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금속동향] 장기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드는 미국경제
장기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드는 미국 경제
“부채는 줄이면서 경기는 살려라?”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증시 폭락, 요동치는 금융시장
지난 달(8월) 초, 세계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금융 투기세력들은 주식을 앞다퉈 투매하고, 안전자산인 미 국채와 금, 엔화, 스위스프랑 등으로 몰려갔다.
[그림 1] 미 500대 기업의 주가지수인 S&P500지수, 8월초 무려 17% 하락했다.
자료: Calculatedriskblog.com
[그림 2] 미 국채 10년물은 초강세를 보여, 수익률이 3% 수준에서 2%초반 수준까지 폭락했다.
자료: Calculatedriskblog.com
[그림 3] 금값 추이. 급등세를 보이며 온스당 1,900불을 찍었다. / 자료: Calculatedriskblog.com
[그림 4] 스위스프랑의 가치. 최근 초강세를 보여 달러당 0.7프랑까지 내려갔다. / 자료: 한국은행
[그림 5] 엔화 가치. 일본 경제가 나쁜데도 안전자산으로 인식돼 투기자금이 몰려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자료: 한국은행
이렇게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 친 원인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1) 2차 양적완화 종료
6월말로 2차 양적완화가 종료되었다. 그동안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이 매달 1,000억불에 가까운 국채를 매입하며 시중에 자금을 뿌려 금융자본들에게 실탄을 공급해왔는데, 이것이 멈춘 것이다. 2008년 대폭락 이래 증시 상승은 대부분 이 양적완화에 의한 거품이었는데, 이제 그 요인이 사라지니 거품이 붕괴된 것이다.
2) 성장률 쇼크
미국의 분기별 실질GDP 성장률(연율) / 자료: Calculatedriskblog.com
7월29일 미 상무부는 미국의 성장률 통계를 발표했는데,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은 예상에 크게 못미치는 1.3%에 그쳤고, 8월말 발표에서는 이마저 1.0%로 하향 조정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당초 연율 1.9%로 발표되었던 1분기 성장률 수정치가 0.4%로 무려 1.5%p나 하향 조정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GDP가 15조불 정도이므로, 1.5%p면 무려 2,250억불에 달하는 것으로, 통계조작을 의심해야 할 정도의 수치다.
이로써 1년에 2% 정도로 느리지만 그럭저럭 성장하고 있는 줄 알았던 미국 경제는 지난 상반기 겨우 0.7% 성장하는 데 그쳤음이 드러났고, 경기 재침체, ‘더블딥’ 우려가 높아지게 되었다.
3) 최악의 채무한도 증액 협상에 따른 신뢰도 상실
과거 미국 채무한도 상향 추이 (출처:월스트리트저널)
매년 연례행사로 큰 무리없이 이뤄지던 미국의 채무한도 증액 문제가 티파티와 공화당의 ‘벼랑끝 전술’로 인해 마감 시한을 연장해가며 지루한 공방을 벌인 끝에 간신히 해결되었다.
이들은 ‘미국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을 무기로 세입을 늘리기 위한 ‘부자 증세’를 차단하고 향후 10년간 2.5조 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감축하도록 하는 법안을 관철시킴으로써 향후 오바마 정권의 재정 부양을 매우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결국 이번 채무한도 증액 협상을 통해 미국은 정치적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었고(“미국도 정쟁으로 인해 ‘디폴트’가 날 수 있다”라는 인식이 확산됨), 결정적으로 부자 증세가 차단되면서 향후 대규모의 재정 부양이 블가능해졌다. 이로써 정부의 통화 및 재정 부양으로 버텨 온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에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4) S&P의 신용등급 강등
채무한도 증액 협상을 둘러싼 미 정치권의 지루한 공방전, 그리고 이후 합의된 내용에 ‘부자 증세’가 빠진 점을 근거로 미국의 신용평가사 스탠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장기 국채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심지어 S&P는 향후 12~18개월 내에 신용등급을 추가 강등시킬 수 있다면서 신용등급 전망마저 '부정적'으로 유지, 추가 강등 가능성까지 열어두었다.
미국의 신용등급은 다른 나라들의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이며, 미국에 부여된 AAA 등급은 이를 뒷받침하는 기둥이다. 당장 미국이 AAA 등급을 상실하게 되면서 아직 AAA로 남아있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캐나다의 신용등급이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S&P는 미국계 신용평가사이며, 현재의 금융시스템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곳이다. 그러한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는 것은 현재 미국의 재정 상태가 매우 심각하며,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하나의 반증이라 할 수 있다.
5) 유럽 위기의 확산
유럽의 위기가 점차 프랑스, 이탈리아 등 경제 대국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그리스에 대한 추가 지원 문제는 ‘담보’ 문제로 또다시 난항에 빠졌고, 유럽 은행들은 점점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부실에 따른 상각으로 부족해진 자본을 확충하는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은행들 역시 유럽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유럽 재정위기는 미국으로 전이되게 된다.
부채는 줄이고, 경기는 살려라?
결국 2008년 금융위기 이래, 미국의 경기와 금융시장은 정부의 부양으로 견뎌 왔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 부양의 약발이 다한 상황에서, 미국의 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커지면서 부양 여력에도 한계를 맞고 있다.
이제 미국은 ‘부채를 줄이면서, 경기는 살려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이 두 목표는 서로의 달성을 제약하기 때문에 모두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채를 줄이려면 소비가 줄고 경기가 죽는 것이고, 경기를 살리려면 부채를 늘려 부양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경기가 죽는 걸 막기 위해 부채 축소 과정을 늦출 수밖에 없고, 부채를 축소해야 하기 때문에 경기를 일으키기 위한 부양을 마음껏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디플레’ 또는 ‘장기 저성장’, 즉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모습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다.
시사점
1) 수출 둔화세 더 심해질 것.
그간 대선을 앞둔 오바마의 부양책이 미국 경기를 그럭저럭 유지시킬 것이며, 금속 산업 역시 둔화는 되겠지만 그럭저럭 기존의 호조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었다. 그러나 채무한도 증액 협상 결과 오바마의 재정부양 규모가 크게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증시 폭락 등 금융시장 충격에 따른 심리적 위축 역시 강화되면서, 그 전망은 다소 수정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수출 둔화의 강도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 상황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고, 미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가 중국과 개발도상국들의 침체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직 개도국의 침체 국면까지 오지는 않았으나, 점차 이 역시 가시화되어 갈 것이다.
2) 통화 부양이 물가 상승 지속 유발할 것
재정 부양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미 연준은 3차 양적완화나 이에 준하는 통화 부양책을 쓸 가능성이 높아졌고, 가깝게는 9월 20~21일 있을 통화정책회의(FOMC)에서 무언가 나올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또다시 달러가 살포되고, 또다른 거품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며, 곡물가와 유가, 원자재가의 상승이 또다시 전세계적 물가 상승을 불러오게 된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의 ‘저금리-고환율’ 정책이 더해지면서 국내 물가는 계속 상승하며 민생을 압박, 분노를 누적시키게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