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거들의 위기, 멀고먼 연대성
금속노조연구원 |
2009.02.27 00:00
너거들의 위기, 멀고먼 연대성
김승호 정책연구원 자문위원장
노동(조합)운동이 위기에 빠졌다는 말이 언제부터 들리기 시작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위기라 한다. 사실 개념없는 저들의 위기가 더 커보이는데, 우리의 길은 또 잘 보이지 않는다. 해서 더 답답하다.
위기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다. 외부에서 오는 위기, 내부에서 오는 위기, 그리고 너거들의 위기. 이들의 종류에 따라 극복방법도 달라진다. 위기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을 경우 내부자의 책임은 일단 면제된다. 위기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을 경우 내부자의 책임을 일단 묻게 되고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과 자아비판 속에서 해결방안을 찾게 된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이 딱히 외부다, 내부다를 가리기 힘든 경우가 많아 위기 극복방안은 내부와 외부를 모두 고려해 만들어야 하기 십상이다. 현재 진행중인 경제위기는 우선 세계경제의 침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당연히 이 범주에서 제외되는 인물들이 있다-명박만수로 대표되는 무지의 화신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억울하게도 그로 인한 후과에 대해 책임을 면치 못하는 일도 있다. 경제위기로 인한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정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결책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해결대안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노동조합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투쟁으로 돌파해야 하고 투쟁으로 돌파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은 달라서, 단순히 이상과 현실의 이분법이 아니라 이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처지와 입장에 따라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절박함이 달라지기 때문에 원칙과 현실의 괴리는 커지게 된다. 위기에 처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지가 그러하다. 정규직은 약간의 ‘양보’를 통해 고용유지의 가능성을 보는 반면(사실 그 이면에는 비정규직의 정리를 통한 고용유지의 가능성이 더 크게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은 해고의 가능성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정규직의 더 많은 양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물론 노동자의 양보가 아니라 자본의 더 많은 양보와 고통분담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훨씬 크다. 그리고 원칙의 이름으로 들어보면 참 아름답고 훌륭하다. 그러나, 나의 계급성이 부족한가? 특히 계급의 이름으로 주장되는 그 목소리는 클수록 공허하다.
일정하게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연대에서 가장 좋은 본보기는 노동자연대라고 한다. 특히 임금노동에서 비롯되는 이해관계의 동등함은 임금노동자를 투쟁에 결집시킨다. 여기서 노동자연대가 이념에 의거하면 그것은 포괄적이고 보편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동자연대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는 노동자 내부의 계층화와 다양성의 증가 때문이다. 실제로는 집단결속의 논리가 노동자 연대의 경험적 현실을 지배했다는 것인데, 연대는 자기들끼리 결탁가능한 좁은 범위의 집단으로만 국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숙련 노동자에 대한 숙련 노동자의 대응,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남성 노동자 집단, 같은 기업의 다른 공장 혹은 같은 산업의 다른 기업에 대한 공장 또는 기업의 노동자 집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본토 노동자 집단, 사무직에 대한 생산직 노동자 집단, 비조직 노동자에 대한 조직 노동자 집단, 실업자에 대한 취업 노동자 집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 집단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연대의 본질은 (노동자)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위해 조건없이 양보하는 것이다. 이런 예가 있다.
“삼화산업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제품을 창고에 입출고하는 크레인 작업이 주종이다. 포스코는 크레인을 유인작업에서 무인화로 돌리는 자동화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2006년 상반기에만 삼화산업에서 구조조정된 인원이 36명이라고 한다. 포스코가 무인화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특휴와 연월차를 월 3일 쓰는 조건 등을 포함해 6천여만원을 부담하고 회사측이 7천만원을 부담하는 형태로 이들 36명의 고용을 유지시키고 있다. 계약해지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비조합원들인데도, 조합원들이 고통분담하는 것에 대해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인화 작업이 거의 끝난 상태에서 포스코가 하반기 말에 정리(계약해지) 하겠다고 통보한 인원이 69명이어서 간부들이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면접에 참가했던 간부들 다수가 4조 3교대를 하면 이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렇게 할 경우 1인당 월 평균 50만원이 삭감되는 결과를 가져와 솔직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화산업지회는 금속노조의 그 어떤 지회보다도 장기적이고 강고한 투쟁을 해왔던 조직이다. 필자가 20여년의 조합활동 경험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평가하는 모범적인 조직이다. 삼화산업지회의 양보가 비계급적인가? 포스코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목표를 잃어버렸는가? 경제위기로 이미 실질임금이 많이 삭감되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가진것의 일부를 내놓는 양보는 생존을 위한 요구보다 크지 않다. 지금은 오히려 계급적 투쟁과 자본의 양보를 전제로 한 노동자의 고통분담이라는 화려하고도 원칙적인 주장뒤에 정규직의 이기주의가 숨어있지 않은가 살펴볼 일이다.
자본의 양보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내것을 지키면서 저들의 양보를 얻어낼 만한 투쟁에 품앗이를 하는 것도 더없이 훌륭한 연대이다. 현실과 가능성의 문제를 더 파고들어보자. 싸울 수 있는가? 가진 것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아무리 계급과 원칙, 연대의 복원을 이야기하더라도 공허하다. 자본의 양보를 이야기하기 전에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양보할 것인가 우리 내부의 상식적인 연대성부터 복원하자. 그래야 계급이라는 이름밑에 숨어 자본의 양보를 핑계로 너거들의 위기를 부르짖지 않게 된다.
김승호 정책연구원 자문위원장
노동(조합)운동이 위기에 빠졌다는 말이 언제부터 들리기 시작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위기라 한다. 사실 개념없는 저들의 위기가 더 커보이는데, 우리의 길은 또 잘 보이지 않는다. 해서 더 답답하다.
위기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다. 외부에서 오는 위기, 내부에서 오는 위기, 그리고 너거들의 위기. 이들의 종류에 따라 극복방법도 달라진다. 위기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을 경우 내부자의 책임은 일단 면제된다. 위기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을 경우 내부자의 책임을 일단 묻게 되고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과 자아비판 속에서 해결방안을 찾게 된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이 딱히 외부다, 내부다를 가리기 힘든 경우가 많아 위기 극복방안은 내부와 외부를 모두 고려해 만들어야 하기 십상이다. 현재 진행중인 경제위기는 우선 세계경제의 침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당연히 이 범주에서 제외되는 인물들이 있다-명박만수로 대표되는 무지의 화신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억울하게도 그로 인한 후과에 대해 책임을 면치 못하는 일도 있다. 경제위기로 인한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정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결책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해결대안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노동조합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투쟁으로 돌파해야 하고 투쟁으로 돌파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은 달라서, 단순히 이상과 현실의 이분법이 아니라 이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처지와 입장에 따라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절박함이 달라지기 때문에 원칙과 현실의 괴리는 커지게 된다. 위기에 처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지가 그러하다. 정규직은 약간의 ‘양보’를 통해 고용유지의 가능성을 보는 반면(사실 그 이면에는 비정규직의 정리를 통한 고용유지의 가능성이 더 크게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은 해고의 가능성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정규직의 더 많은 양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물론 노동자의 양보가 아니라 자본의 더 많은 양보와 고통분담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훨씬 크다. 그리고 원칙의 이름으로 들어보면 참 아름답고 훌륭하다. 그러나, 나의 계급성이 부족한가? 특히 계급의 이름으로 주장되는 그 목소리는 클수록 공허하다.
일정하게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연대에서 가장 좋은 본보기는 노동자연대라고 한다. 특히 임금노동에서 비롯되는 이해관계의 동등함은 임금노동자를 투쟁에 결집시킨다. 여기서 노동자연대가 이념에 의거하면 그것은 포괄적이고 보편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동자연대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는 노동자 내부의 계층화와 다양성의 증가 때문이다. 실제로는 집단결속의 논리가 노동자 연대의 경험적 현실을 지배했다는 것인데, 연대는 자기들끼리 결탁가능한 좁은 범위의 집단으로만 국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숙련 노동자에 대한 숙련 노동자의 대응,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남성 노동자 집단, 같은 기업의 다른 공장 혹은 같은 산업의 다른 기업에 대한 공장 또는 기업의 노동자 집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본토 노동자 집단, 사무직에 대한 생산직 노동자 집단, 비조직 노동자에 대한 조직 노동자 집단, 실업자에 대한 취업 노동자 집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 집단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연대의 본질은 (노동자)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위해 조건없이 양보하는 것이다. 이런 예가 있다.
“삼화산업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제품을 창고에 입출고하는 크레인 작업이 주종이다. 포스코는 크레인을 유인작업에서 무인화로 돌리는 자동화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2006년 상반기에만 삼화산업에서 구조조정된 인원이 36명이라고 한다. 포스코가 무인화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특휴와 연월차를 월 3일 쓰는 조건 등을 포함해 6천여만원을 부담하고 회사측이 7천만원을 부담하는 형태로 이들 36명의 고용을 유지시키고 있다. 계약해지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비조합원들인데도, 조합원들이 고통분담하는 것에 대해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인화 작업이 거의 끝난 상태에서 포스코가 하반기 말에 정리(계약해지) 하겠다고 통보한 인원이 69명이어서 간부들이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면접에 참가했던 간부들 다수가 4조 3교대를 하면 이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렇게 할 경우 1인당 월 평균 50만원이 삭감되는 결과를 가져와 솔직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화산업지회는 금속노조의 그 어떤 지회보다도 장기적이고 강고한 투쟁을 해왔던 조직이다. 필자가 20여년의 조합활동 경험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평가하는 모범적인 조직이다. 삼화산업지회의 양보가 비계급적인가? 포스코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목표를 잃어버렸는가? 경제위기로 이미 실질임금이 많이 삭감되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가진것의 일부를 내놓는 양보는 생존을 위한 요구보다 크지 않다. 지금은 오히려 계급적 투쟁과 자본의 양보를 전제로 한 노동자의 고통분담이라는 화려하고도 원칙적인 주장뒤에 정규직의 이기주의가 숨어있지 않은가 살펴볼 일이다.
자본의 양보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내것을 지키면서 저들의 양보를 얻어낼 만한 투쟁에 품앗이를 하는 것도 더없이 훌륭한 연대이다. 현실과 가능성의 문제를 더 파고들어보자. 싸울 수 있는가? 가진 것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아무리 계급과 원칙, 연대의 복원을 이야기하더라도 공허하다. 자본의 양보를 이야기하기 전에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양보할 것인가 우리 내부의 상식적인 연대성부터 복원하자. 그래야 계급이라는 이름밑에 숨어 자본의 양보를 핑계로 너거들의 위기를 부르짖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