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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위기가 국내 금속 산업에 미칠 영향

금속노조연구원   |  

시작에 불과한 유럽 재정위기


 


 연초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그리스발 유럽 재정위기가 상반기가 끝나가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전망이 오히려 대세인 상황이다. 유럽연합(EU)은 그리스에 1,100억 유로를 지원하고, 이후 위기 확산에 대비해 7,2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 기금’을 조성해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고 있으나, 이는 빚더미 나라에 또다시 빚을 내주는 것으로, 근본적 해결책이라 볼 수 없을뿐더러, 이 지원조차 각국의 이해관계 충돌로 실제로 이행될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공공부문과 연금 등 사회복지 분야에서의 대대적 긴축에 돌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그리스 경제를 ‘장기 침체’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즉, 그리스 정부는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을 풀자니 부채 위기가 오고, 긴축하자니 장기 침체가 오는 이중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재정적자 문제가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도 심각한 재정 적자를 안고 있으며, 그리스와 마찬가지의 상황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

 


유럽 위기의 근원 - 유로화


 심각한 것은, 이번 유럽 재정위기의 근원이 ‘유로화’에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은 통화가치가 높고 금리가 낮은 반면, 후진국은 통화가치가 낮고 금리가 높다. 이를 통합하게 되면 선진국은 낮은 통화가치의 수혜를 받게 되고, 후진국들은 낮은 금리의 수혜를 받게 된다. 유로화로의 통합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유럽 국가들은 당연히 당시의 환율에 맞춰 각국의 통화를 유로화로 교환했다. 그러나 유럽 각국의 경제력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환율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가령 독일과 그리스가 1999년 당시의 환율을 기준으로 유로화를 만들었다 해도, 이후 독일과 그리스의 경제력 격차가 커지면 99년 당시 산정한 환율은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 즉, 독일 입장에서는 환율이 저평가되고, 그리스 입장에서는 고평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려면 양국이 같은 금융정책(금리 정책)과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 즉, 하나의 국가가 경제를 운용하는 것처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각국의 특수성으로 인해 양국은 재정정책을 통합하지 못했고, 매년 부채비율을 GDP의 3%로 억제한다는 권고사항을 두었으나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그 결과, 독일은 저평가된 환율을 통해 수출을 늘려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그리스, 스페인 같은 국가들은 고평가된 환율로 인해 대부분 적자를 기록했다. 이들은 대신 유로화 출범으로 낮아진 조달금리로 저렴한 부채를 조달해 경상 적자를 메웠다. 그러나 2000년대 늘어난 거품이 꺼지면서, 이들은 재정적자와 부채 상환의 압박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통화가치 절하가 불가능한 유로화


 재정 여력이 고갈된 현재 상황에서 그리스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통화가치 절하’가 이뤄져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97년 외환위기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외환보유고가 고갈되고 채무상환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을 전면 개방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했다. 그 결과, 외환위기 전 800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2,000원까지 폭등했고, 이후 6~7년간 1,200원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그 결과, 국민소득이 급감하고 물가가 올랐지만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강화된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며 달러가 유입돼 외환위기 해소의 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그리스는 이같은 과정의 진행이 불가능하다. 유로화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유로화는 그리스 뿐 아니라 유로존 16개국이 함께 쓰는 통화이기 때문에, 통화가치 역시 16개국의 경제를 반영하게 되어 쉽게 변동하지 않는다. 그리스의 현재 상황에서 통화가치는 97년의 한국처럼 급격히 떨어져야 하지만, 유로화는 독일, 프랑스와 같은 경제 강국들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정도 까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렇듯 유로화 통합에 따른 환율조정 기능 상실로 그리스의 경제 회복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진퇴양난에 빠진 유럽


 지금 상황에서의 해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리스의 부채를 상당 부분 탕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고 자국 통화(드라크마)를 복원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유럽 금융기관들의 대규모 부실을 낳게 되고,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전세계 금융기관으로 부실이 확산되게 되어 주가 폭락, 극심한 신용 경색 등 제2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어떠한가? 문제는 통화가치 절하가 필요한 것이 그리스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렇다 할 성장동력 없이 장기 경기침체를 계속하고 있는 포르투갈, 부동산 거품 붕괴로 엄청난 규모의 민간 부채를 정리해야 하는 스페인과 영국, 이탈리아 역시 그리스와 비슷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리스가 탈퇴하고, 이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탈퇴하게 되면 유로화는 붕괴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미합중국에 필적하는 유럽합중국 건설’이라는 ‘유럽통합’이라는 이상이 무너지게 된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유럽 국가들은 유로화의 붕괴를 막기 위해 그리스에 대한 1,100억 유로 규모의 지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빚을 더 내주어 당장의 부도를 막고, 이후 허리띠를 졸라매 더 늘어난 빚을 갚으라는 것으로서, 위기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지연시키는 데 불과하다. 그리스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한, 빚은 더 큰 빚을 낳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다가오는 유럽의 장기침체


 그리스 경제는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그리스의 대표적 산업은 해운업과 관광인데, 해운업은 세계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급감해 어려움을 겪고 있고, 관광산업의 경우 통화가치의 절하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급격히 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내수 경제에 의존해야 하는데, 긴축을 하게 되면 당연히 내수는 침체될 수밖에 없으며, 경기의 회복을 통해 빚을 갚아나가기 더 어렵게 된다.

 그리스 다음의 ‘2번 타자’로 지목되고 있는 스페인은 어떠한가? 스페인의 실업률은 무려 20%이고, 청년실업률은 40%에 이른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저축은행 부실을 이제부터 정리하기 위해 대대적 정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지출을 늘려도 모자랄 상황에서 스페인 정부는 긴축 계획을 짜고 있다. 그 결과는 ‘장기 침체’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와 스페인 뿐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이같은 상황에 처해 있으며, 다들 앞다퉈 긴축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 경제는 ‘장기 불황’으로 가는 터널 앞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추락하는 유로화 가치, 양극화 부추긴다


 한때 유로당 1.6달러에 근접했던 유로화 가치는 현재 유로당 1.2달러까지 하락했으며, 일부에서는 유로당 1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스같은 나라 입장에서 유로화가치 하락 속도는 매우 느린 것이지만, 독일, 프랑스 같은 경제강국들로서는 매우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는 당연히 독일과 프랑스의 수출을 늘리게 된다. 특히 세계 2~3위 수출국으로, 자동차와 기계 산업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가진 독일의 수출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치 국내 자동차와 전자, 조선 산업이 작년 환율 폭등으로 엄청난 수혜를 입었듯 독일, 프랑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유로화 가치 하락은 유럽의 부와 경쟁력을 독일과 프랑스로 이전시킬 가능성이 높고, 유럽 내 부국과 빈국의 격차를 벌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유로존 붕괴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 위기가 국내 금속 산업에 미칠 영향


1. 유럽의 내수 침체가 장기간 매출과 수익의 증대를 제약할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수출 증대 등으로 그럭저럭 경기를 회복시켜 갈 수 있겠으나, 여타 국가들은 그러한 상황이 아니다. 자동차의 경우, 국내 업계의 수출이 독일, 프랑스보다는 다른 나라들에 주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업계는 유럽 내수 침체의 영향을 상당부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교역은 상당부분 육로로 이뤄지기 때문에, 유럽의 내수 침체가 조선업에 끼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철강의 경우, 자동차와 더불어 국내 전자제품의 유럽 판매가 부진해지면서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2.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유럽 금속 산업의 경쟁력 강화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 BMW, 폭스바겐, 다임러벤츠, 푸조-시트로앵, 르노, 피아트 등의 경쟁력이 강화되어 국내 자동차사의 미, 중, 개도국, 국내 시장 점유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부품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현대기아차의 경우 현지생산이 늘어나 있는 상황이어서, 환율 영향을 일정 부분은 상쇄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유럽 공장에서 미국이나 개도국, 국내로 ‘수출’하는 경우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조선의 경우 유로화가치 하락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 선주가 국내 조선업계에 발주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유로화 가치 하락은 유럽 조선업계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국내 업계를 약화시킨다. 현재 국내 조선업계와 건설업계는 내수 부진을 해외 수주에서 메우고 있는데,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유럽 건설업계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중동 등의 발전소, 공장 수주에서 밀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철강의 경우 조선업 부진의 간접적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동안 국내 금속산업의 경우, 지난 2년간의 환율 수혜 종료, GM, 포드, 도요타 등의 견제 등으로 매출과 수익이 감소해갈 가능성이 높다.

 그간 국내 자동차사들은 환율 폭등을 이용한 대대적인 판촉과 신차 효과에 따른 이미지 제고, 소형차 중심의 판매, 현지 생산 등으로 큰 이익을 봐 왔다. 이러한 효과는 단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악영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조선업계는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국내 자동차사들은 경제위기로 인한 소형차 판매 증가로 수혜를 입었지만, 조선업체들의 경우는 선박 발주가 크게 감소해 비축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