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보고서 > 보고서
보고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 형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

금속노조연구원   |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 형성에 관한 연구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및 전주공장 사례를 중심으로

 

 

홍석범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오늘날 노동운동에서 연대의 실천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친기업적 성향을 표명하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강공을 전개했던 새로운 정부의 등장 및 그것을 가능케했던 경제성장중심 프레임의 전국민적 확산, 아울러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실패와 시민사회 분야의 성장은 직간접적으로 노동운동의 상대적 고립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전면적으로 등장한 고용안정 의제가 기업별 교섭구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구조적 지형과 결합하면서 작업장 내 정규직․비정규직 고용형태를 매개로 노동계급 내부의 의식적, 구조적 갈등 역시 심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기간제법 및 파견법 등 비정규직 보호법과 관련된 정책적․사법적 효과가 미미한 상황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는 노동계급의 내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출발지점이자 목표인 동시에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한 자구책으로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외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연대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천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에 관한 국내의 학문적 성과는 비교적 제한적이다.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대한 몇몇 실증연구들이 수행된 바 있으나 그와 같은 요인들이 연대 형성의 과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개별 사업장의 사례 연구를 통하여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를 둘러싼 작업장 내 사회적 관계와 두 집단 및 그 내부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구체적 행위양태를 분석하는 일련의 연구가 수행된 바 있으나 그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의 호혜적 연대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데 그친다. 그밖에 여러 연구들 속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는 정규직 노동조합 지도부 및 활동가들의 태도, 이념적 성향 및 연대 전략,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서적 태도와 이해관계 등 주로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연대 형성의 의미 있는 한 주체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본 연구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 형성에 어떠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는지, 연대 형성 과정에 있어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하여 어떠한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및 울산공장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 사례를 분석 대상으로 삼고 문헌 조사 및 면접조사를 실시하여 자료를 수집, 비교 연구를 실시하였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활동은 주요 관심 및 집중 사업을 기준으로 크게 조직화 시기(울산공장 2003년, 전주공장 2004 ~ 2005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시기(2004 ~ 2006년), 1사1조직 운동 시기(2007 ~ )로 구분지어 볼 수 있는데, 조직화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주공장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 성격은 점차 견고해지고 있는 반면 울산공장은 약화되어 온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하여 연대 형성의 영향요인으로 논의되는 세 요인, 즉 ① 맥락적 요인(노동자 연대의 일반적 조건으로서 연대의 행위 주체, 즉 노동자들이 활동하는 장을 구성하는 환경적 조건), ② 관계적 요인(연대의 두 행위 주체들이 작업장 내에서 역사적으로 구축해 온 관계의 성격), ③ 행위주체의 전략 요인(연대 활동을 동원하기 위해 행위자가 주어진 제반의 조건들 속에서 선택하는 전략 방침 및 실천)을 기준으로 울산공장과 전주공장에 있어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맥락적 요인이 일반적인 노동자 연대의 조건들로 논의되는 반면, 관계적 요인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 대상으로 논의한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으며, 행위 주체의 전략 요인은 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 형성 과정에 있어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이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열어주는 개념적 공간이다. 따라서 관계적 요인과 행위주체의 전략 요인을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며 맥락적 요인은 분석과정에서 필요한 경우에만 부수적으로 다루었다.

본 연구의 발견 및 시사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공통의 이해관계’보다는 ‘의무의 감정이나 가치, 정서적 요인’이 연대에 참여하는 구성원들 상호 간의 의식적 결합 및 지원 혹은 협력 행동을 설명하는 데 보다 더 타당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울산공장의 경우 이미 노동계급 내부에 정규직․비정규직 고용형태를 기준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관계의 갈등 구도가 형성된 상황에서 계급적 합리성에 기초한 노동-자본의 집합적 갈등 구도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노동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계급 내적 이질성과 거리감,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인 한편 더 이상 ‘하나의 노동자’라는 단일한 계급위치가 노동자 연대의 유의미한 설명요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울산공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초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보여줬던 열악한 처우에 대한 공감이나 그것을 바탕으로 한 지원을 두고 계급연대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고용의제를 둘러싸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양보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 또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전주공장의 경우 서로 다른 혹은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두 집단이 이러한 거리감과 대립성을 극복하는 데에는 작업장 안팎에서 형성되어 온 정서적 유대감과 친밀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작업장 외부에서 형성된 강한 선후배 관계를 바탕으로 작업장 내에서 일상적으로 정서적 유대감과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실천들을 해나가면서 두 집단의 대립적 이해관계는 점차 부차화되었고 상호 간의 양보와 헌신이 발현되는 연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

둘째, 위와 같은 맥락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또한 나름의 전략적 노력과 실천을 통하여 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 형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전략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연대의 결과가 달라지고 있었는데 울산공장의 경우 ‘계급연대에 기초한 원칙적 접근’을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 심리를 자극하거나 정규직 노동조합의 통제권 상실에 대한 우려를 가중시키면서 연대의 형성에 실패하게 되었던 반면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계급내부의 차이에 기초한 우회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정서적 유대감 및 친밀감을 형성시켜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울산공장과 전주공장에는 전략 요인 외에 다양한 차이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노동자 구성에 있어 울산공장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지역적 폐쇄성 혹은 지역적 동일성이 높고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간 연령 격차가 크지 않았던 전주공장은 이미 연대 형성을 위한 미시적 기초로서 친밀감이나 정서적 유대감을 발전시키기 쉬운 잠재적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울산공장의 상대적으로 낮은 비정규직 조직률과 조합원의 공장 내 분산 수준, 정규직 노동조합 지도부의 비우호적 태도와 기타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처해 있던 상황적 조건들은 전주공장에 비하여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전략 선택지와 실천가능성을 크게 제약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두 공장의 연대 사례를 단순히 비교할 수 없으며,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전략적 선택과 실천이 연대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대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선택하고 실천했던 전략 내용이 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고용안정 의제를 바탕으로 형성된 심리적 거리감을 완화시키고 정서적 유대감과 우호적 감정을 강화시켰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은 행위 주체의 전략 요인을 연대 형성의 주요한 설명요소로 인정토록 한다.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불균등한 권력 관계의 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하여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날 전반적으로 침체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대하여 나름의 실천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행위 주체의 전략 요인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 형성을 설명함에 있어 연대의 두 행위 주체들이 작업장 내에서 역사적으로 구축해 온 관계의 성격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공장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연대의 형성 과정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조합 간의 관계나 작업장 내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심리적 거리감, 서로에 대한 정서적 태도 등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되어 온 두 노동자 집단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었으며, 이전의 연대 경험이 이후의 연대 방향을 제약하는 일종의 경로의존적 현상(즉 울산공장은 점차 연대가 약화되고 전주공장은 점차 연대가 강화되는 일련의 추세)들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의 발전에 있어 초기의 관계 맺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초기에 정규직 노동조합과 불안한 관계를 맺었다고 하여 그것을 반전시킬 가능성이 차단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를 연구하고 이해함에 있어 특정 국면의 단편적인 사건만으로 그것의 성격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연대라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 아무런 징후 없이 갑작스럽게 출현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토록 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 있어서도 관계적 요인에 대한 고려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으로 하여금 정규직 노동자에 대하여 보다 전략적이고 신중한 접근을 꾀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것은 첨부파일 참조하세요>