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슈]경제위기, 노조의 새로운 패러다임
경제위기, 노조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종탁(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성장의 시대가 끝났다는 인식
이제 누구도 금융화와 세계화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의 위기,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의 위기는 너무 적은 생산, 자연 재앙에 따른 생산의 부족 때문에 생기는 위기가 아니다.(최근 자연재해로 인해 곡물생산도 위기에 빠지긴 했지만) 소비를 능가하는 과잉생산체제는 전지구적인 현상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긴다. 게다가 너무나도 많은 돈이 지구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더 많은 이익을 남겨야 하는 금융의 논리는 리스크까지 수익화하려는 위험한 경쟁을 벌이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들이 만든 신용평가와 수익성 지표들은 금융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의 모든 부분들은 양극화한다. 시장의 경쟁에서 위축되거나 탈락한 부분들은 호구지책을 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하고, 시장을 지배하면서 모든 리스크를 타인에게 전가할 수 있는 부분들은 주체할 수 없는 수익을 올린다. 자본과 시장이 빚어낸 현실의 위기의 국면에서 소수만 살아남고 다수는 빈곤을 향해 추락한다.
성장의 시대에 노동조합은 개별 자본이든 산업적 차원에서건 성장의 열매를 공유하면서 분배의 몫을 더욱 확장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노동조합들이 ‘자본주의 폐절’에 나선 적이 없기 때문에 노동조합들은 주로 임금인상과 노동자 권리 강화를 통해 자신의 힘과 영역을 확장했다. 자본의 성장에 기대어 노동자들의 소득을 확장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주된 활동 방식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80년대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시대에도 그것을 실현하는 주된 방식은 임금인상이었다. 그래서 잘 나가가는 대기업 중심의 노동조합 체제가 구축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제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 국제경제기구들은 때만 되면 성장률을 하향조정하기 바쁘고,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주요 국가와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낮추기 급급하다. 중국의 성장률조차 둔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GDP 성장률 정체는 너무나 당연하다. 2012년 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0.4%, 전년대비 2.4%에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성장률은 마이너스 혹은 제로(0)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임금인상을 중심으로 한 패러다임은 한계에 봉착한다. 성장을 해야 임금에 대한 분배도 가능할텐데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본은 더 많은 성장을 위해 ‘협력’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의 자본이동과 철수가 대세를 이룬다. 곳곳에서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비정규 채용이 다시 확대되면서 정규직들의 고용불안은 일상의 문제가 되고 있다.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이제 ‘성장의 시대’가 끝났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성장을 통한 분배의 체제는 극단적 양극화 속에서 매우 제한적인 일부 기업과 재벌에서만 가능한 방식이라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 국면에서 성장의 공유를 바탕으로 임금과 고용, 권리를 확장했던 노동조합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노동조합은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일면적 노동운동에서 총체적 노동운동으로
노동운동 혹은 노동조합들은 고용된 상태에서 자본의 성장과 함께 자기 소득을 위해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노동을 선택하면서 ‘한 쪽 측면’에 편중된 모습을 보였다. 소득과 생활의 두 차원 중에서 생산의 영역에서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방법, 노동조합의 임단협을 통해서 임금을 ‘올리는 방법’과 시간외 노동과 주말 노동 등을 통해서 추가적으로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생활적 측면을 도외시한 채 생산 위주의 ‘일면적 노동운동/노동자’를 형성하고 고착화하였다.
노동자들이 더 많이 일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력한 동력이 핵심이다. 그 의무감이 초과노동을 감내하고 더 많은 노동을 선택하는 이유가 된다. 엄청난 가계 부채의 요인이 되는 주택 문제와 중간층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사교육비. 국민연금으로는 절대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고 국민건강보험으로는 건강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인식. 그래서 한편으로는 평생 대출을 갚아야 하고, 사보험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노동-생활체제를 극복하려면 먹고 살면서 아이들 교육시키고 노후를 예비할 수 있는 삶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그동안의 성과로 상당한 기업 복지를 향유하지만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노동조합들은 ‘함께 살자’는 구호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실현시킬 사회 구조/체제를 만드는 일에 상당한 공력을 기울여야 한다.
생활비 절반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가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에, 민주통합당에서는 순환출자 금지에, 안철수 등은 기업집단법 제정을 각각 내세우면서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를 노동자 삶과 연계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가격/요금 인하’이다. 에너지 재벌들이 유류가 농간에 맞서서 ‘기름값 인하’를 실현하고, 사학재단이 지배하는 대학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이고, 너도 나도 들고 다니는 핸드폰 요금을 획기적으로 내리는 조치들을 이끌어내야 한다. 우리 회사 매출이 올라야 내 임금과 고용이 유지될 수 있으리라는 헛된 생각을 버리고 노동자 민중의 삶을 착취해서 기업 매출과 수익을 올리는 자본과 재벌의 시도들을 차단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운동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보수 언론과 전문가들조차도 재벌과 자본의 탐욕과 부도덕함을 비판하고 있다. 성역에 가까웠던 금융자본의 ‘과잉 이자 수익’을 정부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와 감사원이 지적하고 나서는 것이 작금이 양상이다. 이런 양상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수익성을 위한 경영으로 막대한 이윤을 축적한 자본의 몫을 줄이고 삶의 비용을 줄이는 과감한 요구를 내걸고 실천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연대가 있는 삶
대선 후보들의 공약들이 매우 다양하고 과감해졌다. 어떤 후보는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것을 ‘소비적 발상’으로 접근하면 내가 저녁이 있는 삶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어떤 누군가에게 야간노동을 요구해야 하는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 유통재벌들이 대형마트 운영시간을 늘리면서 ‘심야 쇼핑을 하는 사람들’을 언급하는 일이나 서울의 지하철 공사들이 새벽 1시까지 운행을 늘리면서 ‘밤늦은 귀가객들에 대한 배려’ 운운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행복해지자고 다른 노동자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노동조합은 ‘연대가 있는 삶’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서는 금속노조와 관련한 두 가지 문제만 언급하겠다. 자동차 노조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보자. 자동차 노조들이 이러한 제도 개선을 모색하는 배경에는 현재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노동강도를 개선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덧붙여 불법파견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실업 상태에 있는 청년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를 매우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주간연속2교대제가 물량과 임금의 교환 속에서 정규직 완성차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지만 생산성 향상으로 고용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피해야 한다.
또 하나는 정년연장이다. 완성차를 포함하여 자동차 업종 주요 대기업들에서는 정년이 대부분 60세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일부에서는 정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먹고 살자니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지만 60세를 넘어도 일 할 수 있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그러한 근거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더 많은 노동으로 삶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인식은 세대간 고용 불균형과 기업 규모에 따른 고용 기간의 차등화를 심화한다. 노동하는 생애를 적정하게 유지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노동생애를 늘리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청년층과 일자리를 나누면서 삶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