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자료1]노동조합의 정치사회적의제연구
노동조합의 의제 확장
정치사회적 의제 연구
연구책임자 박종식 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Ⅰ. 서론
“노동조합은 항상 ‘정의의 칼’과 ‘기득권적 이해(vested interest)’라는 양면성을 갖는다”(Flanders, 1970: 15). 하지만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가 하는 점은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많은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인구 일부의 상대적인 이익을 방어하는데 관심을 갖는 보수적인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 노동조합운동이 직면한 도전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정의의 칼로서의 역할을 부활하고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 리처드 하이만(Richard Hyman)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을 기점으로 질적으로 도약하였다.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등장’으로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노동조합운동은 1990년 전노협 건설, 1995년 민주노총의 건설로 이어지면서 조직적인 틀을 구축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까지 일반적으로 노동조합 활동가들 사이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성/계급성에 기반을 둔 기업별 노동조합운동’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투성, 계급성, 나아가 혁명적인 성격에 대한 강조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운동의 향후 과제를 ‘산별노조의 건설’ 및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의제로 정리하여 도출하였다. 즉, 노동조합운동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고양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정치사회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정치방침이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출범한 지 2년이 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경과하면서 전사회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노동조합운동은 수세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핵심적인 내용은 정리해고를 필두로 기업 내 인원감축(다운사이징)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고용불안에 맞선 투쟁에서 고용안정의 과제가 핵심적인 과제로 등장하는 것은 정상적인 대응방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별 자본 차원에서 조합원들의 고용안정 투쟁이 전 사회적 또는 전 계급적 수준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 있다. 예를 들면, 기업별 차원에서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중심으로 사업장 투쟁이 전개되면서 사업장 내에서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확대에 노동조합이 동의를 해 주고, 기업복지 차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하려는 사측의 시도에 묵인 또는 방조를 하고 있었다. 그 결과 전투적이고 계급적인 지향을 강조하던 민주노조운동은 비조합원이나 일반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방어하는 보수적인 조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고용불안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조합원들은 고용이 유지되고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겠다는 인식이 만연하게 되면서, 단위 사업장 차원에서의 임금 및 단체 교섭은 조합원들의 실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전투성은 희화화되고, 계급성은 형해화되어져 갔다.
이와 같은 주객관적인 상태 변화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나아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논의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체로 이와 같은 논의들에서는 ‘정규직 중심주의’ 및 ‘기업별 노조주의’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산별노조의 완성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 대체로 수긍을 하면서 개별 기업 차원의 노동조합운동의 과제들과 사회적인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진보적인 의제들을 노동조합운동의 의제로 재정립해 가기 위해서 초보적인 논의들을 진행하고자 한다. 참고로 영국노총인 TUC의 의제들을 살펴보면(<표 1>)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구체적인 의제들을 노동조합의 과제들로 제기하고 있다.
대영역 |
세부 의제 |
Economic Issues |
기업지배구조, 경제분석, 노동시장, 연금/퇴직, 개인간 평등(equity), 공공지출, 세금, 예산 등 |
Workplace Issues |
기본 노동권, 고용권, 그리 사업장, 산업안전보건, 훈련 및 학습, 일-가정 양립(Work-Life Balance) |
Industrial Issues |
교육과 학교, 에너지, 제조업, 공공부문, 지역 정책, 소기업, 교통운수정책, 훈련 및 학습 정책 |
Equality Issues |
나이차별, 흑인, 장애인 문제, 균형 회계/예산(성인지적 등), 성적 평등, 성적 소수자 권리 |
Social Issues |
아동 빈곤, 고용 프로그램, 환경, 주거, 빈곤/사회적 배제, 복지제도 및 지원 |
Union Issues |
노조리더십, 조직화학교(Organising Academy), 노조 현대화 기금, 지역사회의 노동조합, 노조조직화, The Next Generation, 노조 온라인 |
International Issues |
유럽, G8/G20, 세계화, 인권, 국제 발전, 노동기준, 이주, 다국적기업, 무역, TUC 원조사업 etc |
* TUC 홈페이지(www.tuc.org.uk)에서 필자가 정리.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는 영국과 비교하면 매우 일천하지만 앞으로는 작업장 단위의 의제들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노동조합운동의 견해가 관철된 다양한 입장들이 제출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이를 위해서 2000년대 이후 노동조합의 존재 지반의 변화를 살펴보고, 노동조합을 둘러싼 객관적인 조건의 변화에 따라 노동조합운동 차원에서 새로이 제기할 필요성이 있는 과제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특히 생산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의 성격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소비자이자 시민으로서의 주체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사회적인 의제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조합운동 차원에서 재정립할 필요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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