보았던 김대중 정부가 IT/벤처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경기부양의 계기가 필요했던 이명박 정부는 4대강 토목산업과 녹색성장산업(?)에 집중 투자했다.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더 세밀하게 해야겠지만 그것이 결국 재벌과 초국적 금융자본의 배를 불렸을 뿐 실제 고용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통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성장의 엔진이 잦아들면서 생길 수 있는 양상을 잘 드러낸다. 2008년 쌍용차의 황당한 소식이 결국 2009년 77일간의 투쟁으로 이어졌다면, 2013년에는 통영에서 ‘고용촉진지구’ 선정이 임박했다는 소식이다. 고용촉진지구가 정책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이 시점에서 주목할 것은 조선산업의 침체로 중소 조선업체들이 무너지고 있으며, 그것이 지역 경제를 피폐화하는 현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두려운 것

 

자본진영이 세계 경제의 현실과 한국 경제의 조건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어쩌면 노동·진보진영보다 훨씬 근본적인 모색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최근 자본쪽 경제신문들이 앞다투어 연재하고 있는 한국경제진단과 모색 방향을 읽고 있노라면 모골이 송연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일례로 한국경제신문에서는 ‘저성장국면’에서 한국 경제의 과제를 ‘성장 잠재력 확충’으로 내놓았다. 성장 잠재력 확충이란 수출 중심의 경제 토대를 새롭게 재구성하자는 의미(이들은 내부적으로 지식산업과 녹색산업을 주목하면서, 밖으로는 한·중·일 FTA와 러·북·한 에너지 루트를 주목한다.)인 동시에 양적 생산에 주력했던 생산의 방식을 질적 효율성을 우선하는 방식(노동시간과 임금을 줄이는 대신 생산성과 일자리는 늘리는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와 인수위가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정확히 이해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어 걱정이다. 당선 후 중소기업인과 간담회, 중소기업청의 위상 제고 등이나 골목상권 보호 운운하는 이야기들은 ‘내수’에서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고심의 흔적이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고 엔화 가치는 하락하면서 수출업계들이 아우성치는데도 이에 대한 특별한 조치는 별로 검토하지 않는 것도 이명박 정부와 뚜렷한 차이점 중의 하나이다. 중국의 시진핑과 친서를 주고받는 양상도 이명박 정부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러면서 국내 경제단체장들을 만나서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자제”를 요청했다. 심지어 ‘정리해고 요건 강화’라는 말도 인수위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왜 이럴까? 단순히 정권 초기 ‘국민 달래기’일까?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인구 증가율이 정체하는 동시에 생산가능인구는 감소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면서 고령 경제활동인구는 증가하는 반면 20대 경제활동인구는 감소하는 추세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이명박 정부는 ‘유연화한 노동시장’을 바탕으로 ‘단기·임시 일자리’를 늘리는 선택을 했다. 청년 인턴이나 고령자 채용은 그것을 위한 정책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갈등을 심화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엄청나게 컸고, 단기·임시직으로 지나치게 유연성을 추구한 결과 오히려 생산성이 훼손되는 결과를 낳았다. 박근혜 정부는 이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조조정을 항상화하면서 인력조정을 활성화하는 것이 커다란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선택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솔직히 나는 그런 것이 아닐까 두렵다.

이전 정부들처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변죽만 올리다가 헛다리를 짚고 만다면 노동·진보진영으로서는 훨씬 더 운신의 폭이 넓어지겠지만 그렇지 않고 이전 정부와 다른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노동·진보진영이 오히려 힘들어질 수 있다. 정규직 노조와 노동자들의 묵인 속에서 비정규직을 늘리고, 그것을 확산하는 방식이라면 노동·진보진영에게 불리할 것이 없다. 현대차에서처럼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자본이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말이다. 그런데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둥 ‘박원순 방식’을 중앙정부에서 차용하고 이것을 일반화한다면?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초과근로시간 산정에 휴일근로를 포함하고, 근로시간계좌제 같은 것을 도입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프로세스를 밟는다면 어떻게 될까? 정규직의 임금은 줄이고 비정규직 일자리는 늘리겠다면? 나는 이것이 두렵다.

 

함께 살자, 이것을 중심으로

 

자본의 기본 방식은 경쟁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20대와 60대 문제는 40대와 50대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바닥을 향한 경쟁’을 촉진하기를 선호한다. 노동과 진보진영은 이런 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르게 살자, 함께 살자가 저성장 구조에서 노동·진보진영의 가장 중요한 기조로 삼기를 바란다.

조선업종과 전자업종을 중심으로 저성장으로 인한 기업 위기들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통영을 고용촉진지구로 선정하겠다는데, 금속노조와 경남지부 차원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2009년 평택 고용촉진지구 선정 이후 운영 사례에서 보듯이 돈은 풀리는데 정작 당사자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야 인력조정을 둘러싼 힘 겨루기를 해야겠지만, 상급단체 차원에서는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저성장의 고통을 모두 전담하는 일은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기업 차원의 인력조정을 최대한 줄이면서 고용유지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려면 고용촉진지구 선정과 운영에서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함께 살자’를 지자체 기본 정책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구조조정이 전자, 조선업종을 중심으로 나타나겠지만 그렇다고 자동차 업종은 안정적이라는 전제는 아니다. 자동차 산업의 위기 역시 현실적이다. 다만, 현대차와 기아차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에 있을 뿐이다. 자본 진영은 불안한 현실을 극대화하면서 현장을 압박할 것이다. 한국지엠에서는 J400 문제 등 물량 문제가 현실로 등장했다. 현실에서 자본이 노동을 공격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노동이 산업과 지역 차원에서 ‘함께 사는 구체적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 기업의 상태에 따라서 그에 속한 노동의 안정성 여부가 결정되고 있는 현실을 산업과 지역 차원의 안정체제를 도입하여 함께 사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 현대자동차에서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범실시 중이다. 올 3월 현대차와 기아차에서 주간연속2교대제를 실시하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직서열 부품업체에 대한 대책들을 마련하느라 곳곳에서 분주하다. 이렇게 저렇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겠지만 직서열 업체들을 중심으로 부품업체들도 주간연속2교대제로 전환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때, 부품업체가 모든 부담을 전담하고 이것을 혹시라도 노동자들에게 일부 혹은 전부를 전가하는 일을 막아내면서 산업 차원에서 ‘함께 살자’는 국면을 형성하는 과제가 있다. 부품업체에 대한 지원책과 부품업체 노동자들에게 지원책, 함께 사는 방법을 금속노조와 각 지역지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마련하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하면 노동자들은 1조의 경우 오후 4시쯤이면 퇴근한다. 2조의 경우에는 새벽 2시경이면 퇴근할 수 있다. 완성차의 경우 물량보전으로 임금을 보전한다. 부품업체에서도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남는 시간을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함께 사는 방식을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여가와 문화를 노동자 개인들이 소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지역 차원에서 노동자들이 함께 사는 지역 문화를 형성하는 일은 금속노조와 지역지부들의 현실적 고민이 되어야 한다.

 

결국 프레임 싸움이다

 

저성장 구조 속에서 세계 경제의 침체는 지속될 것이다. 계급적 속성상 박근혜 정부 역시 자본을 살리기 위해서 노동과 국민에게 고통을 돌렸던 방식은 큰 틀에서 유지할 것이다. 다만, 성장을 주로 했던 담론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담론에 어느 정도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렇지만 유연성과 효율성, 그리고 생산성의 담론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반대 급부를 챙기겠다는 발상을 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거부한다면 노동진영에게는 차라리 낫겠지만)

자본의 프레임과 다른 노동의 프레임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받는 일이 매우 중요해졌다. 자본을 위해 노동을, 돈을 위해 사람을 희생해왔던 신자유주의식 프레임을 노동과 사람을 위해 자본과 돈(금융)이 고통을 부담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생산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면서 대전환을 이끌어내느냐는 전적으로 노동의 몫이다. 그런 몫을 기꺼이 감당하면서 노동의 새시대를 만들어가는데 노동진영 내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