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동향]본격화되는 국내 부동산 거품 붕괴와 그 시사점
본격화되는 국내 부동산거품 붕괴와 그 시사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미국과 유럽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거품 붕괴의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다. 2006년 고점에 올랐던 국내 부동산 거품은 그간 저금리와 20차례에 가까운 부동산 규제철폐를 통한 이명박 정부의 집값하락 육탄방어 정책으로 붕괴가 지연돼 왔으나, 점차 그 하락폭이 빨라지고 있다.
[그림 1] 거품꺼진 美, 안꺼진 한국. 美 주요도시 주택가격(좌)과 국내 수도권 주택가격(우) 추이 / 자료: 국민은행
[그림 2] 빨라지는 집값 하락 속도. 수도권 3.3㎥당 평균 매매가 변동현황(2008년 9월~현재) / 자료: 아시아경제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1차적으로 건설경기 침체와 이에 따른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화, 이에 따른 저축은행과 중소건설사들의 연쇄도산 과정이 지속돼 왔지만, 가계 대출, 특히 부동산 대출의 전반적 부실에 따른 가계 파산과 시중은행 대출 부실화라는 부동산 거품 붕괴의 핵심적 현상은 이제 본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언론들이 연일 부동산 거품 붕괴 상황, 하우스푸어들의 문제, 가계부채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 그 징후라 할 수 있겠다.
이번 달에는 향후 국내 경기에 핵심적 영향을 미칠 부동산 거품 붕괴가 구체적으로 어떤 양태를 보일지, 그리고 그 시사점이 뭔지 살펴보겠다.
문제는 ‘대출’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즉 집값이 하락하면서 벌어지는 문제는 ‘대출’ 때문에 발생한다. 대출이 없는 집의 가격은 떨어져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집값이 하락하면 일정 정도의 자산 손실을 보게 되지만, 그것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의 주택 구입자들은 상당 수준의 대출을 끼고 집을 산다. 그리고 이 대출이 집값 하락 때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자만 내는 주택대출 76.8%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은 5년 가량의 만기 일시상환식이나 4~5년의 거치기간(이자만 내는 기간)을 둔 대출이 많다. 정부 통계로도 현재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307조원 중 이자만 내는 대출이 77%인 235조원이다. 이는 대출자들이 대부분이 5~10년 내 집을 팔아서 차익을 실현하고 상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상황은 변했다. 집값은 오히려 하락했고, 팔려고 내놔도 안팔리고 있다. 집값이 상승해 그 차익으로 갚아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대출이 상환이 불가능한 ‘빚더미’가 돼 버린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말부터 내년까지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46%가 대출 만기가 도래하거나 거치기간이 종료된다. 집이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출들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은 말할 것도 없고, 거치기간이 끝나는 대출도 마찬가지다. 거치기간이 끝나면 월 납입액이 급증하기 때문에 부담이 커지고, 연체가 늘어나게 된다.
KB금융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자만 내던 가구가 원금 상환에 들어가면 소득 중 원리금 상환비율이 평균 49.1%에 달했고,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2009~2011년 시기의 거치식 대출 연체 중 거의 절반인 45.6%가 원금 상환 개시 10개월 이내에 발생했다. 거치 기간이 끝나고 원금 상환이 개시되면 소득의 절반을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하고, 그나마 대출자 절반은 채 1년도 못 버티고 연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대출 갈아타기 가능한가?
이러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대출 갈아타기’ 밖에 없다. 5~10년에 불과한 만기를 2~30년으로 늘려 원리금을 장기 상환하는 대출로 갈아타는 것이다. 대부분의 주택대출자들이 이 과정을 거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문제는 대출금 전액을 갈아타기가 어려워지고, 원금의 일부를 상환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집값이 하락하면 담보가치도 하락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6억원짜리 집을, 은행에서 LTV(담보인정비율) 60%에 맞춰 3억6천만원 빌리고, 자기 돈 2억4천만원으로 구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아파트의 가격이 5억원으로 떨어지면, 대출 가능액은 3억원으로 줄어든다(5억*LTV60%=3억)이 된다. 대출을 갈아타려 가면 은행은 이를 근거로 “3억원만 대출해줄 수 있고, 6천만원은 상환하라”고 요구한다. 집값이 추가 하락할 것이란 우려가 크면 LTV를 60%가 아니라 50%로 낮춰 2억5천만원만 대출해줄 수 있고 1억1천만원을 상환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실제 은행 창구에서는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이고, 대출상담자 10명 중 1명이 갈아탈 수 있을까 말까라고 한다.
분양 시기 건설사 보증을 받아 이뤄진 아파트 집단대출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언론에 나온 사례를 한 번 보자. 50대 오모씨는 4년전 수도권 아파트를 7억원에 분양받았고, 집단대출을 통해 4억원을 빌렸다. 그의 소득은 연 4,500만원이다. DTI 기준으로 하면 대출 한도가 2억원 정도인데, 건설사 보증을 받은 집단대출로 그 두 배나 대출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거치기간이 끝나 대출을 갈아타야 하는데, 신규 대출에는 DTI가 적용돼 2억원밖에 대출을 받지 못하고, 나머지 2억원은 일시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자기 돈이 모자라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이 한꺼번에 6천만원, 1억1천만원, 2억원을 낼 능력이 있을 리 없다. 이런 상황에 몰리면 길은 세 가지다. 집값을 크게 낮춰서 팔던가, 2금융권에서 돈을 더 빌리던가, 이도저도 안되면 연체-경매로 가게 된다.
2금융권에서 돈을 더 빌리게 되면 기존의 두 배 가까운 이자를 내야 한다. 앞의 집단대출의 예에서 4억원 중 2억원은 1금융권에서 5%, 2억원은 2금융권에서 10%의 이자를 물게 될 것이다. 대부분은 원리금 상환으로 허리가 휘게 되고, 결국 집을 내놓거나, 연체로 압류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집값 추가급락 => 대출 부실 가속화 => 은행 부실화 => 재정 악화
집값을 크게 낮춰 팔게 되면 이후에는 그 가격이 주변 집값 시세가 된다. 연체도 마찬가지다. 연체를 3개월 이상 하면 집이 압류되고, 경매로 넘어간다. 경매에서 여러차례 유찰 후 크게 떨어진 가격에 낙찰되면, 이 가격도 시세가 된다. 급매물과 경매물량이 추가 집값하락을 부르는 것이다. 추가 집값하락은 주택의 담보가치를 더욱 낮추게 되고, 대출 부실은 더 가속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대출 부실은 은행 부실로 파급된다. 현재 비상등이 켜진 아파트 집단대출을 보자. 4월말 현재 국내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은 102.4조원으로 가계대출(451.1조원)의 22.7%, 주택담보대출(305.6조원)의 33.5% 수준이다. 국내 주요 은행들이 보유한 주택담보대출 중 3분의 1이 아파트 집단대출이라는 얘기다. 이 대출들은 집값이 고점을 통과한 2007년 이후의 것들로, 현재 해당 아파트의 시세 대부분이 분양가를 밑돌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분양 때 집단대출을 받은 아파트단지 중 거의 대부분인 90.8%가 시세에 비해 분양가가 더 비싸고, 분양가가 시세 대비 30% 이상 높은 단지가 무려 58.7%에 달하고 있다.
[그림3] 자료 : 매일 경제
집값이 급락하면서 분양가가 시세를 크게 밑돌고, 이에 따라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 분양 계약자들은 계약을 취소하거나 분양가와 시세의 차액을 보전받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간 건설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오던 여러 거짓말들(학교, 문화시설, 주변에 들어선다던 업무타운, 지하철, 생태연못 등), 그리고 부실공사의 증거들을 취합해 분양 무효 소송을 걸고 있다. 그리고 건설사와 제휴해 집단대출을 해준 은행에 대해서는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해 소송 기간 동안 중도급, 잔금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분쟁 사업장이 지난 4월까지 총 94개이고, 소송사업장은 28개, 소송가액은 5,000억원에 이른다.
그 결과 은행들이 보유한 집단대출의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다.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4월말 현재 가계 집단대출의 연체율이 1.56%를 기록했다. 이는 집단대출 이외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 0.4%에 비해 무려 4배나 높은 연체율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12월 0.95%를 기록한 이래 최고치다.
[그림4] 자료 : 한겨레
집값 하락에 따른 경매가격 하락도 은행의 손실을 부른다. 현재 인천의 영종, 청라지역의 경매 낙찰가율은 60% 아래로 떨어졌고, 송도나 용인, 파주, 일산 등의 낙찰가율은 70%대다. 은행들이 LTV 60%를 기준으로 대출을 해줬다면 영종, 청라는 이미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고, 송도, 용인, 파주 등은 점차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집값 하락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고, 집값 하락에 따른 은행 부실은 점점 은행의 목을 조르게 될 것이다.
은행부실 => 공적자금 투입 => 정부재정 악화
경제위기 =>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도
은행이 부실화되면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외환위기 때처럼 또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들어가야 하고, 정부 재정이 악화된다. 그리고 은행이 부실화와 재정 악화는 외국투기자본들이 이탈을 초래, 증시가 폭락하고 환율이 뛰며, 채권 금리 급등으로 그리스나 스페인처럼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단계로 가게 될 것이다.
대출 갈아타도 평생 빚에 짓눌려 살아야..
장기 경기침체 올 것
은행에 공적자금을 넣으면서, 정부는 대출자들이 최대한 ‘갈아타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자를 경감해 부담을 줄여주려 할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대출 갈아타기에 성공한다 해도 여전히 남는다. 한꺼번에 갚아야 할 거액이 이제는 2~30년에 걸쳐 평생 갚아야 하는 빚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수많은 가계들이 이 빚을 갚는 동안, 부동산 경기 활성화나 국내 소비활력 증대 같은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한꺼번에 파산하건, 수십년간 부채 상환에 시달리건, 국내 경제 입장에서는 소위 ‘중산층’이라는 계층이 사라지는 결과, 극심한 소비위축이 장기간 계속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패러다임 붕괴 국면, 큰 혼란 속 생존적 요구 강화해야
한국 경제에 있어 부동산은 내수의 모든 것이었다.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후 계속된 부동산 거품이 이 나라의 중산층을 만들었고, <취직하고 돈 벌고 대출받아 집을 샀더니, 집값이 올라 부자가 됐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일반인이 부자가 되는 공식이었다.
그러나 이 부자 공식은 <취직하고 돈 벌고 대출받아 집을 샀더니, 집값이 떨어져 망했다>는 재앙의 공식으로 변화되었다. 이제 더 이상 집값은 오르지 않을 것이며, 부동산 거품 붕괴의 영향은 최소한 10년 가까이 지속될 것이다. 여기에 인구 감소 등의 구조적 요인이 겹치게 되면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패러다임이 붕괴하면 큰 혼란이 온다. 집을 경매당하고 내쫓긴 이들이 노숙자화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극심한 내수 위축이 올 수도 있다. 금속 노동자들이라고 대량해고 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편으로 패러다임 붕괴는 새로운 질서를 위한 과도기다. 부동산 신화가 붕괴되면, 주택은 이제 투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거주를 위한 것으로, 소유되는 것이 아닌 임대되는 것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얻게 된다. ‘1가구 1주택’ 같은 어정쩡한 요구들은 사라질 것이며, ‘주택 소유 폐지와 전면적 임대제 도입’, ‘토지-주택 공개념’ 등 근본적이고 급진적 요구들이 설득력을 얻어가게 될 것이다.
위기가 큰 만큼 정권과 자본의 위기전가 공세도 클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민생 역시 이미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민중의 분노가 높아 새누리당마저 좌클릭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벌어진 택시 파업, 화물연대 파업, 건설노조 파업에서 정권과 자본의 상투적 공세는 거의 먹혀들지 않고 있다. 그만큼 민생이 어려운 것이고, 민중의 분노가 높아 투쟁하는 대오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부동산 거품 붕괴의 고통까지 전가되면 민중의 분노가 폭발할 가능성까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정권과 자본의 공세가 오히려 민중의 분노를 격발시킬 수 있는 국면이 오고 있음을 인지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이를 추동해나가야 한다. 따라서 금속 노동자들은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 방어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공세적으로 ‘생존’의 요구를 내걸며 이들을 압박하고, 민중과 함께 민생 투쟁을 전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