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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동향11월]유럽재정위기는 끝났는가?

금속노조연구원   |  

유럽 재정위기는 끝났는가?

EU 정상회의 합의와 향후 전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지난 8월에 기고한 글(끝이 보이지 않는 유럽 재정위기)을 통해,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고찰해 본 바 있다.

그 후 유럽 재정위기는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표류를 계속했다. 그 결과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이 강등되었고, 양국의 국채 10년물 금리가 6%를 넘어섰으며, 유럽 은행들은 신용 경색을 겪으며 ‘제2의 리먼 사태’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이 확산되어 왔다.

결국 부랴부랴 다시 모인 유럽 각국은 10월 26일 EU 정상회의를 통해 일련의 해법을 내놓았고, 이에 크게 흔들렸던 금융시장은 다시 안정세를 찾고 있다.

EU 정상회의에서 해법이 나오면서, 급락하던 유로화 가치가 반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위기는 끝난 것일까? 향후 유럽 경제의 전망은 어떠한가? 이번 호에서는 EU 정상회의에서의 합의 내용, 그 의미와 시사점을 살펴보겠다.

 

EU 정상회의의 합의 사항

 

26일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1)그리스에 대한 민간 손실분담 비율을 종전의 21%에서 50%로 대폭 늘리고, 2)그리스 국채의 50% 상각에 따라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지게 될 유럽 은행들의 자본을 BIS 기본자본비율 9%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로 했으며, 3)현재 4,400억 유로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규모를 손실보증, 특수투자목적기구 등의 ‘지렛대(레버리지) 효과’를 통해 1조 유로 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1) 민간 손실분담 비율 50%로 확대

 

‘민간의 손실분담’에서 ‘민간’이란 바로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 은행, 유럽의 금융자본을 말한다. 이들은 각국 정부와 함께 그리스 국채를 매입한(즉, 그리스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 빚쟁이들이다. 금융위기로 그리스가 더 이상 빚을 돌려막기(국채를 발행해 만기가 돌아온 국채를 상환)하기 어려워지면서 그리스는 외부 지원이 없으면 즉시 ‘부도’가 나는 상황에 몰렸고, 이에 따라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많게는 수백억 유로에 달하는 그리스 국채 즉, 빌려준 수백억 유로의 돈을 떼일 위기에 놓였다.

애초 이들은 빚쟁이로서 유럽 각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그리스에 지원하고, 그리스 정부가 그 돈으로 채권을 상환하는 방식을 요구해왔으며, 초기에는 그렇게 진행이 됐다. 그러나 이는 유럽 각국민들의 세금으로 그간 거품경제 속에서 흥청망청 마구 대출을 해 준 유럽 금융자본들의 빚을 메워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유럽 각국 국민들의 격렬한 반발과 이를 의식한 각국 정부, 특히 돈을 가장 많이 내야 하는 독일의 반발을 불러왔다.

그 결과 이들도 손실을 분담하기로 하고, 2차 구제금융을 결정할 당시 그 분담률을 21%로 정했으나, 최근 그리스의 재정실사 결과 재정이 더 악화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 분담률이 50%로 높아졌다. 즉, 유럽 금융자본이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부채 총 2,000억 유로중 1,000억 유로를 탕감하고, 유럽 금융자본들은 15%는 현금으로 지불받고 35%는 30년만기 국채로 교환하게 되었다.

 

2) 유럽은행 자본확충 : BIS 9%, 1,080억 유로

 

민간 손실분담률 50%가 합의되면, 유럽 금융자본들은 자기가 보유한 그리스 국채의 50%를 손실 처리해야 한다. 가령 100억 유로의 국채를 보유했다면 50억 유로를 상각하고 그만큼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엄청난 금액의 상각이므로 당연히 자본 잠식 현상이 발생하게 되며, 내버려두면 은행이 부도나고, 또다시 신용경색이 오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EU 정상회의에서는 유럽 금융자본들이 BIS 기본자기자본비율 9% 수준까지 자본을 확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로 했다. 1차적으로 금융자본 자체적으로 자본을 보강하고, 그게 안될 때에는 2차로 각국 정부가 이를 보강하며, 그것도 안될 때에는 마지막으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서 이를 보강하기로 했다.

유럽연합의 추계에 따르면, 유럽 은행들이 BIS비율 9%를 맞추기 위해서 보강해야 할 자본은 총 1,080억 유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1,080억 유로의 자본이 확충되면, 유럽 금융자본들은 무려 1조2천억 유로 규모의 추가 차입이 가능(1.2조*9% = 1,080억)해지면서 지금의 신용경색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3) 유럽재정안정기금 여력을 1조 유로로 확대

 

EU 정상들은 아울러,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여력을 기존의 4,400억 유로에서 1조 유로로 확대하기로 했다. 주목할 부분은 유럽 각국 정부들이 자국 국민들의 분노로 인해 추가로 돈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기금 자체를 늘리지 않고 ‘보증’ 형식의 ‘지렛대(레버리지) 효과’를 내기로 했다는 점이다.

기존에 유럽재정안정기금은 그리스와 같은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 정부에 자금을 지원해 이를 갖고 지원받은 정부가 부채를 갚았다. 그런데 이제는 부채 상환을 위해 그리스 등의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이 기금이 손실의 일부를 ‘보증’하는 식으로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가령, 스페인이 10억 유로의 국채를 발행할 때 이 기금이 20%인 2억 유로를 보증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20%의 손실이 보증되므로 스페인 국채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금리가 낮아져 스페인의 자금조달이 쉬워지게 된다. 한편으로 기금은 2억 유로로 10억 유로의 채권발행 효과를 낼 수 있게 되므로, 4,400억 유로라면 최대 2.2조 유로의 채권을 보증할 수 있게 된다. EU 정상회의에서는 1조 유로의 자금 여력을 확보한다고 한 바, 현재 2,500억 유로의 가용 기금으로 채권 발행액의 25%를 보증해 1조 유로의 자금 여력을 만든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EU 정상들은 특수목적투자기구를 구성해 유럽 은행들의 자본 확충과 유럽 국가들의 국채 발행을 지원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는 IMF와 중국까지 끌어들여 지원 가능액을 늘리겠다는 것으로, 해당 기관과의 협상이 진행중이다.

 

합의의 의미와 향후 전망

 

1) 민중의 세금으로 금융자본 부실메우기

 

이번 합의안은 표면적으로 금융자본의 손실 부담을 크게 높였다는 점, 그리스의 민간부채 중 절반을 탕감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안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중의 돈으로 금융자본의 부실을 메운다는 본질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자본 확충’이라는 이름아래 손실 상각된 부분을 정부나 유럽재정안정기금에서 메워주도록 했기 때문이다. 비록 자구책이 우선이고, 각국 정부의 지원이 그 다음이며, 마지막에 가서야 기금이 나서도록 돼 있지만, 그 자구책이라는 것이 눈가리고 아웅이 될 수도 있고, 실제로 유럽은행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자체 자금조달이 불가능할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결국 민중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부 재정이나 안정기금에서 돈이 나가게 되는 것이다.

 

2) 그리스 부채의 생성 구조는 그대로

 

또한 이번 합의는 그리스의 부채를 상당부분 탕감했지만, 그리스가 그렇게 부채를 지게 되는 구조를 해소하지 못했다. 그것은 지난 8월호에서 언급했던 ‘무리한 통화통합’문제, ‘유로화 사용에 따른 역내 불균형 문제’다. 경제적 능력이 다른 독일과 그리스가 공동의 통화를 사용하게 되면서 독일은 통화 저평가로 인해 경상흑자를 누리고, 그리스는 통화 고평가로 경상 적자가 누적되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그리스는 또 부채를 지게 될 수밖에 없다.

이번 합의로 현재 GDP대비 160%에 달하는 그리스의 누적 부채는 2020년말까지 120%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120%도 여전히 많은 것(보통 90%를 넘어가면 재정 운영이 불가능해진다고 한다)이며, 적자가 누적되고 재정이 또 악화되면 또다시 추가 구제금융 이야기가 나오게 될 수밖에 없다.

 

3) 그리스 말고 다른 나라 부실은?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이 오직 ‘그리스’에 대한 것이라는 데에도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포르투갈이나 아일랜드에서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하거나,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또다시 추가 구제금융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빚보증’을 섰던 안정기금은 결국 고갈되고 부실화되어 또 각국의 재정을 부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이는 민중의 격렬한 저항과 각국 정부의 반대로 난항에 부딪히게 되며, 결국 유로존 공멸의 위기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4)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슈퍼 AIG

 

금융권과 경제계에서는 안정기금이 ‘슈퍼 AIG’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CDS로 보증을 섰던 채권들이 부도나면서 무너진 ‘AIG’의 전철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AIG는 미 정부가 2,000억불 가까이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유화 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5) 돌고 돌아 문제는 다시 ‘유로존 재정통합’으로

 

결국 위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유럽중앙은행(ECB)이 미 연준(FRB)처럼 유로화를 증발하던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부국들이 의지를 가지고 유로존의 재정 통합에 나서 그리스 등에 막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ECB의 유로화 증발이나 유럽의 재정 통합은 첨예한 정치적, 계급적 문제이며, 유럽인들이 국경을 넘어 하나라는 강력한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듯 유럽 각국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시사점

 

1. 유럽 재정위기는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EU 정상들의 이번 합의는 ‘시간벌기용’ 수준에 그칠 것이며, 그 사이에 유럽의 경기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유럽 재정위기는 재발하게 될 것이다. 근본적 문제 해결은 유럽이 미국처럼 재정 통합을 통한 하나의 연방으로 나가던지, 아니면 남유럽, 혹은 독일의 탈퇴로 유로존이 분열하던지 둘 중 하나다. 그리스 등의 부채가 유로화로 되어 있고, 따라서 이들의 유로존 탈퇴와 자국통화 복원과 통화가치 평가절하는 부채를 오히려 급증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남유럽 국가들의 탈퇴보다는 독일의 탈퇴가 ‘질서있는 유로존 분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 ‘장기 저성장’ 지속된다.

 

이번 합의로 달라지는 것은 그리스의 민간 부채가 1,000억 유로 탕감되었다는 것이다. 엄청난 돈이 탕감됐지만 어차피 못갚는 돈이었고, 탕감되었다 해서 그리스 재정위기가 해소되는 게 아니다. 결국 그리스는 약속한 가혹한 긴축안들을 모두 이행해야 할 것이며, 이는 당연히 경기 침체를 가져오게 된다. 긴축으로 악화되는 그리스 경제의 상황이 드러나고, 그리스 노동자와 민중의 긴축반대 투쟁이 강화되어 긴축이 중지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부채를 줄이면서, 경기는 살리라”는 모순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결국 경기침체가 무서워 부채를 확 줄이지 못하고, 부채가 무서워 강력한 경기부양을 할 수 없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지지부진한 상황, 부채 축소도 지연되고 경기도 장기 저성장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3. 그리스 재정위기가 ‘복지병’ 때문이라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그리스 재정위기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복지병’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앞에서 본 듯 사실이 아니다. 그리스 위기의 본질은 ‘무리한 통화통합’이 가져온 역내 불균형이다.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닌 것은 저들도 알고 있지만 그냥 그렇게 거짓말을 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복지가 문제라면 독일과 네덜란드 같은 곳은 왜 문제가 없냐?”고 반박하면서 국가의 재원을 자기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로 돌리는 것을 저지하려는 이들의 악의적 의도를 경계하고, 왜곡을 폭로해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