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동향]미국의 3차 양적완화와 이후 전망
규모는 줄이고, 기한 없애
이번 3차 양적완화의 특징은 매입 규모가 이전보다 줄었다는 점, 그리고 기한을 없애 사실상 무기한 매입하기로 한 점이다.
1차 양적완화는 2009년 1월부터 2010년 3월말까지 15개월간 총 1.75조 달러 규모로 시행됐고, 2차는 2010년 11월부터 2011년 6월까지 8개월간 6,000억불 규모로 시행됐다. 월 매입 규모는 대략 1차 때는 약 1,100억불, 2차 때는 약 900억불 규모였다. 따라서 월 400억불 규모인 3차 양적완화는 매입 규모를 크게 줄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미국 경제가 현재 느리지만 그래도 플러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한은 ‘고용이 호전되거나 물가가 급등하기 전까지’로 명시해 사실상 무기한 매입할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 시기에는 양적완화가 시작되면 금융시장에서 과열이 일어나고, 돈풀기가 끝나면 얼마 안가 증시가 급락하고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됐었다. 이에 연준은 기한을 잡지 않음으로써 과열과 급락을 방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고용-성장 도움 안되고, 투기자본만 배불려
미 연준은 3차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다시 돈을 찍어 푸는 것이 ‘고용’ 때문임을 강조했다. “지난 금융위기 때 사라진 8백만개의 일자리 가운데 절반도 회복하지 못했고, 현재 8.1%의 실업률은 올해 초부터 개선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고용과 성장에 도움을 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으로 시중의 채권을 매입하면, 그 돈은 JP모건이나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같은 주요 대형은행들에 공급된다. 양적완화가 고용과 성장에 도움이 되려면, 이들이 받은 돈으로 가계나 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이들이 투자를 하고, 집을 사는 등 소비를 하면 고용이 늘어나고 소비가 촉진되는 선순환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거품이 붕괴되고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가계와 기업들은 부채를 줄이고 자산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며, 그렇다고 은행들이 금융위기를 부른 ‘묻지마 대출’을 다시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찍어 은행에 공급해도 그 돈이 생산적인 부분을 흘러들어가 고용과 성장을 촉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 1~2차 양적완화로 풀린 2조3500억 달러 중 절반 가량인 1조 달러 가량이 다시 연준에 재예치돼 낮잠을 자고 있다. 문제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투자할 곳이 없는 것이다.
생산적인 분야로 들어가지 못한 돈은 결국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증시와 상품시장은 급등하게 되고, 자산 거품이 늘어나게 된다. 투기자본들의 배만 불리게 되는 것이다. 주가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가 소비가 늘린다지만, 이는 미미할 뿐이다.
이렇게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간 돈은 증시를 끌어올림과 동시에 상품시장으로 흘러들어 상품의 가격도 끌어올린다.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의 가격을 올리고, 유가와 원자재 가격을 올리며, 곡물 가격을 끌어올린다. 따라서 당연히 이들을 기초로 만들어지는 제품과 서비스, 식료품의 가격도 급등하게 된다. 그렇게, 양적완화는 물가를 끌어올리며, 전세계 민중에게 물가 폭탄을 안기게 된다.
전세계 민중에게 물가 폭탄 떨어져
한편으로, 3차 양적완화 조치 발표 이후 금융시장은 1~2차 때와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2차 때는 연준이 발표한 직후부터 금융시장이 급등세를 보였으나, 이번 발표 이후에는 상승세를 보이지 않고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양적완화의 금융시장 부양 효과가 사라진 게 아니냐”는 투기자본들의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아래 그림 네 가지는 각각 美 주가, 곡물가, 금값, 유가 추이를 나타내는 그림이다. 각각의 그림에서 ‘화살표 ①’은 2차 양적완화 발표 시점(2010년 8월말), ‘화살표 ②’는 이번 3차 양적완화 발표 시점(2012년 9월13일)이다. 그림을 보면 2차 양적완화 직전에는 추세가 하락세이거나 상승세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었고, 3차 양적완화 직전에는 추세가 급등세를 보이거나 급등한 직후임을 볼 수 있다.
즉, 지금의 소강 상태는 양적완화가 투기를 부추기지 않고 있다기보다는 ‘발표 전에 이미 너무 많이 올라 더 이상 오르기가 힘든 상황’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투기자본들이 3차 양적완화 조치를 기대하고 미리 금융시장을 끌어올려 놓았고, 그러다보니 실제 조치가 발표되자 오히려 소위 ‘조정’을 받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금융시장은 일정 기간의 소위 ‘조정’을 거친 뒤, 양적완화로 공급되는 월 400억불과 민간 투기자금의 유입이 결부되며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며, 2차 때와 마찬가지로 전세계적인 물가 상승을 낳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2차 때와 패턴과 속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가격이 오른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투기자본 국내 유입으로 환율 하락 예상돼
양적완화로 풀린 달러가 국내로 대량 유입되면, 원달러 환율은 하락하게 된다. 국내 증시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원화로 바꿔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외환 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고, 원화 수요가 늘어 원화의 가치가 올라가고 환율은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이미 양적완화 이전 1,120원대 위에 있던 원달러 환율은 1,110원대로 내려왔고, 곧 1,100원 선이 깨지고 1,000원대로 진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방어할 가능성이 높지만, 하락 추세 자체를 꺾지는 못할 것이므로 1,000원대 환율 진입은 시간 문제라고 보여진다.
■ 시사점
1. 전세계적 물가 급등과 이에 따른 민중의 분노 표출될 것
최근 미국에 극심한 가뭄이 들면서 옥수수와 대두, 밀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취해진 이번 양적완화는 급등한 곡물가의 정상화(하락)를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
2차 양적완화 당시 떨어진 물가 폭탄은 ‘아랍의 봄’의 도화선이 됐다. 식료품 가격 급등으로 민생이 악화되고, 여기에 튀니지 노점상의 분신 사건이 터지면서 민중의 분노가 폭발했다. 폭발한 분노는 튀니지를 넘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됐고, 미국의 중동 패권의 큰 기둥이었던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하고 무슬림 형제단이 집권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최근 ‘이슬람 모독 영상’으로 인해 중동과 아시아에서 미국에 대한 분노가 끌어오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향후 벌어질 곡물가 인상이 미국의 패권에 어떤 영향을 줄 지가 주목된다.
2. 내년 국내 물가 급등 예상
원유의 전량을 수입하고, 식량자급률이 쌀 빼고 5%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전세계적 유가, 곡물가 인상의 영향을 받는 건 불보듯 명확하다. 유가 인상은 공산품 가격 대부분의 원가 인상과 휘발유-경유가 인상을 부를 것이고, 곡물가 인상은 사료값 인상을 통해 축산업 농가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양적완화로 국제 투기자금이 유입되면서 환율이 하락하면 물가 급등의 충격을 일부 완충할 수 있겠지만, 정부가 개입해 환율 하락을 최대한 저지할 것으로 보여 국민들은 물가 인상의 충격을 그대로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3. 환율 하락으로 수출 더 악화될 것
환율의 하락은 원화가치의 상승을 낳고, 수출 물가의 상승, 수입 물가의 하락을 낳아 수출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간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전 930원 수준을 기록하다 금융위기 이후 한때 1,600원 부근까지 치솟았다가, 양적완화 이전까지 1,150원 수준을 유지해왔다. 적정환율을 950원 정도로 본다면, 현재의 환율도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국내 수출 재벌들은 이런 고환율 상황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어 왔지만, 이제 그간 누려 온 환차익은 거의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물론 환율 하락의 강도는 그렇게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정부의 환율 방어 가능성이 높고, 국내 수출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엔화가치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고환율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올해 들어 수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여기에 환율 하락이 가중되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가장 상황이 나았던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산업마저 수출 감소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고, 환율 하락은 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