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금속동향 - 글로벌 환율 전쟁과 그 영향
10월 금속동향 - 글로벌 환율 전쟁과 그 영향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미국의 '위안화 절상' 파상공세
지속되는 대규모 무역적자와 경제위기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어나고 있는 재정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은 위안화 절상을 위해 중국에 대한 파상 공세를 펼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만난 두 시간의 회담에서 두시간 내내 위안화 절상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을 압박했고,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위안화 절상 문제를 서울 G20 절상회의에서 제기하겠다고 공언했다. 미 하원 세입위원회는 더욱 직접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환율보복법안을 통과시켜 하원 전체회의로 넘겼다.
경제위기 이전까지 하락세를 지속하던 달러가치는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폭등했다. 이는 국제 투기자본이 위기가 닥치자 해외 투자 자산을 대거 팔고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의 국채와 달러를 대대적으로 매입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제교역에서 통상 경제위기가 닥치면 그 나라 통화가치는 떨어져야 정상이다. 그래야 절하된 통화가치를 바탕으로 수출과 관광 등을 늘려 경제를 회복시키고 국제수지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닥쳤음에도 달러의 가치는 도리어 상승했고, 미국의 무역수지는 회복은커녕 되레 악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절반을 대중 무역적자가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레이건 시대에도 쌍둥이 적자로 몸살을 앓았다. 미국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G7과 ‘플라자 합의’를 맺어 이를 통해 엔화 대비 달러가치를 60%나 절하시켰다(일본의 입장에서는 150% 상승한 것이며, 우리나라로 치면 달러당 1,000원이던 환율이 400원이 된 꼴이다). 그 결과 미국에 수출하던 일본 기업들이 대거 미국에 현지공장을 짓고, 미국의 대일 수출이 늘어나면서 위기 타개의 전기가 마련됐다. 반면 일본은 급격한 통화가치 상승에 따른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무리한 저금리정책을 쓰다가 부동산 거품을 키워 이것이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맞게 되었다. 미국은 이를 선례로 삼아, 이번에는 중국의 위안화를 대상으로 똑같은 일을 반복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치는 무려 150%(1.5배) 절상됐다.
계속되는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여, 중국은 “중국의 대중수출은 대부분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 현지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판매하려 가져가는 것”이고, “무역적자의 원인은 미국의 소비 행태 때문이다”라며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한편으로는 2010년 6월 환율 제도를 ‘달러 페그제’에서 ‘관리변동환율제’로 변경하고 위안화 절상폭을 소폭 늘렸다. 이에 따라 제도변경 전 달러당 6.83위안 수준이었던 위안화 가치는 6.7위안까지 상승했다. 이는 3개월간 2% 정도 하락한 것으로, 미국이 원하는 수준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일본의 환시 개입.. 국제 공조의 균열
미국이 중국의 인위적 환율 방어를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는 이 때에, 그 ‘동지’인 일본이 미국의 뒤통수를 때렸다. 9월15일 1.8조엔을 퍼부어 환율 방어(엔화매도-달러매수)에 나선 것이다.
경제위기 이전인 2008년초 달러당 110엔 정도였던 엔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급격한 엔캐리거래(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다른 통화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기법) 청산과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인해 급등하기 시작, 9월14일에는 82엔대에 도달했다. 2년 반 동안 달러 대비로 무려 37.5%나 엔화가치가 상승한 것이다.
90년대 초 부동산 거품 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을 맞아 급격한 내수 침체에 시달리던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수출 호조를 통해 경제를 지탱해 왔다. 그런데 엔고가 진행되면서 수출마저 타격을 받게 되는 상황이 오자 일본 정부가 개입에 나서게 된 것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미국과 유럽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향후에도 “필요하다면 외환 시장에 추가로 개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환율전쟁 시작된다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은 지금까지 지속돼 오던 “환율은 시장에 맡겨야 하며, 인위적으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국제적 불문율’을 깬 사건이다. 미국, 유럽과 함께 선진 경제대국으로 분류되는 일본이 이렇듯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불문율을 깨버리니, 이제 다른 나라들 역시 노골적으로 환율 방어를 위해 나설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27일에는 브라질 정부가 “각국 정부들이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 경쟁적으로 자국통화 가치 절하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이미 글로벌 환율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며 “브라질도 위협을 느끼고 있는 만큼 달러 매수를 통한 헤알화 가치 절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브라질만이 아니라,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수출주도형 경제를 가진 개발도상국들 모두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929년 대공황 당시, 선진국들은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자국과 식민지에 대한 ‘블럭화’를 시도했고, 이로써 국제 교역량이 감소하고 결국 이는 공황을 더욱 악화시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2008년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세계 각국은 이러한 교훈을 살려 소위 ‘보호주의적 경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제 코가 석자가 되자,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국의 이해를 위해 소위 국제 공조를 내던져버리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DDA 협상도 좌초 위기를 맞았고, G20회의 역시 난항을 겪고 있으며, 이제는 환율에 대한 국제적 불문율까지 깨지게 된 것이다. 소위 ‘세계화’라 불리는 미국 중심의 일극 지배체제는 곳곳에서 파열되며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환율 전쟁, 무역 보복과 원화 절상 압박으로 돌아올 것
자국 통화를 절하시키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직접 외환시장에 개입해 자국 통화를 절하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국 통화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환율 전쟁이 벌어지면, 초기에는 개도국들을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자국의 통화를 절하시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개방 경제 아래에서 인위적 시장개입은 장기적 효과를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국제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게 될 위험이 있다.
결국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와 더불어, 각국은 주요 무역상대국들 중 통화가치가 저평가된 나라들에 대한 통화 절상 압력을 넣고, 그 수단으로서 무역보복을 하게 될 것이다.
노골적 환율 개입이 어려운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들도 당연히 무역보복을 통한 환율 절상 압력으로 대응할 것이다. 미 하원 세입위원회를 통과한 환율 보복법안은 비록 중국을 집중 겨냥한 것이지만, 통화가 저평가된 다른 국가들의 수입품에 대해 보복관세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통과될지는 미지수지만, 이러한 흐름은 향후 점차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그 여파에서 자유로울 것인가? 오히려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폭등하면서 국민들은 큰 고통을 받았지만, 수출 대기업들은 엄청난 수혜를 입었다.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등은 저평가된 환율을 통해 금융위기 기간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려왔다. 이는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흑자로 나타났고, 상대국에게는 적자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이 역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환율 전쟁이 강화되면, 우리나라는 중국과 더불어 1차 공격대상이 될 것이며, 강한 원화 절상 압박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위기가 오면 환율이 폭등한다. 붉은원은 각각 97년 외환위기, 2001년 IT거품붕괴, 그리고 현재의 위기
원화절상 부담은 납품업체, 노동자에게!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그간 수출 대기업들이 누렸던 고환율(저평가된 환율)에 따른 막대한 이익 증가세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며, 결국 매출과 순이익 감소로 나타날 것이다. 이에 따라 수출 대기업들은 한편으로는 환율 하락을 이유로 납품업체들에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단체협상에서 매출과 순이익 감소를 이유로 임금조건, 근로조건의 개악을 시도할 것이다. 환율이 오르면 오른대로, 하락하면 하락한대로 그 부담을 노동자 서민에게 전가하려는 사측의 압박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환율 상승시기 납품단가를 제대로 올려받지 못한 대부분의 중소납품업체들은 이제 역으로 다시 납품단가 인하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며, 노동자들은 단체협상 자리에서 이전까지 듣던 “세계 경제위기가 어쩌고 저쩌고...”라는 말대신 “글로벌 환율전쟁, 무역보복으로 회사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감소한 매출과 급감한 순이익이 나타난 장부를 앞세운 새로운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환율 하락이 가져올 순이익 감소에 속지 말아야 한다. 환차익에는 생산 원가가 없기 때문에 환율 급등으로 나타난 매출 증가액은 모조리 순이익이 된다. 따라서 환율이 급등하면 순이익은 크게 늘어나며, 환율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크게 줄어든다. 원화 절상(환율 하락)이 이뤄진다면 내년 수출 대기업들의 전년 대비 순이익은 급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소는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지, 악화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